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당위성 있으면 성희롱도 괜찮다?

[분석] 생산성 있는 대안적 패러디문화를 모색하다

등록 2005.03.18 00:00수정 2005.03.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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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 묵은 변비 환자를 본 적이 있는가. 그 오랜 세월, 오욕과 굴종으로 점철된 배설불능의 역사와 이를 감내해야 했던 환자의 곤란한 심정을 당신이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상상을 불허하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 이윽고 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변비환자의 표독스러운 항문에 윤활유가 허락되었다. 인터넷이라는 이름의 윤활유가 환자의 점잖지 못한 부위에 정성껏 도포되는 동안, 어느새 나타난 정체불명의 무법자가 대한민국의 뒤편에 슬그머니 다가선다.


무법자의 깍지 낀 두 손이 조용히 모이고 오롯이 고개를 들은 집게손가락의 끝자락에 한줄기 긴장감이 스치는 순간, 기마 자세에서 기인하는 반동의 힘이 손가락의 끝점으로 모아져 대한민국의 항문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짧지만 치명적인 통증이 항문을 관통하고, 거사에 성공한 무법자의 눈은 만족감으로 충만해 있다. 자, 과연 대한민국은 배설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무법자의 이름은 패러디. 그가 소화불량에 걸린 이 나라의 의식구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더불어 유력한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패러디는, 그간 정치 사회 문제로 인해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했던 대중들의 욕구불만을 배설시키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갖가지 잡음들이 등장했고, 그로 인해 패러디 열풍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패러디 활동에 대한 비판이 자칫 정당한 패러디를 공격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적과 성찰의 과정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공격을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 또한 패러디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보급률에 반하는 책임의식의 부재

최근 들어 대세로 떠오른 대중적 문화현상이지만, 사실 패러디는 고대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은 장르다. 패러디(parody)는 원래 작품을 변형/왜곡시켜서 '낯설게 할 때'의 느낌(미학이나 문학 용어로는 '소격효과')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미학적으로 패러디라는 것이 반드시 풍자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희화화나 풍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미지를 대상으로 하는 패러디가 현재 성행하고 있는 패러디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 패러디 문화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누구나 사진을 찍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리터칭할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유포시킬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해 라이브이즈닷컴, 미디어몹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딴지일보의 존재가 큰 역할을 수행했다.

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너무 쉽게 책임의식을 상실하면서 발생했다. 특히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현안일수록 좀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책임감을 상실하기 쉽다. 이렇게 책임감이 결여된 패러디 작품의 경우 최초의 취지와는 달리 맥락이 거세된 욕지거리나 단순한 비난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인터넷의 특성상 순식간에 이곳저곳으로 복사되어 게시된다.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제작자의 자기검열이 송두리째 사라진 이 과정에서 패러디의 대상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독도 영유권 분쟁 문제와 관련하여 등장한 패러디 우표는 감정이 앞선 나머지 상식선의 책임의식을 간과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일본의 일방적인 극우 선언에 분노하는 모습은 주권국가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숱한 생명을 앗아가 버린 원자폭탄을 소재로 삼아 일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삼으려는 행위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대전제 아래에서 돌아볼 때 심각한 폭력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패러디를 통해서 어떤 교훈과 감정의 배설을 노릴 수 있는 것인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a 독도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나온 패러디 우표

독도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나온 패러디 우표 ⓒ 디시인사이드

외계인과 통하려면 외계인이 되어야하고 만원짜리와 대화하려면 만원짜리 수준을 견지해야함이 옳다. 하지만 아무리 참기 힘든 커뮤니케이션이라도 개인의 책임의식이 간과되고 무시된다면 생산적인 결론이 도출될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이러한 행태는 통찰과 자기반성의 기회가 제거된 단순한 오락의 기회로 전락하면서 갈수록 생산성을 잃어가는 패러디 문화의 비극을 촉발시켰다. 이런 식으로 지속되다가는 패러디에 대한 표현의 권리를 법으로 제재당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단발성 웃음거리로 변질되어가는 패러디 문화

