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파트 마감재 바꿔치기를?

끊이지 않는 분쟁... 시민단체 "후분양제 도입만이 해법"

등록 2005.03.17 14:58수정 2005.03.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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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초 대림 3·5차 아파트 건축현장. 이 아파트의 시공업체인 대림산업은 최근 입주예정자에게 샘플하우스를 공개했다 마감재가 달라졌다는 이유 등으로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서초 대림 3·5차 아파트 건축현장. 이 아파트의 시공업체인 대림산업은 최근 입주예정자에게 샘플하우스를 공개했다 마감재가 달라졌다는 이유 등으로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서울 서초 대림 3·5차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인 정일홍씨. 그는 건설업체쪽이 입주전 공개한 예비주택(샘플하우스)을 보자 분노를 금치 못했다. 본보기주택(모델하우스)에서 봤던 고급스런 마감재는 온데간데 없고 전부 새로운 마감재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건물 외벽마저도 설계도면과 전혀 다른 재질의 제품으로 시공되고 있었다.

정씨는 곧바로 건설업체 현장소장을 찾아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오히려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썼다"라는 말뿐이었다. 정씨는 "좋은 품질이 아니어도 좋으니 본보기주택대로만 하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건설업체는 마감재 일부만 바꿔줄 뿐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정씨는 본보기주택 공개 당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내용을 꼼꼼하게 살핀 뒤 실제 시공에 사용된 마감재와 비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건설업체가 저가 마감재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건설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a 선택사양신청서. 아래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동의여부를 묻지 않고 변경된다는 사실만 통보하고 있다.

선택사양신청서. 아래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동의여부를 묻지 않고 변경된다는 사실만 통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하지만 해당 건설업체는 "더 나은 제품으로 바꾼 것"이라며 주민들의 반발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초 대림 3·5차 e-편한세상 시공을 맡고 있는 대림산업의 한 관계자는 "21가지의 마감재가 바뀐 것은 업그레이드를 해서 개선한 것"이라며 "필요하면 본보기주택대로 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마감재의 품질을 낮추는 경우에는 입주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품질을 개선하는 경우에는 설명만 하면 된다. 때문에 이 건설업체는 마감재 부분에 대해 특별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매끄럽지 못하게 처리해 발생한 문제"라고 이해의 뜻을 구한 뒤 "민원인들도 입주전 시세가 올라가지 않은 점에 불만을 제기하는 등 감정적인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다"며 합리적인 대응을 입주민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입주민들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외벽의 경우 실제 저가 제품으로 쓰고 있고, 내부 마감재의 경우도 본보기주택보다 저가 제품(대리석)을 쓴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마감재 무단변경 분쟁

이처럼 아파트 건설업체가 '업그레이드'라는 명분으로 마감재를 이유없이 저가 제품으로 '바꿔치기'하는 관행이 여전히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서는 선택사양(옵션) 신청서 등을 통해 교묘한 방식으로 변경을 추인받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올초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마감재 무단 변경에 따른 소비자의 피해사례는 7건. 대부분 정씨의 경우처럼 본보기주택과는 전혀 딴판으로 시공된 내부 마감재 때문에 발생한 피해사례들이다. 다음은 소비자보호원이 공개한 피해사례다.(상담자의 보호를 위해 해당 아파트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 사례 1 : 입주 2개월이 돼가는데도 하자보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 세대의 강화마루 틈새가 벌어지고 샤시에 틈이 생긴 것인지 바람이 너무 들어와서 집안이 춥다. 화장실 변기에 물이 고이지 않고 붙박이장의 선반도 본보기주택에는 있었는데 업체가 해주지 않고 있다.(박아무개씨, 1월 26일 접수)

#. 사례 2 : 2004년 1월 입주했다. 분양 당시 본보기주택 안내문과 분양 카탈로그 상에는 거실 및 주방바닥을 고급원목온돌이 설치된다고 했다. 그러나 실 시공은 입주자들에게 통고나 합의도 없이 저급 품질의 합판 돌마루로 시공이 돼있다. 업체에서는 구체적인 자료 제시 없이 모델하우스와 동일하게 시공됐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최아무개씨, 2월 18일 접수)

#. 사례 3 :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TV가 다락방안에 위치하는 등 다락공간을 마치 주거공간인 것처럼 팜플렛에는 표시해놓았다. 그러나 실제 입주한 뒤 건설업체는 방이 아니라 창고라고 주장을 한다.(노아무개씨, 1월 10일 접수)


'티 나는' 마감재 바꿔치기는 줄었지만...

최근 들어 '티 나게' 마감재를 바꾸는 경우는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동질동가가 아닐 경우 집단민원이 곧바로 제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관련 업체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원의 한 관계자는 "모델하우스나 카탈로그와 다르다, 아니면 품질이 못 미친다는 내용의 피해사례가 요즘도 접수되고는 있지만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대형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도 "적어도 요즘에는 본보기주택 마감재로 장난을 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다만 다소 애매한 방식으로 마감재의 무단변경을 추인받는 경우는 발생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교체된 마감재가 본보기주택의 그것과 비교할 때 동질동가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서초 대림 3·5차 아파트의 경우 입주민들로부터 선택사양신청서를 받으면서 4개 항목에 대해서만 선택여부를 묻고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이를 묻지 않았다. 단지 '품질 UP-Grade 및 고급화 사항'이라고 적어놓고 '통보'만 했을 뿐이다.

물론 개선인지 개악인지 입증하는 절차는 생략됐다. 마감재 변경에 대한 동의절차를 애매한 방식으로 피해간 꼴이다. 정일홍씨는 "만약 비디오로 촬영하지 않았다면 저가로 교체된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저가 제품으로의 교체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왜 이같은 관행이 아직 뿌리뽑히지 않고 있을까. 시민단체 관계자는 마감재 부분이 감리에서 제외돼 있었던 것이 '마감재 바꿔치기'를 용인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17일 "작년까지는 마감재와 관련된 부분이 감리에서 제외돼 있었다"며 "이 때문에 실제 마감재에 투여된 비용보다도 높게 분양가에 전가시키는 시스템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또 박 국장은 "본보기주택을 개방할 때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못 하도록 막아서고 있는 점도 문제"라며 "이로 인해 본보기주택과 실제 인테리어와 비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는 "후분양제의 조속한 도입만이 해법"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시민단체 "마감재 감리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 문제"

업계쪽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관행의 잔존을 인정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시공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더 좋은 마감재가 나왔다고 하거나 기존 마감재에 하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바꾸는 경우가 있다"고 실토했다. 이 관계자는 "수도권 보다는 지방에 이런 경우들이 더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반면 다른 업체의 한 관계자는 "마감재의 선택권은 현장 소장이 가지고 있는데 2년여의 시공도중 여러단계를 거치면서 하청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며 원인과 관련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정위도 이러한 업계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조사를 한층 더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표시광고법 위반 행위, 정보공시의 문제 등은 현행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조사강화에 나설 방침임을 내비쳤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아파트나 상가분양과 관련해 거래조건의 비대칭, 사회적 힘의 불균형에 의해 당하는 소비자 피해예방을 위해 정보공시 등 사전규제가 필요하다"며 16일 후속 대책 마련을 공정위에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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