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약국에서 담배를 팔아?

병 주고 약 주고 담배팔고 금연초 권하는 사회

등록 2005.03.08 11:55수정 2005.03.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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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급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슈퍼마켓에서 팔겠지 생각하며 네 방향을 돌아보던 중 바로 옆에 담배 간판이 확 들어왔다. 약국이었다.

'어? 이상하네. 아직도 약국에서 담배를 팔아?' 급한 김에 담배 한 갑을 사고 그냥 나왔다.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으니 서둘러 본래 일을 보러 갔다. 괜스레 '약국에서 담배를 파느냐?'고 따졌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참는 게 보약이라고 했으니 가만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곰곰 생각해보니 '약국에서 담배를 팔아도 사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문제 삼아 무얼 하겠는가?'라는 소시민 기질이 발동하여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더구나 약국 매상에 적잖은 기여가 될 거라는 생각까지 들어 공연히 들쑤셔서 얼굴 붉힐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진기가 있고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내 도리를 망각하고 살수는 없었다. 법령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성북구는 '클린성북'을 주창하며 3년 전부터 금연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선도하여 지자체 중 모범으로 뽑혔다는 소식도 접했던 터였다.

미국에선 마약류 취급을 하는 담배. 2001년 7월 재정경제부령으로 발효된 '담배사업법시행령'은 담배판매를 금지하는 장소로 병의원, 약국 등 보건의료관련영업장과 게임장, 문구점, 만화방 등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 그리고 야간업소 등을 신설하였다. 여기까지는 진일보한 측면이라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데 법과 시행규칙에는 그 이전에 허가를 받은 곳이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기존에 담배를 약국이나 병원에서 팔아왔다면 아무런 법적 제약 없이 팔 수 있다는 데 허점이 있으니 '병 주고 약 주는' 관행이 버젓이 이어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기가 찰 노릇이다.

담배와의 전쟁이 선포되어 작년 연말 담뱃값 인상을 하더니 올해 또 올린다고 한다. 값이 문제가 아니라 이젠 내 몸을 생각해서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또 다시 하면서 성북구 보건소에 전화를 돌렸다.


먼저 한 사람은 "안 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한다. 그래 소비자가 사지 않으면 되는 거지. 그런데 나는 왜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건가? 답답한 마음에 다른 분을 바꿔달라고 했다. 담당자와 긴 시간 통화를 했다.

"엄연히 종토세는 광역시도 세원이 되고 담배는 지방자치단체의 것이라면 지자체에서 계도나 행정지도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성북구가 금연클리닉을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제는 적어도 약국에서는 판매를 금지하도록 조례를 제정할 생각은 없느냐, 솔직히 한쪽에선 금연운동하면서 그것 하나 개선할 수 없다면 운동의 취지가 퇴색하는 느낌이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당장 관내 건강실천협의회에 제안을 하겠다는 답변과 문화적으로 인식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소비자가 바뀌기 전에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의사, 약사 그리고 행정당국이 먼저 바뀌면 더 수월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했더니 좋은 의견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당장 세수가 줄어드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추진 과정을 홈페이지를 통해 차차 공개해 나가겠다고 한다. 친절한 상담에 이 기회에 담배를 끊어보라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일러준다.

담배사업법시행규칙-담배판매 금지 장소

제6조의2 (담배판매업을 하는 것이 부적당한 장소) ①법 제16조제3항에서 “담배판매업을 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장소”라 함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장소를 말한다.

1. 약국, 병·의원 등 보건의료관련 영업장
2. 게임장·문구점·만화방 등 청소년(청소년보호법 제2조제1호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을 말한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 다만, 슈퍼마켓·편의점 등에서 부수적으로 동업종들이 취급하는 물건 또는 장치를 갖추고 이를 판매 또는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3. 야간에 주로 영업하거나 영업시간중에 자주 폐점하여 소비자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영업장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영업장 외의 장소에서 소매인 지정을 받은 경우로서 당해 장소에서 영위하는 영업의 종류를 변경하는 경우에도 그 영업장이 제1항 각호에 해당하여서는 아니된다.
[본조신설 2004.6.29]

<부칙>

②(소매인의 지정기준 등에 관한 경과조치) 이 규칙 시행당시 소매인의 지정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 제7조제1항의 개정규정에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

보건소 담당자와 통화를 마치고 전화번호 안내를 받아 해당 약국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뒤에 받았다. 자칫 기분 상하게 할까봐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저기요,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요 바쁘니까 얼른 말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약국에서 담배 팔고 계시죠? 파신 지 얼마나 됐습니까?"
"한 30년 됐어요."
"아 그래요, 계속 파실 작정입니까?"
"우리가 담배 파는데 당신이 뭐 보태준 것 있어요?"
"그게 아니라…."
"바쁘니까 끊어요."
"뚝!"

용기가 나지 않아서 다시 걸지 못했다. 나는 약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한 놈 취급까지 당하다니. 내 생각이 틀린 걸까? 내가 몰상식한 건가?

보건소 담당자에 따르면 담배판매로 월세까지 나온다고 하니 내가 약국에서 담배를 팔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 좀 해봅시다"거나 "고민이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담배의 위해성을 알긴 하지만 그게 맘 같지 않네요"라는 진지한 이야기 한마디면 될 것을…. 이런 사람이라면 돈벌이의 방편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에 씁쓸하다. 담배와 금연초를 함께 파는 약국에서 되레 큰소리를 치다니.

차후에 보건당국과 법률제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세상사 의지대로만 되지 않겠지만 소급적용을 해서라도 국민 건강을 챙기겠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금연구역만 지정하고, 담뱃값만 올려 흡연자와 서민 주름살 깊게 하지 말고 판매와 유통을 투명하게 하기를 바란다.

끝으로 차라리 국민건강을 그토록 걱정한다면 이제는 국내에서 담배 판매는 물론이고 생산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 연속인 이 놈의 담배를 아직 못 끊고 있는 죄인가도 싶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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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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