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과문인지 이헌재 사모곡인지..."

심상정 "차라리 부정부패는 묻지 않는다고 국민 설득하라"

등록 2005.03.09 18:35수정 2005.03.0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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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자료사진)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노 대통령이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발표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인지 '이헌재 사모곡'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심 의원은 9일 자신의 홈페이지(www.minsim.or.kr) 칼럼란을 통해 이같은 비판을 제기하며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볼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 대통령이 이 부총리를 '해일에 휩쓸려 가는 장수'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심 의원은 "이 부총리에 대한 애정이 지나칠 정도로 물씬 배어있다"며 "4천만 국민의 마음이 아니라 '부도덕한 장수'의 처지에서 문제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전쟁을 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노대통령이 직접 말한 게 엊그제인데, 이 부총리는 무엇을 위한 전투에서 누구를 위해 싸우는 장수란 말인가"라고 꼬집으며 "국민이 내친 이 부총리에 대한 사모곡은 개혁성이 쇠퇴한 채 '구관이 명관' 식으로 돌아간 참여정부의 인사정책도 한 몫 한 게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경제관료 인선에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치고 그 시절 때 안 묻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논리가 판치고 있고 개혁성이니 도덕성은 아예 검토항목에 들어가지도 않는 듯이 보인다"며 "'우리는 전문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부정부패 문제를 묻지 않는다'고 밝히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솔직한 자세"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칼럼 전문.

[심상정 생각] 노 대통령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
'대국민 사과문'인가, '이헌재 사모곡'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재산 증식 파문과 관련한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3월 8일 발표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은 읽어볼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다수 국민의 정서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대국민 사과문'인지 '이헌재 사모곡'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순전히 사석에서 '인간 이헌재'를 위로하는 얘기로는 어울릴지 몰라도, '부동산 불패 신화를 꺾겠다'는 대통령이 '부동산 증식 경제수장' 문제로 상처입은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으로는 한참 엇나갔다.


노 대통령이 국민여론을 쓰나미를 연상케 하는 해일에 비유하면서 밝힌 "해일에 휩쓸려 가는 장수를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놓쳐버린 것 같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심정은 이헌재 부총리에 대한 애정이 지나칠 정도로 물씬 배어있다. 지나치면 화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대통령의 도를 넘는 애정은 이헌재 부총리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수십 억대의 부동산 증식과 이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의혹이 있는 '부도덕한 장수'로 여기는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여론재판이 끝나버린 상황이라 더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돼 부득이 사표를 수리했다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게 하겠지만 억울한 일이 있다면 풀게 하겠다는 대목에서는 노 대통령이 4천만 국민의 마음이 아니라 '부도덕한 장수'의 처지에서 문제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전쟁을 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노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게 엊그제인데, 이헌재 부총리는 무엇을 위한 전투에서 누구를 위해 싸우는 장수란 말인가.

이 부총리 부동산 파문이 26년 전 민간인 신분 때 일이고 본인이 아닌 부인의 문제였다는 대통령의 문제 진단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26년 전 일로 치부하기엔 최근 행해진 일이 분명히 있다는 정황이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재산 증식을 위한 피나는 노력의 흔적이 뚜렷한데, 왜 대통령은 이렇게 하찮은 일로 취급하는 걸까?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잣대는 단순히 불법이나 탈법행위를 했느냐 보다 훨씬 엄격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사실 불법·탈법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범법자를 가리는 기준이지 공직자의 자질을 가리는 잣대는 아니다. 도덕성이나 개혁성 등 공직자 자질 검증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부동산 투기는 나라경제 뿐 아니라 서민 살림살이를 멍들게 해온 '공공의 적'이라는 게 국민의 눈높이이고, 이것은 한국경제 50년이 남긴 생생한 교훈이다. 오죽하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5적의 공통점이 부동산투기꾼이라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불법행위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니 거액의 부동산 증식도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논리는 국민의 눈높이로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내친 이헌재 부총리에 대해 노 대통령이 사모곡에 가까운 심정을 밝힌 데에는 개혁성이 쇠퇴한 채 '구관이 명관' 식으로 돌아간 참여정부의 인사정책도 한 몫 한 게 아닐까. 참여정부가 초기에 내세웠던 개혁성이란 인사기준은 실용주의란 말로 대체돼 실종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도덕성이니 개혁성보다는 전문성을 따지게 되고 '구관이 명관'식 인사가 돼버렸다.

더구나 과거 성장제일주의나 신자유주의정책의 연장선에서 경제정책을 펼치다 보니 경제관료는 박정희 정권이래 변치 않는 성장론자 일색이었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 치고 그 시절 때 안 묻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논리가 판치고 있고, 개혁성이니 도덕성은 아예 검토항목에 들어가지도 않는 듯이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최소한 부동산 투기에 정면으로 맞설 경제수장'을 찾기를 바라는 국민 대다수의 소박한 바램이 차기 경제부총리 인선에서도 이뤄지기 어렵지 않을까.

어차피 인사정책이 이렇게 되는 바에야 '투명사회협약'이다 뭐다 해서 뭔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식으로 할 게 아니라, '우리는 전문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부정부패 문제를 묻지 않는다'고 밝히고 그 연장선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게 솔직한 자세 아닐까.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불린 사람들이야 살 맛 느낄지 모르지만 집 없는 서민, 일자리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살기 힘들어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근래 보기 드물게 벌어지고 있다는 통계나, 빈부 양극화의 핵 중 하나가 부동산 문제라는 것은 상식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자꾸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줄이고 가난한 사람을 껴안으려는 정책을 펼쳐야 하고, 참여정부는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이 점에서 제 구실을 하리라 기대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청와대 주최 참여정부 2년 평가 토론회에서 지적되었듯이 '구호만 요란'했지 빈부격차를 개선하고 분배를 통해 서민을 살릴 대책은 미흡했다. 특히 '신뉴딜정책'이라 불리는 부동산개발정책을 잇따라 추진해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이나 인사정책의 방향을 바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서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로 시작되는 감동어린 '서민 사모곡'을 참여정부에서 고대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일까.

2005년 3월 9일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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