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마포 여각이 운영하는 조선소에서도 진척이 순조로운 것 같고 시험선에 대한 선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니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싶네.”
“하하하. 되놈들 이번엔 정말 어 뜨거라 하겠는걸. 본성이 해적놈들이라 그런지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거드름 피우더라 싶었습니다. 기어이 손을 한 번 봐주기는 해야겠다고 벼르던 차에 잘 되었습니다.”
“지난 번엔 시세의 반값으로 뜯기다시피 하고 물러났다 하니 이번엔 제대로 대거리를 해 주어야지.”
권기범이 벼르듯 말했다.
“그런데 전선을 쓰시겠다 하심은 조정(朝廷)의 수군에 대한 대응방침도…?”
김민균이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렇다고 봐야지. 우리가 드나드는 연안이야 우리 쪽 별장(別將)이 담당하고 있거나 매수된 자들이니 문제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부딪힐 일이 있으면 그리된다고 봐야겠지. 앞으로는 청국과의 거래뿐 아니라 한양으로 들고나는 조운선에 대한 문제도 전선이 담당하게 될 것일세. 야비하지만 민심을 이반하게 하는 데는 먹을 것 농간이 최선이지. 물론 우리에게 최고 급선무인 군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그래도 너무 일찍 뚜껑이 열리는 것 아니겠나? 아직 천주교 문제도 매듭이 지어지질 않았고 영남의 동학과도 뭐 하나 뚜렷하게 이야기된 것이 없잖은가.”
이번엔 홍윤서가 염려스러운 듯 물었다.
“아니야. 어제 원로들께 말씀 드렸던 것처럼 우리 존재를 조금씩 드러내야 민심을 얻을 수 있어. 우리의 계획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기면 우리가 뿌리쳐도 매달리게 될 것이네. 이제 시작이야. 완전한 준비가 갖추어졌을 땐 이미 늦네.”
여전히 권기범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우리의 뜻도 그러하다 알아도 좋으이.”
부영수 홍윤서가 권기범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고맙네. 그렇다면 군수관은 개성에 사람을 보내 그믐날 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병무영장은 해도에서 오는 전선의 닿음에 차질이 없도록 지시하도록 하게.”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모윤과 김민균이 복명(復命)했다.
“그리고 마 부장(副將), 오늘 시연도 있고 했으니 저녁엔 술과 안주를 풀어 본영 장졸들의 노고를 치하해도 좋겠지?”
“예. 장졸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오척 반이나 될까 싶은 키였으나 다부진 체구와 영민한 눈빛을 가진 마두승이 대답했다. 직속상관인 병무영장 김민균과 비교할 때 목 하나가 넘는 키 차이였으나 지휘관으로서 뿜어내는 위압감과 신뢰감은 김민균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병무(兵務)의 실권을 쥔 김민균에 가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덜해서 그렇지 본영(本營)의 제 2인자로서 손색없는 면모였다. 조련과 수군의 일을 맡고 있는 해도영(海島營)의 부장과 비교해도 우위의 자리였다. 경신년 대동계 토포의 날에 토포군을 막아서던 그 서슬퍼런 기상이 여전히 느껴지는 젊은 장수의 기상 그 자체였다.
“오늘 시연 인상 깊었네. 박 창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사수들을 조련해 준 마 부장이나 행사를 준비해 준 모 군수관과 홍 부영수도 애썼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영수님. 어차피 실질적인 준비야 영수님께서 해 오시던 것 아니겠습니까.”
모윤이 공을 권기범에게 돌렸다.
“아니야,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빈틈 하나 없이 일을 진행시키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한없이 든든하네. 난 흑호대에 들렀다가 마을로 곧장 내려가도록 하지. 아버님을 뵙고 내일에나 진막으로 오르도록 하겠네.”
“그러고 보니 한양에서 돌아와 큰 어르신께 아직 문안도 여쭙질 못하셨구먼요.”
