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한 딸내미와 컴퓨터 쟁탈전을 벌이다

그러나 지는 쪽은 언제나 저입니다

등록 2005.03.23 16:39수정 2005.03.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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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출근과 퇴근 그 후에 집으로 쪼르르 와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며 하루를 보내는 거지요.


대개가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쪽에 시간을 많이 할애를 합니다. 한 달에 두어 번 바깥에서, 글을 쓰는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그동안의 쌓인 이야기며 여러 가지 일로 술잔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저에게 난리가 났습니다. 집에 컴퓨터가 달랑 한 대밖에 없는 터라 예전부터 가족들 간에(가족이라야 저와 집사람, 아들에 딸 이렇게 달랑 4명입니다) 컴퓨터 사용 문제로 약간의 불화가 있어 왔지만 제가 저녁 늦게 글을 쓰고 이른 시간에는 제 집사람과 아들, 딸이 알아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관계로 이럭저럭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저에게 변덕이 생겼습니다(?). 아니, <오마이뉴스>의 기사 정리며, 기사 송고 등의 일로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저에게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제 몸을 그냥 들이밀고 말았는데 가족 중에 특히 딸내미가 제 의도를 알아차리고 컴퓨터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어느새 자리를 차지하고 제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뭐, 제 할 일이란 게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친구들에게서 온 메일 관리하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조금 찾아보고 하는 게 다일 것입니다만.

그러면 저는 거실에 앉아(컴퓨터는 제 글방에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며 대충 끝낼 시간을 알려주곤 하는데 이게 전쟁의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몇 시까지 끝내라 하고 윽박을 지르니 그럴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엄지, 10시까지 끝내라!”
“알았어요.”

대답이야 청산유수입니다만 그저 아버지가 아니, 한 집의 최고 권력자인 가장이 소리치는 거라 속이 타는데도 건성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또박또박 흘러 10시가 되고, 애초에 한 약속(?)은 지켜지지가 않고, 그리고 “임마, 약속 못 지켜? 지금 몇 시야?”하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러면 “다 했어요. 이것만 끝내면 돼요”합니다.


또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 어느새 10시 10분을 가리킵니다.

“엄지, 너 인마, 못 끝내!”
“다 했어요….”

대답 속에는 야속하다는 투의 감정이 배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또 10분이 흐릅니다. 끝내는 제가 화를 버럭 내며 재촉을 하자 딸내미는 그제야 컴퓨터를 끄고 제 방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우는 건지, 공부를 하는 건지 모르게 침묵만 흐릅니다.

이튿날 아침, 학교에 등교하는 딸내미가 평소 같으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그래, 잘 갔다 오너라”라는 답을 엄마, 아빠로부터 꼭 듣고 난 다음에 학교를 가는데 화가 어디까지 났는지 일언반구도 없이 등교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도 꿔다 논 보리자루마냥 서로 간에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런 첫날은 별 감각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났는데 그 이튿날, 그 다음 날은 '어이쿠, 이거 괜히 내가 너무 윽박질러 일이 커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일부 아이들이 자기주의에 빠져 제 것만 챙기는, 남은 아랑곳 않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지만 제 딸내미는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든지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지극합니다. 하지만 이런 격한 모습은 자기도 엄연히 하나의 인격체다 하는 시위 같았습니다. 그러니 아빠가 딸을 인격체로 대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걸 제가 너무 쉽게 간과하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든 딸내미와 화해를 해야 하는데 그 화해의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원래 아빠와 딸의 관계는 아들과의 관계보다 정이 더 있는 법입니다. 그런 관계를 소홀히 하였으니 큰일도 예사 큰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틀어진 관계를 어떻게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놓나 하고 전전긍긍을 하던 저는 뇌물(?)을 써서 해결할까 하다가 곧바로 뇌물을 쓰면 더 악화될 소지가 있겠다 싶어 할 수 없이 집사람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본디, 집사람과 딸내미는 제법 티격태격하면서 삽니다.

그리고는 금방 화해를 또 합니다. 뭐, 여자들이니까 한통속인 게지요. 실은 딸내미가 컴퓨터에 미쳐 있다거나 달리 무슨 나쁜 짓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제 욕심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며, 가정의 험악한 분위기를 몰아가는 장본인인 것입니다.

가족과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구김살 없이 처신하고 있는 여식을 이런 식으로 몰아붙인 제가 참 못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결국 딸내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멋지게 뇌물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뇌물이래야 만원 안쪽입니다만).

이런 일이 저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나 다반사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또한 이렇게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요. 부디 저와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가 계시다면 당장 그 나쁜 마음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자식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또한 우리 아버지들의 남은 멋진 생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요즈음 '일진회'다 뭐다 해서 자식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현실이 아닙니다. 이럴수록 자식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대화하며 서로서로 챙겨주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덧붙이는 글 요즈음 '일진회'다 뭐다 해서 자식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현실이 아닙니다. 이럴수록 자식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대화하며 서로서로 챙겨주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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