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만화찾기] 인간보다 인간적인 동물 이야기

책 속에서 만나는 따뜻한 봄소식

등록 2005.03.29 18:42수정 2005.03.30 10:50
0
원고료로 응원
인간보다 인간적인 동물 이야기 <휴머니멀>

a 박순구 <휴머니멀>

박순구 <휴머니멀> ⓒ 황매

이라크 파병 논쟁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던 어느 날, 네티즌들은 <어느 흰쥐의 이야기>라는 짧은 만화 한 편을 부지런히 ‘펌질’하기 시작했다.


만화 속의 의인화된 흰쥐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이 표현되어 있었고, 캐릭터들의 풍부한 표정과 부드러운 색감, 잔잔한 독백으로 진행되는 자연스런 연출과 가슴을 뒤흔드는 반전은 모니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클릭하다가 무심코 이 만화를 보게 된 수많은 이들을 한순간 경직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만화의 지은이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휴머니멀>이란 제목으로 동물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휴머니멀>은 흰쥐, 오랑우탄, 비둘기, 두더지, 팬다, 수달 등 의인화된 동물캐릭터의 이야기를 빌어 이라크 파병, 외국인 노동자, 노인 치매, 교육 제도, 빈부의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아픈 문제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짐승 취급을 당하는 소외된 이들을 동물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면서도 그들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는 점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특히 '가족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작가는 모든 작품을 통해서 '가족'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회복해야할 지고지순의 가치인 듯 묘사하고 있다.

이같은 '가족주의'는 미래보다는 과거지향적이며, 작품의 주제 범위를 인류보편적인 범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범위로 축소시켜버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남발을 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들은 독백과 눈물(생각과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없이 연출된 <휴머니멀>을 보고 싶다는 기대로 곧바로 이어진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작가 홈페이지 http://www.soon9.com/

서른, 미숙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소소한 휴일> 1~3권


a 마리코 나가하라 <소소한 휴일>

마리코 나가하라 <소소한 휴일> ⓒ 대원씨아이

연애 휴일 1625일째. 그러니까 '남친'과 헤어진 지 자그마치 4년하고도 184일(이후 남자친구 없었음). 작가가 된 후 처음으로 의뢰받아 6개월째 집필 중이던 순정소설은 출판사의 느닷없는 기획 취소로 한순간에 물거품.

'알바'라도 찾아볼까 하고 뒤져본 알바정보지는 또 왜 이렇게 얇은 거지?(한때는 모서리로 때리면 사람도 죽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두꺼웠다구.) 게다가, 게다가…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낼 모레면 서른) 얼굴에 생겨버린 아줌마 기미! 나… 나 혹시 ‘어려 보이려고 발악하는 아줌마’가 돼버린 거야?

그 때가 되면, 일도 사랑도 경제적인 위치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이, 서른. 그러나 사회의 벽은 높고도 높고, 소통의 강은 넓고도 넓어서 막상 도달하고 보니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는 서른이라는 나이 뿐.

제목과 표지그림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로는 ‘이국적인 여행지에서 보내는 사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이야기일 것만 같은 <소소한 휴일>. 그러나 <소소한 휴일>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그런 ‘환상’ 같은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냉엄한 현실의 이야기이다.

연애휴일 2105일째, 오늘의 예금 잔고 35만6233엔. 친근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에 킬킬대며 웃던 독자들은 예금 잔고처럼 제시되는 주인공의 현실 앞에서 문득 자기 자신의 현실을 떠올리게 돼버리고 만다.

도심에서 되살아나는 무속의 신화 <도깨비 신부> 1~4권

a 말리 <도깨비 신부>

말리 <도깨비 신부> ⓒ 허브

'2004년 하반기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말리의 <도깨비 신부>가 잡지 연재를 통해 후속 단행본을 내놓았다. <도깨비 신부>는 2002년 1권, 2003년 2권이 발행된 이후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왔지만 단행본을 내던 출판사가 문을 닫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그러나 독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회자되며 인기를 끌어온 탓에 새로운 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을 발행하고 잡지 연재까지 이어지게 된 것.