권기범이 돌아오자마자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던 게 제 탓이나 되는 듯 모윤이 송구스러워 했다.
“내 다녀옴세. 아참, 그 사이에 그간 미루어왔던 개화군 조직 개편 작업을 마무리 했으면 하네만…. 나와 병무영장 사이에는 이야기가 된 내용이긴 해도 부영수와 군수관, 그리고 마 부장이나 임 대장의 의견은 아직 듣질 못해서 말이야.”
권기범이 돌아서려다 말고 잊었던 사안을 떠올린 듯 당부했다.
“예, 상론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다녀오십시오.”
김민균의 인사를 뒤로 하며 권기범은 흑호대 막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위 둘이 총총 그 뒤를 따랐다.
6
“토기(土器)가 휙하니 나는데 말이야, 동이가 꽝하고 총을 놓으니 말이야, 아 글쎄 토기가 펑하고 바로 눈앞에서 가루로 날리는데 말이지, 허 기가 막히더라니깐, 장관이야 장관, 그만한 광경이 없더라니깐.”
흑호대 막사에서 코 옆에 점 있는 자가 흥분하여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를 가운데 두고 열댓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목을 빼고서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좌로 우로 정신없이 날리는데 그냥 놓는 족족 풍비박산이야. 그릇들이!”
“하여튼 점백이 성님 풍덩거리는 성품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산총은 두 발 밖에 장전이 안 된다면서 어찌 정신없이 나는 그릇들을 다 떨굴 수 있었답디까?”
멀찍이서 점백이 하는 양을 재밌어라 듣고 있던 이가 놀리듯 외쳤다.
“예끼, 인석아.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누가 연이어 떨궜대. 그리고, 군영에 돌아오면 오장(伍長)이란 칭호 좀 붙여라. 네 인석을 그냥 확 군율에 부쳐버릴까 보다.”
“헤헤, 성님이 호칭 문제로 걸고 넘어가면 대장님더러도 ‘성님’운운한 죄는 무엇으로 감당하리요?”
“조금산이 너 정말 그럴래? 마두산에서의 얘기는 왜 자꾸 들먹이고 그러누, 치사하게.”
“헤헤, 농입니다요. 농. 그런데 산총의 위력이 소문만큼 그리 셉디까?”
“센 게 다 뭐여. 질그릇 뿐 아니라 사람이 앞에 있어도 매한가지로 가루가 되겠더라니까.”
“에이 성님 말은 통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어서.”
“허어, 갑갑하네. 어이 덕칠이 자네도 오장이니까 시연을 봤을 것 아녀? 아, 증명 좀 해달라니까.”
“그 말이 맞긴 맞어, 구경하는데도 섬뜩하더라니까. 앞으로 내가 쏠 처지니까 다행이지 그 앞에 맞대응해서 설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흐, 살 떨려.”
덕칠이라는 오장 하나가 점백이의 말을 거들어줬다. 덕칠이의 찌푸린 표정을 보는 사람들은 감염된 듯 덩달아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뭐 산총이고 오혈포고 우리 흑호대부터 우선 지급이 된다하니 그때 지켜보면 알 게 아닌가.”
누군가가 한 말이었다.
“난, 동이 저 놈이 시연 사수로 습련(習練)을 하네 어쩌네 할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지. 아 그랬더니 산총도 어찌나 잘 다루고 오혈포는 또 얼마나 귀신같던지. 타고나 포수여, 명포수.”
점백이가 동이를 흘끗 보며 말을 이었으나 동이는 막사 구석에 앉아서 시연에 사용했던 총을 닦고 있을 뿐 이쪽엔 반응도 없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알면서도 무심한 것인지, 다른 생각에 몰두해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난히 헬쓱한 얼굴은 예전 그대로였으나 마두산에서 살아 돌아온 뒤론 웃음이 많이 사라졌다. 주변에선 난생처음 사람을 죽였으니, 그도 한 둘이 아니었으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여겼지만 언젠가 점백이가 던진 위로의 말에 대꾸한 동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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