코미디 오락 프로그램의 시사 패러디는 전통적인 인기를 누려왔던 코너이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진 요즘이야 말로 바람직한 시사 코미디 장르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KBS 2TV는 얼마 전 본격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 파일>을 신설하며 "단순한 웃음 추구에서 탈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코미디의 형식에 가져와 다뤄보겠다"는 희망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19회를 맞고 있는 <코미디 파일>은 애초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내용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연일 프로그램의 수준을 의심한다는 내용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당초 제작진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반향 또한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간판 코너라고 할 수 있는 '17대 어전회의'는 17대 국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되었으나, 대통령을 암시하는 임금의 캐릭터를 아무런 앞뒤 맥락 없이 그저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하면서 코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a KBS 2TV의 본격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파일>

KBS 2TV의 본격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파일> ⓒ KBS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에 대한 이야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역사청산의 당위성이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입장 차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저 상호간의 비방만 나열해놓는 구성방식은, 철학이 없는 시사 패러디가 얼마나 소모적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매스컴은 사회의 목탁이요 거울이라고 했다. 시사 코미디가 자기 반영과 반성을 게을리 하고 단 한 번의 허무한 웃음에 골몰하는 행위는 결국 패러디 문화의 본질적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주객전도이며 촌철살인에서 오는 총체적 의미의 통쾌함이 아닌 말초적 웃음 밖에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할 것이다.

상당수 패러디 작품들이 악용하고 있는 성억압의 흔적들

a 박근혜씨 패러디

박근혜씨 패러디 ⓒ 라이브이즈닷컴

얼마 전 논란에 휩싸였던 한나라당 박근혜씨의 패러디 사건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했다. 영화 <해피엔드>를 패러디한 이 포스터는 박근혜씨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묘사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특정언론과 한나라당의 은밀한 공조체제를 비웃고 있다. 이 포스터가 청와대 홈페이지의 '열린마당' 초기화면에 게재되어 숱한 정치공방과 논란을 야기시켰다.

하지만 비록 이런 패러디들이 의도하고 있는 정치적 당위성이 합당하다 할지언정,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수단이 정당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고결한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주체를 억압하는 폭력을 강제한다면, 이는 폭력에 대한 폭력이라는 가장 치졸한 형태의 방법론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비단 이 패러디 작품에만 한정된 여성 비하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주위를 둘러싼 패러디 작품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희화화되어 표현된 정치인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여성의 신체와 합성되거나 여장을 한 애처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그냥 웃고 지나치기에는 함의하고 있는 폭력이 과도하다.

대상을 희극화시키는 수단으로 여성성을 대입시키는 것은, 특정 성별을 비하하고자 하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취급을 받음으로써 더욱 우스꽝스러워진 대상은, 그것을 만든 이와 보는 이로 하여금 여성에 대한 비하와 억압을 강요한다. 이것은 차리리 성희롱에 가까운 것이다.

경악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성적 유희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가치로 덮어지고 무마되는 현상이며, 이것에 동조하고 옹호하는 것이 마치 진보적인 성향인양 오도되는 논리의 비약이다.

이는 패러디라는 장르의 내부적 문제라기보다는 남녀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되어 있는 성억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패러디 문화의 문제점은 이 나라의 뿌리 깊은 고질적 병폐들과도 상당부분 궤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난과 비판, 패러디의 미래

우리는 이미 패러디가 거스를 수 없는 문화적 흐름이자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음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패러디는 소화불량과 배설불능의 지경에 이른 한국사회의 경직된 의식구조에 일침을 가한 놀라운 장르이며, 우리 사회 전반에 끼친 순기능의 영역은 미처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다.

책임감이 결여되어 빗나가버린 소수의 패러디들 때문에 전체 패러디 문화가 도매가로 비난받는 일 따위는 없어야만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성찰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인식하는 패러디 제작자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1인 미디어인 시대에 이는 범사회적인 의식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일례로 앞서 설명한 상당수 패러디 물에서 발견되는 특정 성별 비하나 노골적인 억압의 흔적들이 사회 전체적인 맥락에서 기인하는 오류임을 상기해 볼 때, 지적받아야 할 대상은 패러디 문화 자체가 아닌 대한민국 시민문화의 잠재적 폭력성이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똥침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성을 촉구하는 너그러운 똥침이 되어야 한다. '놀이' 로서의 유희적 측면을 잃지 않되, 그 숨은 맥락까지 얄팍해지는 것은 기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지적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잊지 않을 때, 패러디는 비로소 격에 맞는 생산성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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