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에 찍은 빛 바랜 사진 한 장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사람의 체온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봅니다

등록 2005.03.28 01:01수정 2005.03.2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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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78년 전주기린 초등학교 6학년 5반 졸업사진

1978년 전주기린 초등학교 6학년 5반 졸업사진 ⓒ 학교앨범에서

이 빛 바랜 한 장의 사진 속 주인공들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78년 전주 기린초등학교 6학년 5반 친구들입니다.


더운 열기가 느껴지는 6월부터 9월까지 울타리도 없는 학교 뒷산을 넘어 과수원을 지나 물길을 막아놓은 '보'였던 '석수리'로 달려가 멱감기를 하고, 겨울이면 곶감 만드느라 깎아 놓은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말린 껍데기들을 주머니에 한 줌씩 넣어와서 수업시간 내내 봄 가뭄 흉년에 곳간 비우듯이 축내던 기억들을 똑 같이 가지고 있던 친구들입니다.

순수했던 시절의 순수했던 놀이문화에 언제나 함께 출연했던 이 친구들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사람의 일생 중 유년시절만큼 아련하게 기억되는 필름들은 더 이상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독히 외로운 여행 중에 어느 산 속 마을 밥 짓은 굴뚝의 하얀 연기를 보았을 때의 아련함처럼 말입니다.

a 2001년 전주 모임 당시 선생님

2001년 전주 모임 당시 선생님 ⓒ 장금수

지금은 칠순을 넘기신 선생님께서 그때 연세가 사십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그지없이 인자하기만 하셨던 선생님으로 기억됩니다. 말도 별로 없으시고 웃음도 별로 없으셨지만 당시의 학교에서 제법 횡행했던 폭력들과 무관했던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특별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때 그 친구들이 문득 보고 싶어졌던 때는,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또 다른 사람과 추억들을 만드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다가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사람에 치이기 시작하면서일 겁니다.


험난한 세상을 헤쳐 가다 보면 가끔씩 스스로가 잘해나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문득 사람이 그립다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죠. 그렇게 시골도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친구들이 떠오른 것은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비단 저만의 생각만이 아니었습니다.

a 2001년 전주모임에서 졸업당시의 사진을 함께 합성한. 아래 우측 끝 아이를 안고 있는 필자

2001년 전주모임에서 졸업당시의 사진을 함께 합성한. 아래 우측 끝 아이를 안고 있는 필자 ⓒ 장금수

2001년 5월 당시에 한창 유행했던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의 힘을 빌어 십 여명의 친구들이 23년만에 참으로 감격적인 조우를 하였고, 내친 김에 선생님을 뵙기 위해 전주에서 처음으로 반창회 모임을 하였습니다.

과거의 모습들이 조금씩 세련 되어졌다는 것 말고 생김새며 행동이며 달라진 것이라곤 별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더 서로를 보며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었나 봅니다. 모두가 하는 일이 다르고 가진 것도 다르고 생각들도 많이 달라져 있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에 특별한 동질감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온라인 동창 사이트가 한창 유행 했던 당시에 한동안 회자 되었던 부작용들은 이 모임에서는 전혀 다른 나라 이야기였고 심지어 남자들보다 여자친구의 남편들이 자주 만나지 못해 극성(?)을 부리는 모임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처음 모임을 하고 선생님을 해마다 찾아 뵙는 것은 이제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a 2005년 3월 24일 친구 집들이

2005년 3월 24일 친구 집들이 ⓒ 김지영

며칠 전 그 중 한 친구녀석이 서울에서 번듯한 집을 장만해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다시 몇 달만에 소집된 동창들이 전주에서 일부러 올라온 친구 내외까지 포함해서 십 여명이 넘게 모여 온통 옛날 이야기들을 하느라 그 조용하고 한적한 남산 자락이 들썩들썩했습니다.

그 어릴 적 짙기만 했던 푸른 산과 끝간 데 없이 높기만 했던 하늘과 향기로운 바람을 함께 향유했던 순수했던 시절의 추억들이 질리지도 않는지 빠짐없이 되풀이 됩니다.

거친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 치이고 돈에 치이고 사랑에 치이면서 지금 사는 모습들을 만들고 지켜내느라 머리는 벗겨지고 몸엔 살이 붙고 주름진 얼굴만큼의 수심들을 운명처럼 안고 있겠지만 27년 전의 아련한 추억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질 때 그때만큼은 장난기 가득한 소년들과 수줍음 많은 소녀들의 표정들이 되살아 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처음 무엇으로 만나는 것인지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사람의 체온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봅니다. 올해도 5월이 되면 이 친구들, 27년 전의 가난 했지만 행복했던 기억들을 되새김하며 호남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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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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