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가 되어버린 콩나물정명희
흔히들 중 고등학교 교실 사정이 열악함을 얘기할 때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교실 어쩌고 하는 표현을 잘 쓴다. 정말이지 콩나물을 심어놓은 콩나물시루를 보면 콩나물들이 빽빽하게 꽉 차 있다.
콩나물을 늘 사먹다가 지난 설날 시어머님이 준 콩나물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나 또한 이번엔 진짜 성공을 외치며 콩나물을 직접 길러보기로 하였다. 예전에도 콩나물을 몇 번 길러보았지만 늘 실패했다.
요즘은 콩만 넣어놓으면 저절로 자라는 콩나물 기계도 있다고 들었으나, 나는 그런 기계가 없었기에 그냥 빈 화분을 깨끗이 씻어서 거기에다 콩나물을 기르기로 하였다. 콩을 물에 담가서 며칠 두니 싹이 텄다. 화분 바닥에 물 빠짐이 좋은 헝겊을 깔고 싹이 난 콩을 얹었다.
그리고 여분의 행주를 덮개로 하여 싱크대 주변에 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었다. 콩은 무럭무럭 자랐다. 매일매일 쑥쑥 자라서 일주일쯤 되자 화분의 높이와 수평이 되었다. 어? 그런데 이게 웬일?
이번에도 실패인 것 같았다. 어쩐지 잘 자란다 했는데 콩나물이 너무 웃자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살은 안찌고 멀대처럼 키만 커버린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으니 나는 만날 이런 식으로 실패를 하였다.
콩의 양을 좀 더 많이 할 걸 그랬나... 내 딴에는 많이 한다고 했는데도 제대로 콩나물이 자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나 보다. 제대로 된 콩나물을 얻으려면 콩의 양을 많이 하여서 시루가 좀 빽빽해야 콩나물의 키가 알맞아지고 또, 살이 올라 오동통해지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당장 버리기도 뭣하고 하여서 덮개도 덮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였는데 콩나물은 그런 줄도 모르고 쑥쑥 잘만 자랐다. 어? 그런데 그 멀대 같이 누렇게 길기만 하던 것이 점점 예뻐지는 것이 아닌가.
햇볕을 차단하지 않아서 그런지 콩나물머리의 색깔이 노란색에서 푸른색으로 점점 바뀌어 가더니 그 속에서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예전에 콩나물을 사다 먹으면서 심심풀이로 콩나물 몇 가닥을 유리병에 키워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왕 이렇게 실패 본 것, 화끈하게 화초로 한번 키워보자. 아직 봄이라고는 하지만 새순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시절이라서 그런지 콩나물 화초는 무척 싱그러웠다. 아이들도 여린 초록의 싱그러움이 마냥 신기한 듯 환하게 웃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콩나물 화초를 감상하였다.
"엄마, 이 콩나물 화초 정말 예쁘다."
"그래, 니 눈에도 예쁘냐? 내 눈에도 무지 예쁘다."
"이거 내 화초 할래."
"그래, 대신 그 화초처럼 마음이 예뻐져야 한다, 알겠지?"
"호호호, 알았어. 엄마는 못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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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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