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지에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앞표지북폴리오
제목을 보는 순간 이런 의문이 앞섰다. 세계 1위를 노리며 달려가고 있는 중국에 딴죽을 거는 책? 중국인의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설령 중국인이 한국인에 비해 부족한 게 있다고 하더라도 글로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젊은 지식인이 <맞아죽을 각오로 쓴 통렬한 중국비판서>'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처럼, 혹시 장홍지에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책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장홍지에는 둥베이재경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중국작가협회 회원이고 랴오닝 문학원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적 속성을 정확하게 들추어냈다'는 평가를 받은 수필집 <천년패론(千年悖論)-역사를 읽는 또 다른 방법>과 <새로운 측면-역사적 인물에 대한 또 다른 전기>를 펴낸 바 있다.
"중국에서 10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네티즌 사이에 찬반 논쟁이 활발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대 여론 때문에 신변 안전을 위해서 저자가 미국으로 가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기획편집자인 김현정씨의 말이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 중에 우선 관심이 가는 부분은 '한국인의 불굴의 투지, 독도를 사수하라'였다. 장홍지에는 '독도 수비대와 한일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폭이 200미터에 불과하고 온통 암초 투성이에 나무도 자라지 않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 섬을 독도(獨島)라 부르고 일본 사람들은 다케시마(竹島)라 부른다.
한일 관계에 있어 이 섬의 위상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조어도와 흡사하다. 2차대전 전에 일본은 이 섬을 점유했고 한국은 독립 후에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선포했다. 한국전쟁 와중이던 1953년 5월에는 일본의 우익인사가 이 섬에 올라가 푯말을 세웠다. 그때 한국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일본인이 독도에 상륙하자, 당시 스물세 살의 한국 청년 홍순칠은 전쟁 기간이라 무기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불법으로 총을 사고, 열혈청년 몇 명을 모아 바다 건너 독도에 올라 일본인을 쫓아내고 태극기를 꽂았다.
이후 홍순칠은 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혼자서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켰다. 그의 일기에는 일본의 군함이나 어선과 대치한 상황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1956년 종전 후 전쟁에서 자유로워진 한국 정부가 해양수비대를 파견하자 그제야 홍순칠은 신성한 국토 수호의 대업을 마쳤다.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195~196쪽에서
언젠가 장홍지에가 한국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 썼을 때 한국에 대해 너무 좋은 말만 하는 게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중국이 항일전쟁 때 안중근 같은 인물을, 항일전쟁 후에는 홍순칠 같은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홍지에는 이 밖에도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배워야 할 점을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 설명했다. 중국인에게는 없지만 한국인에게는 있는 장점, 한국인과 중국인의 국민성 비교, 전통을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 한국인의 민족주의, 한국의 부패 척결 노력, 한국의 농촌 문제 해결, 아시아를 휩쓰는 한류의 비밀 등을 다뤄놓았다. 장홍지에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많이 연구했고 한국의 현대화와 개혁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특질과 발 빠른 현대화 과정, 개혁 정신을 배워서 앞으로 중국의 앞날을 더 잘 가꿔나가자는 채찍질을 한 것이지 중국의 발전에 딴죽을 걸려고 이 책을 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중국의 재래식 화장실 문화는 중국인에게만 있는 저열함이 아니라 근대화 또는 현대화의 과정에서 나온 문제라고 주장한 점만 보아도 그렇다.
이미 현대화가 된 서구나 일본, 한국을 보는 눈으로 아직 현대화가 미진한 중국을 보는 것은 다 큰 나무와 이제 막 싹이 올라온 나무를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중국이 영원히 낙후되어 있으란 법도 없고 서양 역시 영원히 앞서 있으란 법도 없다. 누가 알겠는가?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았던 중국이 다시 세계를 이끌어 갈지. 그때가 되면 중국의 우수한 민족성을 새로 분석해봐야 하지 않을까?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228쪽에서
이렇게 쓴 저자가 미국에까지 굳이 피신해 갈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가 사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기 때문에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영남, 김완섭 두 저자의 최근 저서가 생각났다. 조영남의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과 김완섭의 <새 친일파를 위한 변명>.
재미있는 것은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가 중국에서 잘 팔리는 것과 달리, '일본인이 기분 좋아할' 한국인의 두 가지 책이 한국에서는 그만큼 잘 팔리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일본인이 한국인을 가장하고 썼던 <추한 한국인>이 한국에서 번역됐을 때 잘 안 팔렸던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덧붙이는 글 |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장홍지에 씀/정광훈 옮김/2005년 3월 11일 북폴리오 펴냄/223×152mm(A5신)/232쪽/값 95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생명 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주로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신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하반기 완간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장홍지에 지음, 정광훈 옮김,
북폴리오, 200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