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와 경상도의 내륙을 달리는 중앙고속도로의 상행선에 단양휴게소가 있다. 다른 곳과 달리 주행도로에서 안쪽으로 많이 들어가야 하기에 조용해서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에 지은 탓인지 시설도 역시 깔끔한 편이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 이 휴게소를 인상깊게 만드는 것은 잠깐 동안의 발품으로 즐길 수 있는 고대사 여행의 매력 덕분이 아닌가 싶다.
단양휴게소가 위치한 곳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삼국시대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졌던 신라의 '적성산성'이 위치한 곳이다. 더불어 신라가 당시 고구려의 강역이었던 이곳을 차지하고는 기쁜 마음에 비석까지 세워 기념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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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성산성 전경 ⓒ 이양훈
휴게소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이 성재산이다. 이 성재산의 정상부를 둘러가며 쌓아올린 전형적 퇴뫼식 산성이 '적성산성'인데 멀리서 보아도 튼튼하게 축조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산성은 안과 밖을 모두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석성으로서 내외협축(內外挾築)방식으로 시공되었다. 총길이 약 9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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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성산성 성벽. 다듬은 자연석을 촘촘히 쌓아 올렸다. ⓒ 이양훈
북쪽으로는 남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동쪽에는 죽령천, 서쪽에는 단양천이 남한강으로 흘러 들고 있어 삼면이 물줄기에 감싸인 봉우리이니 천연의 방어요새다. 또 남한강을 상하로 오르내리는 수로와 죽령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나 있어 교통의 요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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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인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있는 온달산성의 모습. 비슷한 시기에 축조한 탓인지 적성산성과 많이 닮아 있다. ⓒ 이양훈
신라는 이곳 적성산성과 조금 남쪽의 온달산성을 근거로 한강유역과 함경도까지 진출할 수 있었으니 적성을 얻은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충만했던 진흥왕의 기쁨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으니 단양 신라 적성비가 그것이다.
비석은 이곳 적성이 신라의 영토라는 것과 그 과정에서 신라에 충성을 바친 적성인(赤城人) 야이차(也이次)에 대한 칭찬과 포상 그리고 누구든 야이차(也이次)와 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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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내에 있는 비각 ⓒ 이양훈
6세기 중엽, 좁디좁은 서라벌 시대를 마감하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호호탕탕 거침없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정복 군주 진흥왕의 자부심 짙게 배인 포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울릉도를 복속시킨 장군 이사부(異斯夫)와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武力) 등 우리 역사 속의 낯익은 이름들도 확인된다. 1978년 1월 6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발견해 조사하기 전까지 등산객들의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이 비석은 휴게소에서 5분 남짓한 적성산성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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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198호 단양 적성신라비 ⓒ 이양훈
촘촘히 쌓아올린 성벽 위에서 굽이치는 남한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진흥왕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던 온달장군의 피맺힌 절규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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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인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에 있는 삼층석탑. 보물 제405호. 역시 무료로 둘러 볼 수 있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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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탑위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 이양훈
원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바로 이 길이 그 옛날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질풍처럼 내달리며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격전의 현장임을 생각하며 즐거이 고대사 여행을 할 수 있는 곳!
요즘은 공짜로 뭘 본다거나 즐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부근을 지나는 일이 있다면 일부러라도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 바로 단양휴게소다. 온달산성과 향산리의 석탑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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