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독서 삼매경성락
어머니는 아프고 고단한 세월을 노래로 버텨오셨다. 혼자 밭일이나 빨래를 하실 때에는 늘 빼어난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 속에서 삶을 헤쳐 가는 지혜를 얻고 작은 마음의 평정이라도 찾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머니의 노래가 사라졌다.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또 여쭙는 것도 쑥스러울 듯 싶어 그냥 궁금증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치매를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본 후부터 사라져버린 노래의 의미가 마음에 걸린다. 어떤 징조가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든다. 적어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노래가 차지했던 비중이야말로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사이 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고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신 것은 느껴진다. 며칠 전 하셨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일도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꼭 그것이 치매의 사전증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초겨울, 어머니는 불쑥 이런 말을 하셨다. 아버지와 나, 동생과의 간단치 않은 불화와 그 와중에서 두 배, 세 배의 마음고생을 겪는 어머니가 툭 던진 그 한마디에 적잖이 놀랐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지. 그냥 차를 타고 어디로 하염없이 가 봤으면 좋겠다."
여행이라도 한 번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딱히 동행할 수 있는 친구 분이 가까이 있지도 않고, 마음 안 맞는 아버지와의 여행은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중될 것 같아 그렇게 넘기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이웃해 있는 빈 기도원의 물건을 정리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 기도원은 문을 닫았고 건물을 일시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물건들도 버리고 갔는데, 어머니는 보자기에 가득 싸여져 있는 책들을 한 아름씩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날부터 어머니의 독서가 시작된 것이다.
그 때가 초겨울이었으니 벌써 세 달 여 독서에 빠져 계시는 것이다. 세끼 식사를 챙기시고 빨래를 하는 시간 외에는 오직 책을 읽는 데에 몰두하신다. 그렇게 한 번 가져온 책을 모두 읽으면 다시 기도원에 갖다 놓고 다른 책들을 골라 오곤 하신다. 아마 열댓 권은 족히 독파하셨을 듯싶다.
기도원에 있던 책인지라 주로 종교에 관련된 책들이 많으나 개의치 않으시는 눈치다. 읽을만 하다고 하신다. 가져다 놓으신 책들을 살펴보니 <앵무새 죽이기> <영원한 제국> <무서운 아이들> <미완의 사랑> <생의 이면> <길은 직선이다> 등 소설 또는 수필집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