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 광산에 이르는 길이 꽤 험했다. 평양에서 영변까지는 지척이었으나 막상 운산에 접어들어 북으로 오르면서 길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광산이 아니었던들 도저히 인간이 범접할 것 같지 않은 적막강산의 연속. 그러다가 잊을만하면 두엄을 엎어 놓은 듯 움집 몇 가구가 모인 작은 마을들이 나타나곤 했다. 끊일 듯 이어지는 굽이굽이의 길을 두 사내가 오르고 있었다.
“어허, 그 놈의 산 깊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견마잡혀 종자를 대동할 것을….”
둘 중 목소리가 그렁그렁하고 기골이 수려한 이가 헐떡이며 말했다. 유홍기였다.
“자네도 참… 애초 어르신의 서찰에 일간 조용히 방문해 줄 것을 당부하셨으니 이리 단출하게 나선 것 아니겠는가?”
역관 오경석의 말이었다. 둘은 평양 감영에서 박규수를 만난 후 부리는 사람들은 평양에 남겨둔 채 다시 평안도 운산을 향해 단출한 행장으로 나선 것이었다.
“허, 어르신께서는 왜 이런 고장으로 거처를 옮기셨을고?”
유홍기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가산을 정리해 한양을 떠난다 하실 때부터 무슨 곡절이 있음은 짐작을 했네만….”
오경석이었다.
“그러게 말일세. 광산을 열겠다 하셨으나, 그것이 참 연유라면 자금을 대고 한양에서 전주(錢主)노릇을 하시어도 될 것을 굳이 이런 심산유곡에 둥지를 틀 까닭이 무엔가.”
유홍기도 역시 의문이 남는다는 듯 말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은점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점장(店匠)들이었다. 점장들은 당초 각종의 수공업에 종사하던 소생산자들로서 은석(銀石)을 감별할 수 있는 식견을 지녔거나 채광과 제련기술을 갖춘 자들로 전업적인 광산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광맥을 발견하면 설점의 허가를 따낼만한 능력과 재력을 갖춘 자를 찾아 별장을 삼은 후 자신들은 각기 분화된 공정에 따라 연군(鉛軍)을 거느리고 채굴 및 제련작업을 주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점장의 수는 일정치 않았지만 한 광산에 적게는 10명에서 20, 30명이었고 이중 한 사람의 ‘두목(頭目)’이 있어 사실상 광산의 모든 점역(店役)을 총괄하였다.
호조에서는 점장들을 과세대상 인원에서 제외하여 연군들과 엄격히 구분하였고 그 대신 이들에게는 생산한 은괴에 반드시 점명(店名)과 장수명(匠手名)을 새기도록 하여 품질을 보장하도록 책임을 지울 만큼 그 역할이 컸기 때문에 별장이나 물주가 실제로 광산일에 참견할 만한 일은 없었다. 정 미덥지 않으면 혈주(穴主)나 덕대(德大)를 두면 될 일이었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기범이 그 친구의 행적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네.”
오경석이 말했다.
“기범? 어르신의 독자 말인가? 7년 전 종적이 묘연했다가 몇 해가 지나서야 홀연 모습을 드러냈다던?”
“그래. 그이 말일세. 어르신께서 가산을 정리하시고 한양을 뜨신 때가 기범이 광맥을 찾았다는 시기와 겹치네.”
“그야, 아들이 광맥을 찾았으니 광산을 열기 위해 투자를 하셨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왜 전주(錢主)나 물주(物主)로 만족하지 않고 몇 대를 이어온 터전을 등지시는가 하는 것일세.”
“바로 그거야. 대치(유홍기) 자네의 말처럼 광맥을 찾았다 해서 가산을 정리해가며 터전을 옮길 이유는 없네. 더구나 우리 역관들 사이에서도 권씨 가문의 재물이 보통이 아님은 익히 알려진 터인데 그 많은 재산을 모두 광산에 들어부었단 말인가. 조선 팔도에 그만한 규모의 광산이 있기나 하던가?”
