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야기꾼 예수에게 배우는 삶의 윤리

하비콕스의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록 2005.03.15 13:24수정 2005.03.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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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출판사

하비콕스는 하버드 대학 못지 않게 명성이 높은 현대신학의 총아다. 그는 철저히 세속화된 현대 도시문명 가운데서 그리스도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색한 <세속의 도시>라는 화제작으로 60년대에 이미 일약 세계적인 신학자로 급부상한 바 있다.

그 밖에도 21세기 종교와 성령운동을 분석한 책 <영성, 음악, 여성>(Fire from Heaven) 출간과 더불어 96년 내한한 바 있어 한국인들에게도 그다지 낯선 편은 아니다. 지난 40여년간 하버드에서 역사 및 사회신학 교수로 일해 온 그는 80년대 초반에 대학 당국으로부터 이색적인 제안을 받게 되었다. 신학대학이 아닌 일반학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예수의 윤리'를 다루는 과목을 하나 맡아 강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하버드 대학은 그동안 연구중심 대학으로 많은 전문가들을 양성해 왔으나,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데는 크게 미흡했음을 반성했다. 그래서 학부생들로 하여금 졸업 때까지 여럿 개설된 '윤리적 사유' 관련 과목 하나를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하비콕스도 '예수와 윤리적 삶'이라는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한 콕스의 예수 강의는, 그때부터 약 20여년 동안 매년 수강생이 7~8백명씩이나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본래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에서 출발한 하버드 대학이지만, 어느덧 세속주의의 보루가 된 지 오래였던 하버드에서 예수는 콕스의 멋들어진 강의로 다시금 복권됐다.

콕스는 하버드대를 세속사회의 상징적 축소판으로 보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예수가 가르친 윤리가 여전히 상당한 호소력이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강의에 대한 종합 보고서로 이 책을 썼다. 실제로 그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 가운데는 그리스도교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 외에도 힌두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다수 참석했고, 인종적으로나 사회 경제적 계층으로도 매우 다양했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다양한 종교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예수의 윤리는 고루한 것이 아니라 아주 매혹적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이 책에서 저자가 의도한 바는, 1세기 갈릴리의 랍비였던 예수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어떤 윤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현대적 예수탐색’, 혹은 ‘현대인들을 위한 기독론’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 하비콕스는 서두에서 최근 북미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경향에 대한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진짜 예수(real jesus)를 밝혀내겠다고 야심차게 시작된 역사적 예수 탐구가 역사적 인물로 예수를 ‘발굴’했을지는 모르나 그를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금의 역사적 예수 탐구가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종교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이나 ‘과학적’ 연구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훨씬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예수에 관한 기록은 기본적으로 전승된 ‘이야기’(narrative)이기 때문에 예수는 역사적 증거도 희박한 상태에서 과학으로 밝혀질 수 있을 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콕스가 역사적 연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지금 당면해 있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예수와 우리의 간극을 잇기 위한 상상력이 더욱 중요하다 말이다.

이 책에서 콕스는 예수를 율법을 가르치고 이야기하며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려 애쓴 유대인 랍비 전통에 서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예수는 랍비들이 흔히 그랬듯이 이론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지 않았고, 어려운 질문을 받더라도 쉬운 답을 주는 대신에 되묻거나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상대방의 윤리적 사고를 심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저자가 이렇게 예수를 유대 랍비로 보는 것은, 예수를 단지 그리스도교의 정형화된 틀 안에 갇힌 인물로 묶어 두지 않고 현대인들을 위한 훌륭한 윤리적 모본으로 삼기 위한 시도로 매우 참신하고 뜻 깊은 작업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잃어 버린 시대, 아니 이야기의 홍수시대에 살면서 영적 허기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콕스는 인간 실존의 결정적 차원을 말해 주는 최고의 이야기꾼 예수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을 탄생부터 부활까지 천천히 더듬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가르친 윤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손에 잡히듯 ‘논증’해 주지는 않는다. 강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강의 과정에 어떤 에피소드들이 벌어졌는지를 말하는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저자의 중요한 의도가 깔려 있다. 콕스는 강의 자체를 혼자서 명쾌하고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주는 방법을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되도록이면 학생들과 더불어 예수가 가르친 윤리적 사유가 무엇인지 철저한 토론 작업을 통해 같이 깨우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던(요15:15) 대목에서 “윤리적 삶을 사는 것은 단독 비행이 아님”을 힘주어 강조한다. 예수마저도 제자들을 ‘친구’로 삼고 그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하고 대화하였던 예에서 드러나듯이, 윤리적 삶은 똑똑한 사람 혼자서 해답을 내놓고 결단하고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공동으로 풀어야할 과제로 보는 것이다.

콕스는 일간신문의 칼럼에 기고하는 도덕과 예절의 전문가들처럼 확실한 개인적 충고를 주는 것을 거부한다. 윤리적 삶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지 손에 잡히는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예수의 비유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보기에 예수가 들려준 대부분의 비유는 마치 선(禪)의 이야기처럼 청중으로 하여금 어리둥절함, 난처함, 혼란함을 안겨다 주는 것을 그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비유를 “이해해 버리고 마는 것”보다 비유를 통해 충격을 받고 다시 생각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달리 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콕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생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굴해 설명하거나 해명하거나 분명히 하는 것을 거부했다. 학생들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자라나는 과정에 있었다. 자라난다고 하는 것은 불만족스럽고 불완전한 결말들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 생명이 중간에서 단절되거나 예기치 않던 방향으로 치닫거나, 화염에 휩싸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삶이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 마지막 신비의 문턱에 이를 때 우리의 삶은 모두 일종의 물음표로 끝나게 된다.”

이 책은 인공수정에서부터, 인종차별, 비폭력, 사회 불평등과 정의, 고문, 신정론적 문제 등 21세기의 현대인들이 직면한 다양한 윤리적 주제들을 예수의 생애와 더불어 생각해 보도록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답을 주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여 남겨진 많은 빈칸을 고투하며 메워 가라고 주문한다.

알다시피, 저자 하비콕스는 20세기 독일의 순교자인 디히트리히 본회퍼에게 지대한 영향을 입었다. 그의 <세속의 도시>도 그렇지만, 이 책도 본회퍼가 제안한 '복음의 비종교적 해석'의 선상에 놓여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얼핏 생각하면 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예수를 단지 훌륭한 윤리 교사쯤으로 의미 축소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갈수록 신앙인과 비 신앙인의 차이가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예수의 의미를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를 넘어 훨씬 더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살려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새가정>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새가정>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가 21세기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문예출판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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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하버드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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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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