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가 축복? 그럼 원폭은 일본에 축복인가"

진중권, 지만원에 완승 "일본 우익에 놀아나는 멍청한 한국 우익"

등록 2005.03.10 20:22수정 2005.03.1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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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보논객 진중권씨와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10일 < CBS저널 >에 출연, 친일과 과거사 청산,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평가 등을 중심으로 상반된 논리를 펼쳤다.

진보논객 진중권씨와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10일 < CBS저널 >에 출연, 친일과 과거사 청산,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평가 등을 중심으로 상반된 논리를 펼쳤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일본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전쟁이 일본 본토로 확대됐을 것이고 일본인 수천만 명이 사망했을 것이다. 고로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일본 사람들에게 축복이다. 그럼 '원자복탄'이라고 불러야겠다."

진보논객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일제 식민지배는 축복"이란 한승조 전 고대 명예교수 주장의 부당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음에도 '한민족은 자기 스스로 설 수 없다'는 부당한 전제 위에 일제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궤변이라는 것.

진 교수는 10일 보수논객이자 한씨 옹호를 자처하고 나선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과 CBS-TV 시사프로그램 < CBS저널 >에 패널로 출연, '친일 비판자는 좌익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이날 토론은 오후 CBS 목동 사옥 지하 3층 공개홀에서 녹화됐다.

10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두 논객은 우익과 좌익의 정체성, 친일과 과거사 청산,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평가 등을 중심으로 상반된 논리를 펼쳤다. 특히 과거사 청산 움직임조차 좌익세력의 음모론으로 공격하고 있는 일부 우익 인사를 향한 진 교수의 통렬한 반박이 시종 눈길을 끌었다.

지만원 "조선·동아도 논문 보지 않고 비난"

지 소장은 우선 한 교수를 적극 옹호하는 발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논문 전체를 보지 않고 문장 하나만 빼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 논문 전체로 볼 때 전혀 비난받을 내용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익인사조차 논문을 읽어보지 않고 기사만 본 채 자신을 욕하더라고 전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라고 힐난했다.

그러나 진 교수는 "국민들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한씨) 논문 전문을 읽어보고 판단한다"며 지 소장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일본 식민지배는 축복' 발언의 진원이 됐던 러일전쟁 해석과 관련, 그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가정을 하더라도 그럴 듯하게 하라"고 일축했다.


그는 "일본은 서구에 대한 아시아의 첫 승리라고 할만큼 러일전쟁에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다"면서 "그런 생각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주장을 뒷받침했고 일본 파시스트 주장의 근거가 됐는데, 한국 사람들이 그 논리를 쓰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꼬집었다.

지 소장은 "저들이 미선·효순이를 내세워 반미감정을 일으킨 것과 몇 안되는 부끄러운 애석한 과거를 갖고 할머니들을 앞세워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방법이 똑같다"면서 "용기 있고 의미 있는 지적"으로 한 교수 발언을 추켜세웠다.


이어 "세계 열강이 과학화되고 선진화될 때 경복궁 돌담 안에 앉아서 저희끼리 노론소론 하고 모함하고 귀양보내고 싸우고 그런 모습으로 36년간을 지냈다면 일본이 떠나간 뒤 도로, 철도, 발전소, 항만, 건물, 법률 등이 있을 수 있었겠느냐"며 일제 식민지대가 조선 근대화에 미친 영향을 추켜세웠다.

그러자 진 교수는 "'우리 스스로 설 수 없다'는 부당한 전제로 국민성을 비하한 발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 소장은 '자성'이라고 항변하자, 진 교수는 "일본 우익의 '자학사관'에 놀아나는 멍청한 한국 우익"이라고 되받아쳤다.

진 교수는 "독일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반성을 자학증세라고 폄하하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발발과 위안부 동원 등에 대한 반성을 자학증이라고 부르는 걸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공장소에서만은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진중권 "일본 우익의 '자학사관'에 놀아나는 멍청한 한국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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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신미희

열띤 토론이 오가면서 두 논객의 관심사는 과거사 청산 문제로 옮겨갔다. 지 소장은 최근 과거사 청산 움직임에 심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일본하고 잘 살면 되지 왜 이 시점에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가, 의도가 있다"고 따져 물었다.

