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년이 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의 <가상역사 21세기>를 읽고

등록 2005.03.30 17:00수정 2005.03.3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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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0년대 일어날 일들

사실 몇 주 전에 나는 맥스를 내 남자친구로 변장시켜 증조할머니를 찾아 뵐 생각까지 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분명 증조할머니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셨을 것이다. 맥스는 그 정도로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친구 몇 명에게 내 계획을 털어 놓았더니 못된 인간이라는 질책이 날아와 그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는 2070년 정도에 뇌와 신경계를 가진 로봇 인간이 나타나서 사람과 똑같이 행동할 것을 이야기 한 것이다. 1970년대 처음 생각하게 된 나노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21세기에는 그런 단계에까지 접어든다는 것이다.

가상 역사이긴 하지만 그런 일들이 그저 꿈속에서만 그려낼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을 대신하여 단조롭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로봇이 나타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세월이 좀더 지나가면 그보다는 훨씬 더 지능이 발달하여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는 로봇인간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 정도라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도 무척이나 달라져 있을 것 같다. 복잡하게 시내를 빠져나가 병원입구에 도착하여 진찰을 받고, 처방조제를 가지고 약국에 들러서 약을 타 먹는 그런 복잡한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로봇이 인간처럼 대우받고 활동하는 시대라면 인간은 좀더 편안한 시대 속에 살지 않겠는가.

그저 집 안에 앉아 있거나 사무실이나 일터에서도 얼마든지 진찰을 받고 수술까지도 시원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홀로그래픽이란 3차원 영상을 통해 아픈 부위를 진단해서 시술하고, 또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의료정보를 통해 그 사람에게만 맞는 약을 쓰는 등 모든 의료기술이 그 단계에까지 다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창 이야기되고 있는 복제 인간도 그 때쯤이면 옳으니 그르니 따질 겨를도 없이 벌써 몇 명 정도 만들어져 살고 있지 않을까? 나노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인간이 똑같은 인간처럼 활동하고, 홀로그래픽 덕에 인간이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맘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때쯤이면 복제인간도 어디에선가 활동하고 있지 않겠는가.


〈2〉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가 쓴 <가상역사 21세기>(이순호 옮김)

그런 앞날에 대해 좀더 섬세하게 예측해 놓은 책이 있다. 21세기가 되면 과학기술과 세계 역사가 어떻게 급속도로 변하게 될지, 그저 뜬구름 잡듯 무턱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의학과 세계 정치․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정말로 치밀하게 분석하고 예견해 놓은 책이다.


a 책의 겉그림

책의 겉그림 ⓒ 리브로

바로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가 쓴 <가상역사 21세기>란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옴니버스 영화를 찍듯 앞으로 다가올 인간 세상을 정말로 실감나게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유전자 지문이 어떻게 실용화될지, 복제 인간과 실제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네트워크로 묶여 있는 인간 세상이 어떤 문제점을 야기할지 그리고 그 해결책은 무엇일지, 핵전쟁과 생화학 테러 그리고 지진 피해로 인해 겪어야 하는 연쇄도미노 공황 상태를 어떻게 바라볼지, 손에 잡힐 듯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21세기 말의 몇 십 년간 제공된 의료기술로 선진국 국민들은 한때는 치료 불능으로 여겼던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예방 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고, 게놈과 생명공학에서 도출된 새로운 지식으로 사람들은 원하기만 하면 생체시계까지도 되돌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95쪽)

더욱이 가상역사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떵떵거리고 있는 미국마저도 어떻게 무너지게 될지, 중국이 어떻게 대만을 짓누르고 미국에 맞서 경쟁할 수 있는 나라로 급부상할 수 있을지, 미국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뒤따라 하던 일본이 왜 등을 돌리고 중국에 굽신거려야만 하는지, 우리나라에게 일본이 뒤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무엇이고, 미국이 주는 압력을 받고 있고 그 그늘 아래 숨 조이며 사는 멕시코가 어떻게 서반구 국가들을 이끌어 나갈 정도로 떠오르는 샛별이 될지, 아주 꼼꼼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첨단기술에 기반한 탄탄한 경제와 중국의 거대한 경제우산 속으로 발 빠르게 능동적으로 편입하는 기민함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21세기 말 한국의 생활수준과 일인당 국민 총생산액은 일본을 앞질렀다.(367쪽)

〈3〉2112년이 돼도 문제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가상역사에 대한 책이라고는 했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오래전에 봤던〈데몰리션맨〉이나 〈블레이드〉같은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듯 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과학기술과 컴퓨터합성에 의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서 그 이야기와 사건들을 꾸며나가는 영화들….

그러나 유전자 조작이라든지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한다든지, 홀로그래픽을 통해 3차원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든지, 인간 몸속에 넣고 다니는 전자 칩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식별할 수 있다든지, 생화학 무기가 어떻게 테러에 사용될 수 있는지 등등은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

더군다나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가 될 것이라든지, 미국이 망하면 세계금융시장이 연쇄도미노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라든지,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여전히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는 위대한 인간마저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라든지, 하는 이야기들도 전혀 딴 세상 이야기라고는 할 수도 없다. 가히 있음직한 일들, 앞으로 가까운 시간 안에 곧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좋은 세상을 살아가는 21세기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공상과학영화 같은 일들이 그렇게 현실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여전히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 미래를 대비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경제대국에서 제외되지 않고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세계 경제공항을 맞지 않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생화학무기 테러 같은 것에 노출되지 않고 그것을 막아 볼 수 있을 것인지, 단지 그런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더 차원 높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들여 불치병과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 획기적인 의학연구를 가져온 나라와 연구단체가 있는가 하면, 또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는 나라와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수 없이 많은 것….

미국과 중국이 앞 다투어 경제대국이 되려고 기를 쓰는 동안, 그 두 나라에 빌붙어 살아가려 하거나 그로부터 소외된 약소국가들은 그 어려움을 얼마나 겪어야 하며, 또 그 개발 명목 때문에 세계 자연과 환경은 얼마나 더 극심한 피해를 겪어야 할지… 등등.

2112년인 지금, 지난 백 년간 이룩한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부의 분배 문제다. 오늘날 선진국 국민들은 전례가 없을 만큼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반면 지구상에는 아직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이 10억 명을 넘고 있으며 그 중 4백만 명이 어린 아이들이다. …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준의 삶의 질을 우리 후손들이 누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526쪽)

그렇다면 의료 혜택을 입기 위해 어떻게 경제를 축적해 놓을지, 누가 세계 경제패권을 거머쥘지, 그 세계 패권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화학무기 테러에 어떻게 대비하고 감시체계를 더 굳건하게 해야 할지…, 그러한 신자유주의질서 체제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로 골머리을 썩기보다는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의 종(種)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모두가 잘 살 수 있고, 모두가 좋은 환경 속에서 숨쉴 수 있는 그런 문제에 더 큰 뜻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책과함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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