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소주 한잔 어때 ?

1년만에 연락한 친구...사업실패 딛고 일어서길

등록 2005.03.12 11:25수정 2005.03.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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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저녁시간, 필자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를 보니 김아무개라는 이름이 뜬다. ‘아 ! 이런 ! 얼마나 기다렸던 전화인가 ?’ 너무나도 반갑고 기쁜 전화다.


그러나 나는 전화를 집어 들어 “야 ! 인간아 ! 뭐야 ?”라고 말해버렸다. 필자의 본심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인사말을 내뱉고만 것이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급하게 한 인사가 오히려 화를 내고 만 꼴이 된 것이다.

김아무개는 내게 그냥 친구라고 말하기엔 표현의 한계를 느끼는, 정말 친한 친구다. 그와 난 과동기로 20대 시절 아침부터 저녁, 아니 밤늦게까지 늘 함께 다니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그런 친구였다.

1년 만에 나타난 친구

내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정 붙이지 못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내게 정을 준, 그래서 믿고 의지했던 그런 친구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우리의 그런 우정은 계속 이어지던 가운데 1년 전부터 김아무개와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김아무개는 5~6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해 승승장구해왔다. 그러나 작년 초, 안 좋아진 국내 경기상황과 맞물려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났다. 친구는 그 후 재기를 노려보는 등 온갖 노력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는지 1년 전부터는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누구보다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친구에 대한 걱정은 순간적으로 잊은 채1년간 연락 한 번 안 줬다는 서울함에 전화통화를 그렇게 시작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친구가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 와 있다는 말에 급히 책상을 정리하고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하루에도 수차례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1년여만의 상봉은 굳은 악수로 시작되었다. 제일먼저 눈에 띈 것은 하얗게 물든 친구의 앞머리와 살이 많이 빠진 얼굴이었다. 친구는 “오랜만이구나”란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친구의 한톤 낮아진 목소리는 지나칠 만큼 차분했고 그의 엷은 미소는 그간 마음고생을 짐작하게 한다. 친구와 난 근처 소주 집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그간의 안부와 밀린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친구는 부도로 인한 후유증을 감당할 수 없어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피치 못하게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단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에게도 간혹 안부만 전하며 그간 사업적으로 관계되었던 협력업체 사람들을 만나 문제해결을 도모해 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부도로 인한 문제가 완전히 마무리 된 것은 아니지만 급하게 해결해야 될 문제는 어느 정도 처리한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 중 이라고 한다.

과거 의기왕성 했던 친구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몸 건강하게 새로운 일을 모색할 만큼의 의지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나준 친구가 고맙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밀린 얘기를 나누며 몇 잔의 소주를 주고받는 가운데 친구는 “사실 작년에는 하루에도 수차례는 죽고 싶은 심정 이었다”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테이블에 놓인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신 후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대는 친구의 모습에서 사업실패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날 밤 우리는 늦게까지 그렇게 소주를 나눠 마셨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는 이유야 어찌됐든 필자의 친구와 같이 곤란에 처해있는, 그래서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낙담하고 거리로 내몰리며 최악의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된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언제 어떻게든 크고 작은 어려움과 좌절에 빠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어려움과 좌절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에게 닫치는 어려움과 좌절이라는 것도 사람의 일인지라 능히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다가온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지력, 인내심도 천차만별인지라 누군가는 슬기롭게 극복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좌절하여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움과 좌절에 처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될만한 친구나 동지가 있어 진심어린 조언이나 용기라도 북돋아 준다면 최근 우리사회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친구와의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실 작년에는 하루에도 수차례는 죽고 싶은 심정 이었다”라는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을 것인가.

그래서 필자는 권하고 싶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친구나 이웃이 있거든 오늘저녁 퇴근길에라도 당장 전화하라고, 그리고 “여보게 ! 소주 한잔 어때?”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재소자 및 우리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편지를 나누며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봉사모임인 '편지쓰는 사람들'(www.letterpeoples.com)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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