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짜이 아저씨, 절 그만 내버려 두세요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여행기

등록 2005.03.14 16:45수정 2005.03.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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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역사나 세계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역사책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었다. 사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지만 중학교 역사책에 어느 단락 마지막에 사진 하나가 그 때 내 마음을 빼앗았던 적이 있다. 흑백 사진 속의 사원은 모양도 참 특이했고 거대해 보였다. 그곳이 바로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이었다.

a 보로두부르 사원의 모습

보로두부르 사원의 모습 ⓒ 김동희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과 미얀마의 바간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사원을 대표하는 보루부두르 사원에 가기 위해서는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로 가야 한다. 자카르타에서 옛 크라톤 왕국의 수도였던 족자카르타로 가는 방법은 기차를 선택했다. 가장 좋다는 '1등석(Executive Class)'을 탔음에도 기차의 속도는 우리 나라의 '무궁화'보다 못했다. 또 자주 급정거를 했는데 관성의 법칙을 심하게 일깨워 주었다.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부두르 사원은 약간 거리가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행사에서 교통편 티켓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가면 호텔 앞에서 미니 버스로 픽업을 해 준다. 그리고 몇 명을 더 태운 후 사원에 내려주고 몇 시간 후 다시 호텔에 내려준다.

나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사원에서 있고 싶은 마음에 버스 터미널에 가서 로컬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정류장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보로부두르 사원 버스 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한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도착하자마자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조그만 버스에 4~5명이 무섭게 올라왔다. 버스에서 내릴 생각도 못하고 깜짝 놀라고 무서워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들은 바로 나를 잡기 위한 '바짜이(삼륜 자전거)' 운전사들이었다. 몇 사람이 계속해서 뭐라고 해대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못 들은 척 버스에서 내렸지만 계속해서 쫓아왔다. 바짜이 운전사들도 쫓아 버릴 겸 점심도 먹을 겸 음식점에 들어가 국수 한그릇을 먹고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가 따라 나온다. 아까 나를 쫓아왔던 운전사 중 한명이 내가 밥을 먹을 동안 기다렸던 것이다. 섬뜩하기도 하고 그 노력이 가상하기도 해 그 아저씨의 바짜이에 올랐다.

그렇게 나는 바짜이를 탔다.

"보로부두르 사원 갈게요."
"그래, 그래. 그런데 여기에는 두개의 사원이 더 있어."
"작은 사원들은 안 볼래요. 하나는 오는 길에 잠시 봤어요."
"싸게 해 줄게."
"아니요. 전 보로부두루 갈래요."


계속해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를 사원 앞에 내려준다. 여긴 보로부두루 사원이 아니라 다른 곳이다.

"세군데 해서 6만루피 해 줄께."


너무 화가 나서 화를 내며 이야기를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몰려온다.
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미안하다며, 그래도 먼 곳까지 왔으니까 1만5천루피를 주고 다시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가라고 권해 준다. 터미널에서 보로부두르 사원까지는 3천루피인데….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바짜이로 온 길이 멀긴 멀었고 갈 길이 멀기도 멀었다.

보로부두르 오는 길은 힘들었다. 언덕도 많았고 또 처음처럼 유쾌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짜이 아저씨와는 말도 안 했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계속될수록 그냥 앉아 있기 미안했다. 아저씨도 힘에 부치는지 자전거 페달을 포기하고 걸으면서 밀었다. 그냥 웃으면서 내렸다. 내리막이 나오면 타겠다고 이야기하고.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바짜이 아저씨들이었고 가장 불쌍한 사람도 바짜이 아저씨였다.

a 가장 싫으면서도 가장 애처로운 빠짜이 운전사들

가장 싫으면서도 가장 애처로운 빠짜이 운전사들 ⓒ 김동희

드디어 보로부두르 사원이 내 앞에 펼쳐졌다. 언덕 끝에 높게 쌓아진 돌들이 뜨거운 햇살에 달궈져 있었다. 중학교 교과서 흑백 사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a 웅장한 보로도부르의 모습

웅장한 보로도부르의 모습 ⓒ 김동희

a 4개의 문을 따라 올라가면 중앙 석탑이 보인다.

4개의 문을 따라 올라가면 중앙 석탑이 보인다. ⓒ 김동희

보로부두르는 200만개의 돌로 쌓아져서 만들어진 거대한 대칭형 불탑이다. 그 기반은 가로 세로 118m로 정사각형이며 회랑(Galleries), 플라토(Plateau·사원의 평평한 부분), 테라스(Terrace), 중앙 사리탑(Central Stupa)로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열로 놓고 볼 경우 5km의 거리라고 하니 그 규모 또한 어마하다. 4개의 문으로 들어가면 먼저 회랑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1460개의 이야기를 담은 돌 조각과 1212개의 1000년 전 자바인의 삶과 부처에 대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 돌들을 만날 수 있다. 배, 음악가, 춤추는 여인, 왕 등 그 소재 또한 다양하다.

a 회랑을 따라 이어지는 벽화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회랑을 따라 이어지는 벽화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김동희

a 자바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벽화

자바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벽화 ⓒ 김동희

a 장고를 가지고 노래하는 자바인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장고를 가지고 노래하는 자바인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 김동희

a 부처님에게 봉양하는 모습의 벽화

부처님에게 봉양하는 모습의 벽화 ⓒ 김동희

회랑이 끝나면 평평한 부분인 플라토가 나오고 그 위에 테라스들이 세겹으로 세워져 있다. 이 테라스 안에는 432개의 부처가 앉아 있다. 손을 뻗어 속에 있는 부처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소리에 현지인이며 관광객이며 손을 뻗기에 바쁘다.

a Plateau와 테라스 사이

Plateau와 테라스 사이 ⓒ 김동희

a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열대림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열대림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 김동희

벽화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니 정말이지 그들의 생활이 잘 새겨져 있다. 1000년 전 자바인들이 내 앞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앙코르 왓에 비해 약간은 투박한 맛은 있지만 보로부두르는 앙코르 왓의 구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감동에 젖게 했다. 또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가장 위의 중앙 탑에서 내려다 보는 열대림의 모습도 사람의 마음을 확 트이게 해 주었다. 맨 위에서 보이는 산은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하던데 아무리 상상해 가며 봐도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다린지 모르겠다.

어려운 로컬 버스와 바짜이 운전사와 작렬하는 태양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진이 빠졌지만 다시 그곳이 그립다. 역사책의 흑백 사진이 세월이 흘러 내 얼굴이 들어간 칼라 사진으로 내 손에 들어왔고 또한 내 마음에 들어왔다. 앙코르 왓과는 또 다른 맛의 새로운 사원을 만났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12월 10일부터 2주 동안 인도네시아를 여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4년 12월 10일부터 2주 동안 인도네시아를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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