무당인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영적인 존재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소녀 선비. 도깨비, 용신, 정랑각시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영적 존재들과 소통하며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자각해 나간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당의 손녀, 미쳐 죽은 여자의 딸이라는 잣대로만 그녀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도시의 삶에 적응해가던 선비는 새로운 사람들과 영혼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능력과 자아에 대해 눈을 떠간다.

자신의 아픔만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의 아픔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된 선비. 선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 것인지. 선비에게 묘한 라이벌의식을 느끼는 어린 무녀 화란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 간다.

1959년 12월 5일 이른 아침, 나는 이 작은 별을 찾아왔다, <작은 별 통신>

a 나라 요시모토 <작은 별 통신>

나라 요시모토 <작은 별 통신> ⓒ 시공사

천진해 보이면서도 밉살스러운 표정의 어린아이.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가, 나라 요시모토의 대표적 캐릭터들은 순수성의 양면적 속성인 밝음(천진함, 사랑스러움)과 어두움(잔인함, 상처)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매력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인터넷과 블로그를 통해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가이지만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삽입된 삽화가 전부였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작은 별 통신>은 그 작품세계가 지닌 매력의 기원을 탐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가볍고 겸손한 필체로 표현한 성장기와 일상의 풍경을 통해 독자들은 저자가 아티스트로서 성장하고 변화해온 과정에 즐겁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나도 상처를 입고, 그런 연속이라 한심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서 나란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림과 사진, 직접 그린 작업실 평면도 등 213컷에 달하는 도판을 감상한 후 책을 덮었는데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올 여름(6월 17일~8월 14일) 로댕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인 나라 요시토모의 개인전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

삶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여행 <보름달의 전설>

a 미하엘 엔데 글, 비네테 슈뢰더 그림 <보름달의 전설>

미하엘 엔데 글, 비네테 슈뢰더 그림 <보름달의 전설> ⓒ 보림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미하엘 엔데. <모모> <끝없는 이야기>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상상과 깊이 있는 통찰, 신비로운 이미지로 수많은 ‘동화 읽는 어른’ 독자를 만들어왔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작품을 통해 새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진리를 찾아 세상을 등진 성자와 인생을 낭비하며 방탕하게 살아온 살인자 도둑의 이야기 <보름달 전설>이 그것이다.

철학적 사색이 가득한 엔데의 글은 비네테 슈뢰더의 몽환적인 그림과 만나 강렬한 이미지와 사색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림을 그린 비네테 슈뢰더는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며 글을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그림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게 만드는데,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모래알처럼 거친 색감, 눈이 부시면서도 한기가 느껴지는 빛은 감상자로 하여금 열탕과 냉탕에 한 번에 들어가 앉아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체험을 하도록 만든다.

덧붙이는 글 | <휴머니멀> | 박순구 | 황매 | 7,800원
<소소한 휴일> 1~3권 | 마리코 나가하라 | 김현정 옮김 | 대원씨아이 | 각권 3,500원
<도깨비 신부> 1~4권 | 말리 | 허브 | 각권 5,500원
<작은 별 통신> | 나라 요시모토 |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18,000원
<보름달의 전설> | 미하엘 엔데, 비네테 슈뢰더(그림) | 김경연 옮김 | 보림 | 12,000원

* 이 기사는 성인순정만화잡지 월간 <허브>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휴머니멀> | 박순구 | 황매 | 7,800원
<소소한 휴일> 1~3권 | 마리코 나가하라 | 김현정 옮김 | 대원씨아이 | 각권 3,500원
<도깨비 신부> 1~4권 | 말리 | 허브 | 각권 5,500원
<작은 별 통신> | 나라 요시모토 |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18,000원
<보름달의 전설> | 미하엘 엔데, 비네테 슈뢰더(그림) | 김경연 옮김 | 보림 | 12,000원

* 이 기사는 성인순정만화잡지 월간 <허브>에도 실렸습니다.

뒤란이 있는 집

이계선 지음,
황매(푸른바람), 200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4. 4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