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그릇 씻어 주나요?

등록 2005.03.13 04:38수정 2005.03.1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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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2000년 11월) 나는 '내 분명 씻어주지 말라고 했데이'라는 제목으로 자장면 먹고 난 다음 그릇을 씻어주자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다들 먹고 남은 자장면 그릇에 관심이 많았는지 그 때 그 기사는 조회수도 많았고 의견도 많았다. 의견은 찬반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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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분명 씻어주지 말라고 했데이"

'내 돈 내고 사먹는데 씻어줄 필요가 뭐 있나'와 '그냥 내놓으면 지저분하니 씻어서 내놓자' 이렇게 두 부류였다. 당시 내 경우는 씻어서 내놓았는데 그럴 때면 항상 남편이 딴지를 걸었다. 제발 니 혼자 별스럽게 굴지 말라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하였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배달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취하는 행동은 별로 변한 것 같지가 않다. 우리 집의 경우 남편이 더 이상 니 잘났네 하며 핀잔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바뀌었다면 바뀌었달까.

아파트에서 함께 어울리는 아주머니들의 경우 처음에는 내가 배달 음식 그릇들을 씻어서 주자 남편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굳이 씻어서 줄 것까지야. 5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세제를 풀어서 씻지는 않지만 한번 헹구어서 남은 찌꺼기가 없도록 해서 내놓는다.

그러나 배달하는 사람들의 그릇 수거해 가는 통을 어쩌다 보게 될 때면 거의가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에다 나무젓가락이며 랩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씻어주고 자시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파트 내에서 시켜 먹을 경우만큼은 그릇을 씻어서 내놓으면 어떨까.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경우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만큼 바빠서라기보다 휴일이라든가 혹은 지인들끼리 모여 놀다가 시켜 먹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성의가 없어서 못 씻을지언정 시간이 없어서 못 씻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지 않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는 결국은 내가 더 편하게 사는 지름길이다. 아무리 돈을 지불했다고 하지만 그냥 내놓는 것은 맛있게 먹은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느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릇을 씻어서 내주니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과 음식점 그리고 나 사이에 모종의 신뢰가 쌓이는 듯했다. 많은 경우 그릇을 씻어주는 집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내놓으세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냥 내놓잖아요. 저희가 씻으면 돼요."
"아니죠.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주면 아저씨들이 훨씬 수월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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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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