<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33

남한산성 - 쟁기 끄는 소

등록 2005.03.05 03:02수정 2005.03.0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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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걸 일행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길을 잡은 계화는 낯선 남자들과 길을 간다는 점에서 몸가짐을 조심하려 했지만 곧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계화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서로 간에 대화조차 없었다. 밤을 틈타 이동해 새벽녘에 남한산성에 도착한 이진걸 일행은 청나라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계화는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찌 하옵니까?”


이진걸 일행은 계화의 말은 들은 척도 않은 채 어느 곳으로 들어갈지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었다.

“암문(비밀문)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곳이 어딘지 안첨지가 어찌 알려준단 말이오?”

이진걸은 걱정 하지 않는 다는 투로 대답했다.

“일단 아무 암문이나 들어가고 보자우.”
“아무 암문이라니? 남한산성이 그렇게 작은 줄 아시오? 아무 암문이나 찾아서 들어가다니?”
“내래 듣기로는 여기 암문이 16개라 들었어. 그 중에 하나를 못 찾갔어?”

하지만 이진걸의 장담과는 달리 그들은 성 주위를 걷느라 헛고생만 했고 급기야는 동이 트고 말았다. 이진걸 일행은 성에서 조금 떨어져 몸을 숨긴 채 이제 하나뿐인 남은 마른 밥 한 덩이를 6개로 나누어 물도 없이 삼켜야만 했다. 계화는 성위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것을 굳이 왜 이런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만은 이진걸의 일행 중 한명에게서도 터져 나왔다.


“그냥 성 아래에서 부릅시다! 어차피 오랑캐들은 이쪽에 없고, 뒷수습은 안첨지가 다 해줄 것이 아니오?”
“아니되네. 일은 조심스레 해야 하는 게 좋지 않갔어?”

이진걸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불만을 터트린 사람은 계화를 가리키며 이진걸을 비웃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계집을 달고 다니는가? 늙은이가 주책이 심하군!”
“니래 말이 좀 더럽구만!”

이진걸이 칼을 뽑아들자 상대방도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뽑아들었다.

“평치인 네 놈이 안첨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대장같이 구는 게 아니꼬왔는데 여기서 한번 실력을 가려보자!”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을 만류하며 여기서 시끄럽게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뿐이라고 했지만 이진걸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곧 끝난다.”

순간 기합소리와 함께 칼날이 이진걸을 덮쳐왔다. 계화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섬뜩하게도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풀밭에 무엇인가 쓰러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가자.”

계화가 눈을 뜨니 이진걸에게 칼을 겨누었던 사내는 피를 흘리며 엎드려 있었고, 다른 3명은 넋이 빠진 표정으로 이진걸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행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무심한 이진걸을 따라 다시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다.

“이곳이다.”

처음 이진걸이 모른 척 말한 것과는 달리 그는 이미 들어갈 암문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진걸은 암문에서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서는 한 식경을 기다렸고, 한 사내가 암문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니 내 마음이 슬프오.”

이진걸의 이상한 말에 사내가 답했다.

“독안의 물은 채워 두었다오.”

그제야 이진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행을 암문으로 들여보내었다. 사내가 계화를 보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다섯 중 하나가 원래 아낙네였소?”

이진걸은 계화를 돌아보았다. 계화는 그때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안첨지에게 차차 얘기하리다. 어서 길이나 안내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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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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