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군 항공모함 키티호크호 및 소속 선단이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4일 부산항과 진해 및 평택항으로 입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키티호크 항모에는 5200여 명의 미해군과 미해군 최신예 전투기 F-18 슈퍼호넷 등 60여 대의 항공기가 탑재돼 있다고 한다. 또 항모전단소속 구축함 빈센스호와 순양함 카우펜스호를 비롯한 6척의 함정도 함께 입항해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적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항공모함 키티호크호는 오는 19일부터 25일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되는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 및 '독수리 연습'에 참가해 한국군과 합동훈련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통상적 군사훈련이겠지만 지금 시기가 시기인지라 초강대국과 함께 하는 대규모 군사 훈련에 걱정되기도 한다. 지금은 북한의 핵무장 선언으로 북미간 군사적 충돌 국면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미간의 대규모 군사 이동이 평소와 달리 특별하게 관심을 끄는 예민한 국면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은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안정에 오히려 마이너스적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미국은 군사훈련 중에도 상대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기에 한반도 긴장을 급격하게 고조 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은 건국 후 약 200여 회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지만 선전포고를 하고 치른 전쟁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따라서 선전포고가 없는 기습적 공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위한 선전포고권은 미국에서 원래 의회의 고유 권한이지만 역사적으로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다. 그 결과 선전포고를 하고 치른 전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제1차 세계대전(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및 제2차 세계대전(일본, 독일, 이태리,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대 스페인 전쟁(1898), 멕시코전쟁(1846), 그리고 1812년의 영국과의 전쟁 등 5회(국별로는 11회)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선전포고라는 절차 없이 전쟁이 감행되었기에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상대방에게는 늘 전쟁의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군사훈련을 위해 집결된 항모에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기에 단순히 군사훈련으로만 간주되지도 않는 측면도 있다. 실재 1986년 리비아의 가다피를 폭격할 당시에도 군사훈련 명분으로 지중해에 있던 항모에서 직접 폭격을 감행하여 가다피의 딸이 폭사당하기도 했다(영국에 있던 미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비행기도 공격에 합류했다). 따라서 외형적으로 단순한 군사훈련도 상대방에게는 큰 위협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크게 고조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군사적 긴장감 조성이 상대방을 예민하게 만들어 상대방의 과민반응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으로서는 단순한 군사훈련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공격이 예상되는 피할 수 없는 전쟁 국면이라 오판하고 선제공격을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미 80년대의 리비아 폭격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전포고도 없이 군사훈련의 연장선상에서 가다피의 살해를 목적으로 한 폭격을 감행한 것을 북한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공포심리에서 뜻하지 않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북한 이란 등 전통적으로 ‘불량국가’ 혹은 ‘악의 축’으로 명명한 국가에 대해서는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기에 북한이 가지게 될 공포감은 과거에 비해 더 클 것이다. 공포감이 전쟁을 유발한다는 전쟁 전문가들의 분석을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군사적 충돌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 우발적 혹은 의도된 충돌사건이 발생하여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또 의도하지 않았던 전쟁으로 돌입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거 베트남전 개입의 시발이 되는 1964년의 통킹만 사건 조작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 국민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조작된 군사충돌 사건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의 구축함이 통킹만 공해상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은 전 미국민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의회도 흥분하여 압도적 다수로 결의안을 채택하여 베트남전쟁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수년 후에 폭로된 미국 국방부의 베트남비밀보고서(펜타곤페이퍼)에 의해 통킹만 사건은 베트남 전쟁을 원했던 미국의 일부 엘리트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대규모의 전쟁은 이미 깊숙한 늪으로 빠져든 상태가 되어 수습할 수 없는 국면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서로 예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접촉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이런 우발적 충돌사건은 예민하지 않은 시기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예민한 상황에서는 충돌 상황이 증폭되며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무장 선언으로 군사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국면에 진입해 있다. 따라서 북한이든 미국이든 혹은 한국이든 언제든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모든 당사자는 군사적으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안보와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평양이남 지역을 비행금지 구역으로 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또 군사적 힘이 실리지 않은 외교는 실효가 없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며 군사적 움직임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때에 하는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군사 이동과 훈련은 그 의도가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게는 큰 군사적 압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며 과민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전 정부와는 성격이 다소 다른 노무현 정부로 인해 한국 정부의 사전 양해와 협력이 없는 미국만의 일방적 전쟁 가능성은 쉽지 않겠지만, 있을 수 있는 충돌 가능성을 억제시키기 위해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전시 작전지휘권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 우연하게 발생하는 돌발적인 충돌상황이라도 정부로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수도 있다. 만의 하나 미국과 북한간의 사소한 접촉사고가 발생하여 그것이 전시상황으로 해석되면 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정부가 중간에서 제어하기 힘들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훈련 중 있을 수 있는 북-미(한국)간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가능하면 예정된 훈련을 취소하거나 늦추어 북핵문제를 외교적 노력을 통해 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안정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만약, 예정된 군사훈련의 취소 혹은 연기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면 훈련지역을 휴전선 지역으로부터 많이 내려온 지역(예를 들면 수원이남 혹은 대전이남 지역)으로 한정하여 북한과 한미 군사 훈련지역 사이에 잠정적인 완충지역을 만들어 군사훈련 도중에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접촉사고가 일어날 수 없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예민한 상황에서는 평소보다 더 강화된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기에는 안보를 위한 훈련 자체가 안보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군사훈련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지만, 한번 안보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면 수습하기 힘든 국면이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안보를 지키기 위한 군사훈련이 오히려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면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이다.
94년도의 북핵 전쟁위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우리가 모르고 결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급속하게 진행될 수가 있다는 점을 깊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있을 수 있는 군사적 접촉사고를 회피하는 방어운전의 지혜가 지금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정부의 진지한 검토와 대응이 요청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노오(No)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한국>(1992) <대북한 핵억제정책과 합리적 선택>(1995) 등의 책과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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