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 엄을순 사장이프
포르노, 정말 할 말 많은 주제
- 왜 포르노인가?
“포르노에 대해선 사실 오래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여자들이 정말 할 말 많은 주제 아닌가? 그렇다고 단순히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써가지고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내공을 쌓으면서(웃음).”
- 그렇다면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한 이유는?
“얼마 전 일어난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수사과정에서 ‘포르노를 따라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명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남자들이 포르노를 즐기고 포르노를 통해 성지식을 쌓는데 이것이 옳은 일인가?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대상화하는 엽기적이고 공포적인 포르노가 난무하는 현실을 ‘어쩔 수 없다’고 두고만 볼 것인가?
그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영철 사건이나 밀양 사건을 본 사람들 대다수가 그런 고민들을 한번쯤은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침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끝나고 뭔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시기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이프>로서도 적절한 시기였다.”
- 여성이 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공적으로 드러내어 하기는 쉽지 않다. 성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은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포르노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포르노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는 복잡한 주제이다. 고민이 많았을 텐데.
“일단 나부터도 고민이 많았다. ‘이걸 다 쓸어버려?’하다가도 ‘아냐, 나부터도 뭔가 섹시한 포르노를 원하잖아?’하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다 드는데 그 생각들이 모두 일리가 있다. 그냥 무턱대고 없애고 보자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멍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방식의 포르노가 생겨날 테니까. 그 다채로운 생각들을 드러내는 게 우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까, 다 함께 고민해보자는 거다.
더욱이 우리는 이미 포르노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텔레비전과 잡지는 물론 컴퓨터와 휴대전화로도 쉴 새 없이 포르노는 소비된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무감각해지고 적응을 하는 거다. 이래서는 안 된다, 포르노를 가지고 한바탕 떠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물론 ‘밝히는 여자들’이라는 욕도 먹고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야 워낙 무서운 게 없는 사람들 아닌가?(웃음)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시작할 때도 ‘재밌는데 왜 그래?’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그래, 여자들 수영복 입혀놓고 물건 재듯이 하는 건 좀 그랬어’하는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그렇게 해서 공중파 방송에서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가 사라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말하고 고민하는 판을 벌려놓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올 6월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로 한바탕 놀아볼 것”
- 안티 페스티벌과 같이 포르노에 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오는 6월에 ‘안티 (성)폭력’이라는 주제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다. 이미 몇 가지 아이템은 제작 단계로 접어들었다. 밀양 사건에 대해 여, 남의 위치를 바꿔서 보여주는 단편을 비롯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좋은 의견을 주실 분들, 도움을 주실 분들은 언제라도 환영한다.”
- 행사의 기획 의도는?
“포르노의 정체를 한번 알아보자는 것이다. 안티 페스티벌을 통해 미스코리아 대회의 실체를 까발렸던 것처럼. 우리 사회가 온통 포르노 홍수인데 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무작정 즐겨도 되는지, 피하기만 해야 하는지. 이런 자리를 통해서 함께 모여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포르노를 데리고 놀아보자는 거다.”
- 개인적으로 포르노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성의 욕망을 왜곡시킨다는 거다. 언젠가 여자를 바위 위에 눕혀놓고 섹스(여느 포르노에서 그러하듯 거의 강간에 가까운)를 하는데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더라. 내가 보기엔 그게 좋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바위에 등이 까져서 아파서 내는 소리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아 저렇게 하면 여자가 좋아하는 구나’하고 오해할 거다. 이처럼 성에 관한 잘못된 판타지를 마구 생산해낸다는 것, 여자에 대한 폭력성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포르노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