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42

남한산성 - 귀를 세운 토끼

등록 2005.03.21 17:02수정 2005.03.2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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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뜻밖에 단단하군.”

남한산성에서 패퇴해 오는 청나라 군사들을 보며 청의 장수 투루아얼은 계화가 따르는 술을 받아 주욱 들이켰다. 투루아얼은 여진족으로서 동생과 함께 조선을 치는 전쟁에 참전했다. 전날 투루아얼의 동생은 등에 화살을 맞고 머리를 도리깨에 맞은 상태에서 여진어를 능숙히 구사하는 조선인 여인의 손에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투루아얼은 동생의 목숨을 구한 것도 기뻤지만 조선 땅 깊숙이에서 자신들의 말을 하는 여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기만 했다.


“마장군님이 오십니다!”

병사의 보고에 투루아얼은 황급히 술잔을 치우고 계화를 물러가게 하려 했지만 청의 장군 마부대와 용골대, 그리고 통사 정명수는 이미 장막 안으로 들어서서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다 뭔가! 술을 마시며 계집까지 끼고 있다니!”

투루아얼은 손짓을 하여 계화를 내보내었고 이를 보는 정명수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그래, 산성의 방비는 어떠한가?”


용골대의 질문에 투루아얼은 차분히 대답했다.

“조선군은 익히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산성의 방비에 강하옵니다. 반면 우리 군사들은 이런 산성을 치는 방도에 서투니 화포를 끌고 올 때까지는 큰 공격을 삼가며 진지를 방어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옵니다. 조선의 도원수 김자점은 평안도에 묶여있고 남쪽에서 오는 길은 여러 겹으로 막아두었으나 산성에 어느 정도의 식량이 있는지가 문제일 뿐입니다.”


“산성에는 기껏해야 한 달 치 식량밖에 없을 것이오. 길어야 두 달이외다.”

정명수가 투루아얼의 말에 끼어들었다.

“조선의 왕과 조정은 가도의 명나라 장수 모문룡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명에게 지난 은혜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수년간 해마다 양식 30만석을 가져다 바칠 정도로 어리석었소. 그 양식이 모문룡에게로 가지 않고 조선의 산성 곳곳에 쌓여 갈무리 되어 있었다면 우리는 왜(倭)와 같이 수년이 지나도록 조선에 발이 묶여 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오. 하지만 하늘이 황제폐하를 도와 조선왕을 여기까지 몰 수 있게 하였으니, 이야말로 조속히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있겠소.”

“아직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은 보급이 원활하지만 산성의 조선군이 합류해 한 번에 들이쳐 길을 막는다면 곤란하고, 남쪽에서 오는 길도 완전히 막아두었다 보기 어렵다. 포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병사들이 더 모여야 한다.”

용골대의 말에 투루아얼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장수들이 여기 다 와 있는데 누가 또 병사들을 통솔해 온단 말입니까?”

“칸(汗)께서 직접 이리로 오시고 있네.”

이미 짐작은 한 일이었지만 투루아얼은 내심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장군, 말도 안 통할 조선계집은 왜 끼고 있는 것이오?”

투루아얼은 밉살스러운 말투로 이죽거리는 정명수를 노려보았다가 금세 눈을 거두었다. 정명수가 조선인이지만 조선의 내부사정을 황제에게 고하여 큰 신임을 얻은 적이 있는지라 투루아얼 같은 장수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진어를 알기에 제가 좀 데리고 있었습니다.”

“허! 여진어를? 그럴 리가 있나......”

정명수는 무엇인가는 골똘히 생각해보더니 투루아얼에게 계화를 넘겨 달라 일렀다.

“글쎄......”

투루아얼이 불쾌한 기색으로 망설이자 마부대가 그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정명수에게 타박했다.

“그건 너무 과한 부탁이 아니오?”

정명수는 여전히 이죽거리는 투였다.

“다른 마음을 품어서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여진어를 아는 계집이라면 좀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제가 알고자 하는 일이 있고 이는 황제폐하의 안위와도 이어지는 일이옵니다.”

투루아얼은 한숨을 쉬며 정명수에게 뜻대로 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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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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