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37

남한산성 - 호랑이가 울다

등록 2005.03.11 17:07수정 2005.03.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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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쓸데없는 짓을 했더군.”

안첨지는 아침에 정신없이 주린 배를 채운 후 쉬고 있는 이진걸을 찾아가 퉁명스럽게 말을 쏘아 붙였다.


“그 계집을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뭔가?”

이진걸은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투였다.

“불쌍하지 않네? 내래 보증하건데 별 일은 없을 것이야.”
“보증이라 했나? 옛날에 자네가 2년 동안이나 가르쳤다는 애송이에게 일을 맡겼다가 홍가를 해치우는 기회를 놓쳐 버리지 않았나? 옛 말에 머리 검은 짐승은 은혜를 모르는 법이라 했네. 검에만 미쳐 살더니 어찌 그리 세상물정을 모르나? 자네의 칼 솜씨만 아니라면 내 벌써 자네를 상대도 하지 않았을 걸세.”

그 때 밖에서 인기척 소리와 함께 계화가 소반에 숭늉을 내어 왔다. 안첨지는 못 마땅한 표정으로 물러가라는 손짓만 계화에게 해 대었다.

“그런데 어렵게 사람을 시켜 굳이 여기까지 불러온 이유는 뭐네? 보아하니 여기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이진걸은 계화가 들여온 숭늉을 달게 마시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입을 삐죽였다. 안첨지는 괜히 소맷자락을 매만지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이거네?”
“사실 자네와 다른 세 놈이 당장 할일은 없어. 다른 이들은 이미 다른 일을 맡아 바삐 실행하고 있지. 그래서 그놈들에게는 다른 일을 시킬 여유가 없다는 것일세.”
“그렇다면?”
“뭐라 따로 말이 있을 때 까지는 그저 여기서 챙겨주는 밥이나 먹으며 편히 쉬게나.”
“허허허… 사방에 청나라 오랑캐놈들이 막아 서 있는 곳에서 편히 쉬라는 말입네? 허허허….”


밖으로 나오면서 문을 슬쩍 열어놓아 얘기를 엿들을 수 있었던 계화는 속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도 무엇인가 수상쩍은 이유로 급박한 상황하의 남한산성에서 이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네 이년! 무엇을 엿듣는 게냐?”

계화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물러서다가 발목을 삐고 말았고 방문이 왈칵 열리며 안첨지가 화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안의 얘기에 집중하다 보니 뒤에서 다른 이가 오는지 모른 계화의 불찰이었다.

“내가 뭐랬나? 작은 화근이라도 있어서는 아니 되네.”

안첨지는 칼을 뽑아들었고 이진걸이 급히 이를 막았다.

“아니되네!”
“자네 왜 그러는가? 또 하찮은 일로 대사(大事)를 망칠 셈이면 아무리 자네라도 내 가만있지 않을 걸세!”

이진걸은 잠시 주춤거리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말을 쏟아 내었다.

“여기서 죽이면 시신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을 것입네. 차라리 성밖으로 내보내 처리하는 것이 어떠합네?”
“성 밖에서 해결한다…?”
“오랑캐들이 가까운 곳에 있는 암문이 있을 터이니 그리로 내보내면 되지 않겠네?”
“암문에는 군졸이 없는 줄 아느냐? 그들을 구슬려 딴 곳으로 잠시 보내는 데에도 품이 드는데 귀찮은 짓 말게나.”

이진걸은 슬쩍 웃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주는 밥이나 먹으며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네. 내래 안첨지에게 누가 안 되도록 처리하고 오갔으니 걱정 놓으시게.”

안첨지는 여전히 떫은 표정으로 이진걸의 귀에 대고서 속삭였다.

“이보게, 혹시 저 계집에게 흑심이라도 품은 거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계화는 온 몸을 떨며 이진걸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기껏 목숨을 건졌나 싶었지만 이제는 또다시 앞날을 알 수 없는 채 내동댕이쳐 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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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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