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와서 어여어여 보시게나. 우리군영 장초관이 오랑캐를 혼내주고 가져오신 물건일세.”
시루떡은 장판수가 가져온 청군의 무기와 투구를 병사들에게 보여주며 신명이 나 있었다. 특히 금빛 투구는 병사들에게 인기가 많아 너도 나도 서로 써보겠다며 법석을 떨었다. 정작 장판수는 어디 가서 잠이라도 자는지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게 자신의 전리품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했다.
“이놈들! 웬 난리들이냐!”
호통소리에 놀란 병사들이 뒤돌아보니 부장 김돈령이었다.
“장초관이 전리품을 가져왔습니다.”
병사의 말에 김돈령은 무기와 투구를 들고 자신을 따라오라 일렀다. 시루떡이 무슨 일이냐며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소보소 부장어르신. 이것들은 장초관의 것이온데 어디로 가져가려 하십니까?”
“이것이 어찌해서 장초관의 것이냐? 어디로 가져가는지 네 알바 아니니 비키거라!”
김돈령이 평소 장판수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아는 시루떡은 재빨리 그 사실을 장판수에게 알렸다.
“뭐이 어드래? 그 상놈이래 그 거 가지고 훈련도감에 한 자리 얻어 볼까 설레발치는 모양이군.”
장판수는 기막혀 했지만 직접 나서서 따질 생각까지는 없었다. 오히려 시루떡이 김돈령의 흉을 보며 장판수를 부추기느라 난리였다. 그 때 초관 한기원을 비롯한 십 여 명의 사람들이 장판수가 있는 곳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벽에 성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고 장판수와 함께 세 번씩이나 목숨을 건 일로 모인 사람들이기도 했다.
“무슨 일들인가?”
그들의 다가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 장판수는 약간의 두려움을 가졌다. 한기원이 주위를 둘러 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벽에 성 밖으로 나갔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었소. ‘우리가 살아 있는 걸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하나씩 죽이라고 말한 자도 있다.’라고 말이오. 그 말을 물어보고자 이렇게 왔소이다.”
“음? 그 말이래......”
장판수는 속으로 솔직히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해 했다. 어쩌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임무라 생각해 스스로 긴장을 풀기위해 던진 말이긴 했지만, 전혀 허황된 말은 전혀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런 틈에 끼어든 것은 시루떡의 한탄조 소리였다.
“그나저나 잘 오셨소. 이내 말 좀 들어보소! 비호맹금(飛虎猛禽)장초관이 가져오신 전리품을 어떤 놈이 날름 먹고 훈련대장 신경진에 갖다 바쳐 아부하고 모른 척을 하고 있소!”
한기원과 사람들은 장판수의 떨떠름한 표정에서 그 말이 정말임을 알 수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우리는 매번 사지(死地)로 밀어 넣으면서 전리품까지 가로채다니 기가 막힌 일이외다! 장초관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할 수밖에 없겠소! 당장 훈련대장에게로 가서 따집시다!”
장판수는 괜히 시끄러운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지만, 격앙된 사람들을 달랠 말재간이나 수완이 있는 이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남한산성의 각처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오. 일전에 주상전하께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도 우리는 비밀스럽게 알고 있소! 우리가 물러서면 남한산성은 무너지는 것임을 저들은 확실히 알아야 하오!”
“옳소이다! 이 일에는 내 휘하의 병졸들을 모두 다 동원하겠소!”
장판수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점차 어수선하고도 들뜬 분위기 속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나무 뒤에서는 장판수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던 내관이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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