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성찰은 치유를 낳는다

김형경의 아마추어 정신분석서 <사람 풍경>

등록 2005.03.16 18:10수정 2005.03.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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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형경 에세이 <사람 풍경>

김형경 에세이 <사람 풍경> ⓒ 아침바다

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 지는 꽤 됐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이후 김형경의 글쓰기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그이가 세계여행기이자 심리에세이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만하다.

그러나 <사람 풍경>(아침바다 2004.12)은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도 끝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명제-인간의 무의식은 유아기 엄마의 보살핌에서 비롯된다-가 도처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모든 원인을 '엄마'로 귀결시켜 버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명제가 결코 '항상 참'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명제를 떠나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야 소설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넘기고 읽을 수 있었지만, 에세이는 달랐다. 거의 한 달 이상 책 앞장만 들추다 말았다.

참고 보자. 처음엔 이런 생각이었다. 이 책을 빌려준 친구의 성의도 있고 내 고집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을 읽을 수조차 없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나는 어느새 <사람 풍경>에 푹 빠져버렸다. 물론 이 책은 초지일관 인간 심리의 모든 원인을 '엄마'로 귀결시켰고, 그런 구절을 만날 때마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은 그런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내 손끝을, 내 시선을,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이 책은 기행문의 형식을 빈 비전문가의 정신분석서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정신분석 치료란 인간 심리의 표면이 아닌 그런 심리가 있게 한 무의식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저자 김형경이 세계 각국의 풍경과 역사와 사람을 만나면서 깨닫게 되는 무의식은 내게도 큰 공감을 일으켰다. 인간의 모든 의식은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부정하고 싶었던, 혹은 깨닫지 못했던 내재적 과거아(內在的 過去兒)로부터 나온다는 것, 인간이 타인에게 느끼는 분노·우울·불안·공포·의존·질투·시기·콤플렉스의 원인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는 것, 따라서 정신의 치유는 자기 안에 감춰진 자신을 찾아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이 평소 정신분석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었던 내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저자가 정신분석의 비전문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정신을 분석하고 치료하는 치료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와 그것이 있게 한 내재적 과거아(內在的 過去兒)를 드러내는 환자의 입장에서 정신분석을 이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김형경은 수년 간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이 책을 쓰게 했다. 제 아무리 훌륭한 정신분석 전문가라 하더라도 치료받는 자의 내밀한 성찰과 고백보다 풍부하고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타인을 미워하거나, 혹은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면서 산다. 이 책에 따르면 분노·우울·불안·공포·의존·중독·질투·시기심·투사·분리·회피·콤플렉스 등 인간이 느끼는 부정적 심리의 원인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자기자신에게 있다.

자기성찰과 그에 대한 시인이야말로 건강한 정신,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당연한 결론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일 것이다.

'내 안의 나'를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세계일주보다도 더 멀고 험난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찰'은 세계여행은 감히 상상도 못할 치유의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자, 이제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날 시간이다.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사람풍경,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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