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면 되겠네!”
멀리서 두청과 서흔남은 치솟는 불길을 보며 이리저리 뛰는 청나라 군사들의 뒤를 지나쳐서 달려갔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려가던 두청과 서흔남은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돌아갈 길이 전혀 없는 곳에 청나라 병사들이 가로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싸우러 나온 놈들이 오랑캐들의 주의를 오래 끌지 않은 모양이군!”
서흔남은 죽기로 싸울 작정을 하고서는 품속의 칼을 꺼내려 했다. 두청은 서흔남의 손을 잡으며 그만 두라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일단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장단을 맞추게나.”
두청은 천천히 청나라 병사들 앞으로 걸어갔다. 한눈에 보기에 복색이 다른 이가 뛰어들었기에 바싹 긴장한 청나라 병사들은 무기를 들이밀었지만 두청의 행동은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천천히 바지를 벗더니 쭈그려 앉아 똥을 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허허허허허......”
두청은 멍한 표정으로 청나라 병사들을 향해 웃기 시작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청나라 병사들도 무기를 쥔 손에서 힘을 풀며 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때 서흔남이 서서히 나와 웃으며 똥 덩어리를 집어 자신이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청나라 병사들은 도저히 더러워서 못 봐주겠다며 침을 뱉고 욕을 하며 자리를 비켰다.
“이보게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두청이 바지춤을 올리며 한숨을 쉬자 서흔남은 인상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목숨 살리는 쪽으로 장단을 맞추자니 그런 짓 밖에는 생각이 안 나더구려. 퉤이!”
두청의 웃음소리와 서흔남의 욕지거리가 어울려 성 밖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사이 장판수는 성 아래에서 열 명의 청군 소부대와 맞닥트려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육시랄! 이제 다 왔는데 이놈들은 뒤늦게 와 지랄이네!”
장판수가 거느린 조선 병사들을 가로막은 청의 병사들은 만주족 출신의 정예병들이었으나, 수 적으로 모자랐으며 날랜 이들로 가려 뽑힌 조선 병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곱이 죽고 둘은 도주했으며 한명이 장판수와 칼을 겨누며 버티고 있었다.
“이 삿기래 질기구만! 에잇! 에잇!”
장판수는 다른 이들에게 절대 끼어들지 말라며 청군의 소부대 대장과 승부를 즐기듯이 칼을 휘둘렀다. 금빛투구를 쓴 청나라 대장의 검술솜씨는 날카로웠지만, 부하들이 다 죽어 사기가 떨어진데다가 장판수의 현란한 칼솜씨에 점차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크앗!”
목이 터질 것 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청나라 대장의 칼이 위로 솟구쳐 올랐고 패배를 인정한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장판수의 칼날을 기다렸다. 장판수는 칼을 높이 쳐들더니 칼을 슬쩍 내리쳐 청나라 대장의 금빛 투구를 벗겨 내었다.
“가라우.”
영문을 모른 채 잠시 망설이던 청군 대장은 곧 장판수의 뜻을 알아채고서는 천천히 일어나 확실히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뒤를 흘깃흘깃 보며 자신의 진지로 걸어갔다. 그 때 장판수와 함께 초관으로서 전투에 참가했던 한기원이 살을 먹여 그 청군대장을 쏘려 했다.
“무슨 짓이네!”
깜짝 놀란 장판수는 한기원을 말렸다.
“장초관이야 말로 무슨 짓이오! 기껏 잡은 적의 우두머리를 그냥 놓아주다니!”
“내래 간만에 몸을 풀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뿐이야. 그쪽이 그런 걸 알 리 없지. 그리고 저 놈의 투구와 칼이 여기 있으면 된 거 아니네?”
말을 마친 장판수는 병사들에게 신속히 성안으로 이동하라 일렀고 한기원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장판수가 자신을 확실히 살려 줬다는 것을 눈치 챈 청군의 대장이 달음박질 쳐 사라지는 모습을 씁쓸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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