“그야 알 수가 없지. 광산을 내우외환의 흉악으로 여겼던 영조 대왕 시절에도 은산은점 한 곳의 은군 수만도 720명이 넘었고 철종 임금 대에도 함경도의 암행어사 홍승유(弘承裕)가 도내에는 금·은·동·연의 각 산지가 있는데 한 점이 개설될 때마다 팔방에서 운집하여 매광에 모여든 광군들은 기천 명이 훨씬 넘는다고 계를 올렸던 것으로 보면 광산의 규모란 게 한이 없음이야.
그만큼 들어가는 자금도 막대하겠지. 광산에 손을 대고 있는 내 친우의 말을 들어보면 금군들이 하루에 채취한 금가루(金粒)는 6,7푼(分)이 되어 그것을 팔면 동전 2,3량(兩)을 받는다 하네. 이는 미곡 반 석에 해당하는 값이니 많은 사람들이 매달릴 밖에 없지.
지금이야 노천의 사금은 동이 나고 갱도를 깊게 파야 광맥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이익의 폭이란 이만저만이 아니네. 성천금광 한 곳의 생산량이 금 2만 냥이라 하는데 조정의 공정수매가로 환산해 보면 동전 80만 냥에 상당하는 액수야. 거기에다 자산금광의 생산량까지 합친다면 가히 조정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수치라 할 수 있지. 권병무 어르신께서 그런 광산에 재산을 걸었다 함은 별반 이상한 구석이 없네.
다만 해소되지 않는 의문은 왜 그분이 한양을 떠나 이런 궁벽한 곳에 둥지를 트셨는가 하는 것일세.”
“뭔가가 있는 듯하이. 그 분, 한양을 뜨신지 벌써 3년째야 그간 소식 한번 없다가 올해가 되어서야 평안도 운산에서 광산을 열고 성업 중에 있다는 기별을 보내오셨네. 그리곤 일간 조용히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의중을 밝히셨으니 무언가 긴한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래. 그런 낌새는 있어. 기범이라는 그이가 광맥을 찾네 하며 사라졌다는 때도 7년 전 홍영익 대감 역모 사건과 관련한 피바람이 한참일 때가 아니었나. 권 역관 어르신이야 하시(何時)라도 평정을 잃지 않으시는 성정이니 속을 알 수 없다손 치더라도 평생을 무예와 학문으로 살아온 기범이가 때 아닌 광산이라니… 말은 안 했어도 경신년 역모 건과 권 역관 어르신 집안이 연루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역관들 사이에선 파다한 소문이 아니었는가.”
“쉬~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릴!”
오경석이 유홍기의 입을 막기라도 할 듯이 다가서며 반사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분 집안에서 종자들과 반상(班常)의 구분을 없애고 지내신지는 이미 오래지 않은가. 한양 인근에서 뜨르르한 송여각 주인도 그 집 종자였는데 재산을 분할 받아 분가하여 오늘날 그런 기반을 잡게 된 것 아니겠는가 말일세. 그런 혁신적인 사상과 고매한 인품을 지니신 분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내 썩은 조정의 구실아치 노릇이 싫어 역과에 응시하지 않고 이리 한량으로 살고는 있네만 평소 권 역관 어른을 흠모하는 마음이 컸네. 그 분이 무슨 일을 계획하시든 허투로 행하시지는 않을 게야.”
유홍기는 이 곳이 인적을 찾을 수 없는 산길임을 믿는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어허 이 사람. 서운하이. 그래 난 조정의 썩은 구실아치란 말이지?”
“하하하. 말이 그리 되는가? 그래도 누군가는 된장독 안의 숯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들 냄새난다고 그 독을 피하면 뉘라서 장독 안을 정화시키겠는가. 자네는 그런 면에서 숯이지 숯.”
“이 사람, 병 주고 약 주네 그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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