그는 '극일, 극미론'과 함께 동반자론을 내놨다. 미국, 일본이 아니꼽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이기면 되고, 100년 전 쓸데 없는 일을 꺼내서 배척하게 하지 말자는 주장. 식민지배가 없어진 지금 '일본놈들 몰아내자'는 의도는 좌익이라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독도 망언에 대해서도 "우리가 푸대접받고 멸시받는 것은 대표선수 대통령이 수준 이하로 보여서 그렇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다께시마'라고 불러 일본에 잘못된 메시지를 줬다,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다께시마라고 하는가"라며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지만원 "386은 주사파... 북한을 조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지 소장은 일제 당시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상식을 뒤엎는 주장을 내놨다.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외교를 활용한 독립운동가로 묘사했기 때문. 그러면서 386세대를 좌익세력으로 단정한 뒤 이들이 친일청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친일 비판론을 좌익으로 규정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공산주의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라이다. 386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이고, 주사파는 북한을 조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역시 공산주의자이다. 일본이 공산주의를 미워하고 탄압하니까 그들은 일본을 숙명적으로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386은) 사회주도세력을 기득권 세력이라고 증오한다, 기득권은 다 일제를 옹호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박근혜 때리기, 박정희 때리기를 하고 위안부를 이용해 반일감정을 조장하고 있다"고 궤변을 이어갔다. 그는 '공산주의 속에 있다고 느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나 진 교수는 "대한민국엔 좌익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도 우익이고, 김대중 정부는 현대공화국이었으며 노무현 정부는 삼성공화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친일을 비판하는 것은 386 주사파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인데, 그럼 국민 모두가 주사파란 말이냐"며 "합법적 정권을 빨갱이 정권이라고 하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라며 지 소장에게 망명을 권했다.

이에 지 소장은 본인을 '대한민국을 고치려는 사람'이라며 "망명을 가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진 교수는 "아직 살 만한다는 얘기죠"라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지 소장은 "진 교수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나이트메어(악몽)가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진중권 "한국 우익 정체성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준 사건"

진 교수는 "우익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것은 일본 우익 논리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식민지배 청산은 민족자존을 지키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식민지배 근대화론'을 가리켜 "일본이 계속 주입시킨 그런 생각을 지식인들이 받아들였고, 지만원씨 같은 생각 가지고 친일을 했던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빈 라덴'에 비유한 것과 관련해 진 교수는 "그럼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도 테러리스트가 되는데, 상해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빈 라덴의 테러리즘을 헌법정신으로 갖고 있다는 말이냐"며 "지만원씨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이번 사건의 본질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치를 포기하는 이른바 근본주의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조선, 동아일보도 (한씨 발언을) 비판한다"며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 민족의 정체성마저 갖다버려야 되느냐"며 친일 비판을 좌익으로 연계시키는 논리를 경계했다.

마지막으로 진 교수는 "이번 사건은 한국 우익의 멘털리티(정체성)가 얼마만큼 썩어있는지 보여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를 청산하지도 않고 먹힐 짓을 한 사람들이 존경까지 받아왔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다시는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은 1시간10분이 넘게 계속 됐다. 두 논객의 공방은 11일 밤 11시30분과 12일 낮 12시, 13일 밤 12시30분 스카이라이프 162번 채널과 각 지역 케이블 방송을 통해 방영된다.

지만원 "우리가 일본에 먹힐 짓 했다"... 진중권 "그게 먹힐 짓 하는 것"

이날 두 논객은 일제의 식민지배 책임과 관련해서도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지만원 소장은 "만약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한국이 러시아에 먹혔을 것인데 일본에 먹혔기 때문에 해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승조 전 교수의 '일본 식민지배 축복' 발언에 대해 "러시아에 먹혔다면 독립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게 천만다행이라는 얘기로 한 것"이라는 해명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식민지배를 받게 된 것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먹힐 만하니까 먹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당했으면 나한테 잘못은 없는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뭘 배워야 하는가를 이끌어내는 식으로 해야지 (식민지배를) 무조건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중권 교수는 "정말로 먹힐 짓을 한 사람은 지만원, 한승조, 을사5적 등과 같은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일본 극우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푸념하는 지 소장에게 "그게 먹힐 짓을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먹힐만 하니까 먹혔다'는 주장에 대해 진 교수는 "서구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45년 이후 포기했다"며 "과거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민 중 행복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독일 나치와 일본 극우만 그런 얘기를 한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사람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다면 임상학적 대상이지 논의 대상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지 소장은 "얘기할 때 인격을 존중하라, 내가 정신병자란 말인가"라며 다소 격앙됐으나 진 교수는 "한국 사람을 하이에나, 들쥐, 메뚜기떼라고 부르는 것은 인격을 존중한 것인가"라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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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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