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역사교사와 한국 고교생과의 대화

등록 2005.03.30 19:10수정 2005.03.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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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역사교사와 우리 학교 학생들을 만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후지와라 선생은 10년 넘게 친하게 지내온 일본 역사교사다.

29일 저녁에 종로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대뜸 제안했다. 내일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독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학생들과 대화를 한번 해봄이 어떠냐고. 통역을 맡은 황자혜씨도 좋다고 했다.

일본은 짧은 봄방학이 있다. 4월 1일에 개학한단다. 후지와라 선생은 교재 연구차 우리나라를 방문했단다. 독도문제를 제대로 일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7교시 나의 세계사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a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진땀나네....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진땀나네.... ⓒ 신병철

(세계사 선생)"후지와라 선생은 일본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에 있는 '자유의 숲 학원'의 고등학교 선생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독도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눠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먼저 일본의 상황을 후지와라 선생이 설명하고, 여러분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후지와라)"일본은 현재 영토문제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지역이 3군데가 있습니다. 홋카이도 북쪽에 있는 치시마 열도 중에 네 개의 섬은 한 때 일본사람들이 주로 살았습니다. 2차대전 말기에 소련이 점령하고는 일본사람들을 홋카이도로 쫓아내고 소련령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북방영토의 날'을 제정하여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이 영토를 반환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점차 북방영토에 대해서 잊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독도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일본 영토임을 확인하고도 반환받지 못하고 있는데 독도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아, 독도라는게 또 있구나 하는 정도로 사람들은 알기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학생)"일본 시마네현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있으면 무엇입니까?"

(후) "한국으로 오기 전에 사이타마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시마네현에서 주장하는 근거는 두 가지였습니다. 에도 막부 정권에서 독도를 영토로 삼았다는 것과 메이지 정부에서 1905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는 사실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마네현은 일본에 있는 작은 현입니다. 48개의 현 중에서 46번째의 작은 현이고 인구는 70만 정도입니다. 일본 인구가 얼마인지 아십니까?(1억 2천요) 정확히 알고 있네요. 1억2천 중에서 70만은 너무 적은 숫자입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독도는 잘 모르는 섬입니다. (후지와라 선생은 끝까지 독도라고 발음했다) 잊혀진 섬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분노하고 관심있는 독도인데 일본에서는 관심없는 섬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교과서에는 독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a 통역자의 말을 조용히 귀담아 듣고 있는 학생들. 오늘 시간처럼만 조용히 공부에 열중하면 얼마나 좋을까.

통역자의 말을 조용히 귀담아 듣고 있는 학생들. 오늘 시간처럼만 조용히 공부에 열중하면 얼마나 좋을까. ⓒ 신병철

(학생)"<아사히 신문>에서 '독도를 우정의 섬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은 기사가 있었는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후)"(가져온 신문 기사를 학생들에게 보이면서)이 기사입니다. 이 신문 사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일본과 한국의 우정의 섬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망상을 가져본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행동의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속내(本音)와 외양(建前)이 있답니다.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과 속으로 목표로 삼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겉으로는 독도가 일본 영토이다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독도문제가 부각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은 현재 독도 문제를 대화나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나가려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끄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보류된 상태로 시간을 연장해나가는 것이 속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독도에는 대나무가 한그루도 자라고 있지 않은데, 왜 일본에서는 죽도(다케시마)라고 부르는지."(웃음)

(후)"잘 모르겠습니다."(웃음보가 터졌다.)

a 독도 문제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냐면 말씀이죠….

독도 문제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냐면 말씀이죠…. ⓒ 신병철

(학생)"독도문제 등으로 보아서 일본은 자꾸만 우경화되어 가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일본은 어떻습니까? 일본은 지금 전국적, 전체적으로 우경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극우화되어 가는 학생들도 많습니까?"

(후)"일본의 우경화에는 미국의 영향이 컸습니다. 일본의 자위대도 미국의 허용 아래 구성되었습니다. 조선전쟁(한국전쟁) 때 조직되어 자꾸만 강화되고 있습니다. 전후 일본은 헌법에 군대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헌법을 개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미국의 영향 아래 우익 세력이 성장했습니다. 이라크 파병도 미국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적 강요가 아닐까요?

그러나 우경화에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2차대전 때 일본인 200만이 죽었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고 싸우는 세력들도 많습니다. 더더구나 학생들은 염려하는 것처럼 우경화의 경향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전쟁반대,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 나도 한 사람입니다.

a '어떤 해법이 있을까?' '무관심해야 하나?' '강하게 반발하긴 해야 하는데 그게 또 좋은 방법일까?'

'어떤 해법이 있을까?' '무관심해야 하나?' '강하게 반발하긴 해야 하는데 그게 또 좋은 방법일까?' ⓒ 신병철

그런데 독도 문제는 제발 문제화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독도문제 확대로 일본 우익 세력은 끝없이 세력확장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독도문제가 일본 전역으로 크게 일어나면 우익세력은 점점 커져갈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할수록 일본 국내의 우익세력은 힘을 얻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그것입니다. 슬기롭게 대처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매우 왜곡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교과서대로 가르치면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칩니까?"

(후)""후소샤 발간 역사 교과서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일본 전체 중에서 세 학교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 학생들의 숫자에 비하면 너무나 경미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지금의 일본 교과서가 아주 제대로 된 교과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자꾸만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았다'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 교과서에서는 이 내용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단도직입적으로 선생님께서는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라고 생각합니까?"(웃음 합장)

(후)""여러분을 만나면 틀림없이 이 질문이 나오리라 예상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어제 저녁에 여러분의 세계사 선생님과도 충분히 의견을 나눴습니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나아준 자식과 길러준 자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낳아 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 독도는 길러준 자가 주인이어야 합니다. 50년이 넘게 실질적으로 영유하고 있었고 그렇게 길러주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이제 와서 내 자식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학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a 후지와라 선생님과 통역자 황자혜씨

후지와라 선생님과 통역자 황자혜씨 ⓒ 신병철

(세계사 선생)"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여러분과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본 역사 선생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없습니까?"

(학생)"일본과 한국은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누가 우수하고 누가 열등하고 하는 우월 경쟁이 아니라 한국도 일본도 고유한 특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서로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후)"여러분과 좋은 시간 갖게 되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한국말로) 안녕히 계십시오."

(학생들)"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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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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