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듯 읽어버린 책

[서평] <가상역사 21세기>

등록 2005.03.28 17:16수정 2005.03.2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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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정겨운 새소리가 울리는 울창한 숲 속에서 눈을 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예약해둔 아침 기상 프로그램에 맞추어 집 컴퓨터(house computer)가 가동되어 운치 있는 '숲 속의 정경' 프로그램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입한 미국의 글로브컴사의 가정용 3D 홀로그램 프로그램을 구입한 건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돌쇠가 차려놓은 아침식사를 했다. 돌쇠는 내가 지어준 우리 집의 가정용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의 이름이다. 아침식사를 하며 식탁의 홀로그램을 이용하여 오늘 뉴스를 보던 중 70년 전 오늘이 바로 21세기 최대 참사로 기억되는 인도, 파키스탄 핵전쟁이 발발한 날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6년 카슈미르 분쟁이 증폭되어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은 17기의 핵폭탄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특히 뉴델리와 이슬라마바드 등의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양국에서 모두 약 6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대학시절에 배운 바가 있었다.

갑자기 얼마 전 업그레이드를 마친 가상체험기가 생각나 급히 식사를 마치고 가상체험에 들어갔다. 네트와 접속한 후 2016년 6월 6일 핵폭탄이 터진 직후로 가상체험 시간대를 맞추고 인도의 뉴델리로 가보았다.

폭심에서 1.5km정도 떨어진 도심을 거닐었는데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끔찍한 화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위로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들이 흩날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30분정도 가상체험을 끝내고 나왔을 때도 현실과 70년 전 뉴델리의 구분이 힘들었다. 하긴 요즘 가상체험 프로그램은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현실과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잔혹한 핵전쟁을 가상체험으로 경험하고 난 후 집 컴퓨터가 예약해 놓은 대로 샤워를 했다. 오늘은 서울과 멕시코의 오악사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 때문에 멕시코로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대기권 밖에서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보며 휴가를 즐기는 우주호텔로 쉽고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관광객을 보낼 수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는 2085년 완성을 목표로 세계 30여 개국의 각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난 서울지역 프로젝트 팀의 팀원인데 우리 팀은 멕시코 팀과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자동차로 자동화 하이퍼링크를 이용해 100km 떨어진 파라볼라 여객기 전용공항에 3분 만에 도착하고 수직이착륙 대륙간 파라볼라 여객기를 타고 서울에서 멕시코까지 1시간 만에 갔다.

1시간동안 손목에 차고 있는 컴퓨터(실제로 단순한 컴퓨터의 개념을 넘어선 광대역 유비쿼터스 개념이다)로 프로젝트에 관한 사항들을 체크하고 오악사카에서 멕시코 측 담당자와 우주엘리베이터의 기술상 문제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은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오후 1시쯤 되었다.


오늘 점심은 부모님과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서울 근교의 한 한정식 집에서 갈비를 먹으려고 했지만 손목의 컴퓨터가 식당의 주방 컴퓨터에서 정보를 받아 오늘 갈비에는 내 몸의 유전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있다는 경고를 보내서 닭백숙으로 메뉴를 바꾸었다. 그것도 첫 맛은 소갈비 맛이고 끝 맛은 닭고기 맛이 나는 이종 교배된 고기로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간 식당은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이 접대를 해주는 곳이어서 더욱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중 대화는 주로 얼마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2036년에 시작된 대혼란기에 사회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받은 스트레스로 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워낙 경제사정이 어려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셨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60살이 넘어선 노년기에 간이 나빠질 것이라는 유전자 정보를 어렸을 때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전자 암호로 이미 몇 년 전 국립중앙신체은행에 아버지의 간을 복제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간이 나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유전자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50년경 개발된 유전자치료를 받았었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신체은행에 간을 보관할 필요는 없다.

식사 후 난 테니스 동호회 사람들과 테니스를 즐기고 그들과 저녁식사까지 하고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와 가상체험기에서 생명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HR5587A 항성을 돌고 있는 유사지구를 탐사했다. 내 생각에 유사지구에는 확실히 생명체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기술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몇 십 년 안에 그곳 생명체와 교류가 가능할 것이다.

오늘 하루는 꽤 바빴던 것 같다. 그만 글을 줄여야겠다. 내일도 희망찬 하루가 되기를 빌며…….

2086년 6월 6일



a 가상역사 21세기

가상역사 21세기 ⓒ 리더스가이드

윗글은 <가상역사 21세기>를 읽고 2080년대를 살고 있는 삼십대 초반 직장인의 일기를 가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책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형식을 고민하던 중 나도 한번 가상으로 미래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기를 써보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먼저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황당함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프롤로그가 2112년 3월에 써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이미 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온 역사의 큰 줄기를 바탕으로 하고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과학에 이르는 방대한 인류문화의 현주소를 이해한다면 누구든 실현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상역사 21세기>에서도 객관적으로 미래에 있을 법한 생명공학의 진보, 핵전쟁, 전 세계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대혼란 그리고 21세기 말에 보이는 네트워크화 된 인간생활과 우주정책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는 내내 책 내용에 푹 빠졌다. 21세기 말에는 현대의 각 가정에 컴퓨터와 TV가 필수품이듯이 가상체험기가 대부분 가정에 보급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가상체험기는 인간에게 현실과 거의 구분하기 힘든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실상 나에겐 이 책이 가상체험기 역할을 했다. 책을 통해 2005년을 살고 있는 내가 21세기 전반을 넘나드는 가상체험을 했고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2100년대를 살고 있었다.

작가는 21세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 생명공학, 핵전쟁, 대혼란, 재편된 세계질서, 네트화된 사회, 우주와 환경이라는 굵직한 범주 속에는 사건에 흥미를 더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상인물들(영웅도 있지만 시대에 크게 부각되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이 더 많았다)과 나눈 인터뷰와 그들의 자서전 내용 그리고 가상의 뉴스와 가상의 통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들 사건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내용 구성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특히 2016년 핵전쟁에서 영웅이 된 인도의 의사 쿠르마 박사의 이야기나 2043년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인 베니타에 대한 내용에서는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이 내용에 대해 여러 면에서 비판할 수 있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나 한국이 중국의 경제구도 속에서 일본을 추월한다는 내용 그리고 에너지 문제도 핵융합발전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중동에는 평화가 정착하고, 유전자 맞춤형 아기가 현실화 된다는 미래상은 내 개인적인 관점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래의 100년을 이렇듯 흥미롭게 서술해 놓은 책에 분석적인 비판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접어버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냥 책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과학적 지식 또한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어 전제훈(jjolpcc) 님의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어 전제훈(jjolpcc) 님의 글입니다.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책과함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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