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에서 바라본 이 겨울 마지막 설경

햇살이 퍼지며 치악산은 안개속에 자취를 감추고

등록 2005.03.06 15:57수정 2005.03.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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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횡성군 안흥면과 평창군 방림면의 경계에 '문재'가 있다. 현재 문재터널이 자리잡은 곳의 해발표고가 800m이나 터널이 생기기 전 비포장 국도로 넘어 다니던 문재정상은 해발 1000m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는 겨울산행으로 유명한 백덕산(해발 1350m) 등산코스의 시발점이다. 또 옛 길인 원래의 정상은 삿갓봉 중턱을 따라 물안골과 마람골, 정자골, 논골을 거쳐 영월군 수주면으로 통하는 길목인 오두재로 이어지는 임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a 문재 정상에서 바라 본 설경

문재 정상에서 바라 본 설경 ⓒ 성락


문재 정상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마주보면 국립공원 치악산이 손에 잡힐 듯 버티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더욱 거리감이 없어져 지척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치악산의 왼쪽으로는 해발 1030m인 삿갓봉이, 오른쪽으로는 역시 1천미터급 고봉인 매화산(1085m)이 호위하듯 솟아 있다.

문재터널 입구에서는 이들 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보기 힘든 장관이다. 치악산 정상이 뾰족한 모습인 반면, 삿갓봉과 매화산은 이곳에서 보면 완만하게 산세를 형성한 마음씨 착한 산이다. 이 멋진 조화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문재이다.

강원도 전역에 폭설이 내렸다. 영동지방의 최고 적설량 1m에 비하면 비교적 내륙인 이곳은 20cm정도에 불과한 적은 량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하얀 고봉들이 만들어내는 설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a 문재터널

문재터널 ⓒ 성락


아침 일찍 문재터널로 향했다. 제설차량이 모래를 뿌렸으나 눈과 뒤섞여 큰 도움은 되지 않을 듯싶다. 바닥이 얼어붙은 탓에 지나는 차량도 크게 줄었다. 문재터널을 평창방향으로 지나쳐 공터에 차를 세웠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백덕산 등반객 대여섯 명이 여유롭게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평창쪽은 이미 해가 들어 멀리 보이는 산들이 뿌연 형체만 보인다. 역광을 이용해 사진촬영을 하면 좋으련만 얼마전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와 아직 다 사귀지 못한 탓에 터널 입구만 촬영한 채 다시 횡성쪽으로 넘어왔다.

a 문재에서 내려다 본 마을. 멀리 안개에 가려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다

문재에서 내려다 본 마을. 멀리 안개에 가려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다 ⓒ 성락


터널을 막 빠져나와 보니 눈앞에 펼쳐진 설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흰 눈으로 덮인 산 중턱으로 엷은 안개가 층을 구성해 산 아래 위를 나누고 있다. 조심스레 차를 세웠다. 최대한 높은 곳에서 이 황홀한 풍경을 감상해야 한다.


a 삿갓봉

삿갓봉 ⓒ 성락


아쉽게도 치악산과 매화산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카메라로는 선명히 잡히질 않는다. 안개 때문이다. 차안에서 30여분을 기다렸으나 좀체 또렷한 형태를 촬영할 수 없다. 해가 완전히 퍼진 후에야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설산의 제모습을 보여주려나 보다.

a 문재 정상의 일출

문재 정상의 일출 ⓒ 성락


뒤편을 보니 문재터널 위 옛길 정상부근에 밝은 빛줄기가 나무 사이로 스며 나온다. 태양이다. 서툰 솜씨로 문재의 일출장면을 잡아 본다. 이 또한 보기드문 장관이다.

a 눈 길

눈 길 ⓒ 성락


차를 몰아 천천히 내려갔다. 치악산이 좀 가까이 들어오는 듯 하지만 아직 카메라로는 선명한 모습을 담기 힘들다. 차를 세워 다시 내려온 오르막길을 보았다. 산 생김대로 굽어진 눈길이 멋지다. 아차하면 미끄럼을 탈 수 있는 위험한 눈길이지만 바라보는 느낌은 차분하며 위협적이지 않다.

a 문재 오르는 길

문재 오르는 길 ⓒ 성락


동네까지 내려왔다. '돌투반이골' 입구에서 문재 정상을 바라보니 문득 초등학교 시절 문재로 행군갔던 일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6월이 되면 6. 25 한국전쟁을 상기하는 행군을 연례행사로 가졌다. 아마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지금은 폐교된 마람골 입구 상안초등학교에서 문재 정상까지 왕복하는 행군에 참가했다. 거리가 왕복 30리는 족히 될 듯싶다.

산 중턱으로 꼬불꼬불 닦여진 비포장길은 과거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유일한 국도였다. 계속 오르막이다보니 문재 정상에 도착한 아이들은 기진맥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문재 정상에는 '상회'를 하는 엄씨네 집이 있었는데, 그곳이 반환점이었다. 내려갈 일이 막막했다. 그것은 함께 참가한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어떤 선생님이 마침 지나던 군용트럭을 세우고 자초지종을 말하는 듯 하더니 모두 차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아무리 학생수가 적은 시골 초등학교지만 그래도 전교생을 합하면 백 이삼십명은 되었던 것 같다. 트럭 두대를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고학년 여럿은 어쩔 수 없이 걸어서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포장이 쳐진 차 안은 암흑이었다. 바로 옆의 사람도 분간이 가지 않는데다 비포장길을 마구 달려 내려가다보니 어떨때는 차가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기도 했다. 공포와 찜질방 같은 무더위속에 비명을 질러가며 그래도 무사히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a 아름다운 눈꽃

아름다운 눈꽃 ⓒ 성락


a 정자골에서 본 이 겨울 마지막 설경

정자골에서 본 이 겨울 마지막 설경 ⓒ 성락


한참 옛 추억에 빠져있다가 다시 치악산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치악산 설경을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기자기한 눈 풍경은 골짜기가 제격이다. 정자골을 오르며 이제 이 겨울의 마지막이 될 설원을 마음껏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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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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