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해보셨습니까?

등록 2005.03.16 11:03수정 2005.03.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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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삽은 우주공간을 열어주는 매개자이다. 삽날이 없다면 흙은 숨을 쉴 수 없다.

삽은 우주공간을 열어주는 매개자이다. 삽날이 없다면 흙은 숨을 쉴 수 없다. ⓒ 이우성


삽질, 그거 쉬운 일 아닙니다.
삽질에도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그 요령은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 경력의 철학, 굳은살만큼이나 연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흔히들 "삽질하고 있네"하면서 무슨 헛된 일을 하는 것에 비유해 쓰고 있지만 태양빛 쬐는 한낮에 줄기차게 삽질을 해 보십시오. 삽질,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삽질하는 삽은 땅을 쉽게 팝니다. 오른손잡이라면 왼발의 쓰임새가 큽니다. 삽날 하나 정도 크기의 적당한 공간에 삽을 세우고 왼발을 삽날 왼쪽에 놓고 삽날 깊이만큼 들어갈 정도의 힘을 왼발에 주어야 합니다.

삽이 땅 속 깊이 그대로 파고 들어가는 소리가 쑥 하고 경쾌하게 나면 그건 땅속으로 잘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돌에 부딪치거나 단단한 것에 날이 박히면 쇳소리가 납니다.
삽이 내는 요령부득의 소리입니다. 날이 땅 속에 바로 서지 못하고 아프다고 내는 신음소리입니다.

그때는 삽 앞쪽을 살며시 들어 돌 크기만큼 짐작되는 곳까지 비켜 다시 왼발에 힘을 주면 경사도 있게 삽이 들어갑니다.

a 한삽 크기의 흙이 부단히 모여 우주를 바꾼다. 사람이 살아갈 생명체를 길러낼 흙을 살아있게 한다.

한삽 크기의 흙이 부단히 모여 우주를 바꾼다. 사람이 살아갈 생명체를 길러낼 흙을 살아있게 한다. ⓒ 이우성

삽날 크기만큼 땅속에 박히면 두 손에 힘을 주고 몸 쪽으로 당겨 퍼 올립니다.
이때부터는 손목을 이용해서 힘을 주어 퍼 올립니다. 삽은 삽날 크기만큼의 흙을 퍼 올립니다. 더 이상 자신의 몸 크기보다 더 퍼 올릴 염을 내지 않습니다.


좋고 진한 땅일수록 두 손에 힘을 주어야 합니다. 퍼 올린 흙은 땅을 갈 때는 그 자리에 퍼 올려 그대로 뒤집으면 되고 흙을 퍼서 다른 곳으로 옮길 때는 그대로 팔목에 힘을 주고 반경을 그리면서 퍼 올립니다.

흙은 이렇듯 뒤집으며, 퍼 올리며 숨통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숨 쉬며 살아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3년 이상 농약, 비료 없이 유기재배를 하여 살아있는 땅은 숨통이 그대로 열려 있으니 무경운으로 두어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땅은 숨통을 자주 열어주어야 땅의 기온이 지표면과 닿아 숨 쉴 공간을 마련하고 가열 차게 맥박의 고동을 울리는 것입니다. 지렁이, 땅강아지, 두더지도 흙의 숨통을 열어주는 상일꾼이지요.

땅은 두 번 정도 뒤집어 주면 좋다고 합니다. 골고루 숨통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자, 이제 두 번 뒤집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하고 그 땀방울들이 그대로 내 몸에서 빠져 나가 땅 속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그 땀방울을 먹고 다시 땅이 숨을 쉬는 것입니다.

땅과 땀은 발음도 비슷합니다. 온몸이 땀에 젖고 땅의 흙먼지, 냄새가 내 몸속에 스며들어 절로 나는 땀. 그 땀을 통해, 땅 기운으로 사람도 숨을 쉽니다.

땅과 땀의 보이지 않는 교감 속에, 절묘한 조화 속에, 적절한 유대감 속에 사람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합쳐지는 것입니다.

땅과 지상의 공간, 바로 우주와의 중간에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라는 소통자를 통해 우주의 원리가 건재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땅을 갈지 않겠습니까. 어찌 땀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삽질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삽질을 하면서도 그 하나의 행위 속에 담긴 우주의 철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제 시골 들판은 끊임없이 흙을 파고 일구고 씨앗을 뿌리는 경건한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땅과 하늘 공간을 연결하는 성스러운 사람의 몸짓입니다. 삽질, 이젠 성스러운 의미로 쓰여져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제 시골 들판은 끊임없이 흙을 파고 일구고 씨앗을 뿌리는 경건한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땅과 하늘 공간을 연결하는 성스러운 사람의 몸짓입니다. 삽질, 이젠 성스러운 의미로 쓰여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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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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