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청소년들은 외롭다

전북 부안의 얼마 안 남은 청소년들..."도시로 간 아이들이 부러워요"

등록 2005.03.31 10:04수정 2005.03.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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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취재를 다녀와서 농촌 청소년들이 쓸쓸하게 자라더라고 말했더니 듣는 사람마다 그런 줄 몰랐냐고 면박을 주었다.

지난 2월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농촌 인구는 7.1%밖에 안 되는데 65세 이상 노령 인구의 비중은 점점 높아진다고 한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열에 하나도 안 되고, 젊은 사람들은 더 없고, 특히 청소년은 찾아보기 힘들다.

90%의 도시인들은 설사 자신이 농촌 출신이고, 농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을지언정, 오늘날 농촌에 사는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을까? 그들이 떠올리는 농촌 청소년도 과거의 자기 모습이지, 이제는 소외감을 나눌 친구조차 없을 정도로 희귀해져 버린 실제의 아이들이 아니다. 아직도 농촌에 청소년이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는,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웃 주민의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작아지는 농촌의 희귀해진 아이들

지난 2월 말 취재진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 갔다.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해온 '생명평화모임'의 김영표 사무국장께 신신당부를 해두었음에도 약속장소에는 두 명의 여학생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조차 사무국장이 애걸하고 협박(?)하여 겨우 붙들어 놓은 듯했다. 방금 전 황급히 방을 나간 남학생 하나는 도망가는 게 분명했다. 피자 사 주겠다, 노래방 가자, 취재진은 갖은 말로 여학생들을 '꼬시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각자 휴대전화를 부지런히 눌러 친구들과 접촉을 시도했고 인터뷰는 그들이 전화를 끊고 새 전화번호를 누르기 전 짧은 틈에 간략한 문답으로 대체되었다. 여학생의 친구들은 취재라는 말만 나오면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취재진은 애가 탄 나머지 여학생들에게 그 단어를 빼라고 요구했다. 그냥 친구로서 만나자. 친구!


홍주희(18) 양은 올해 부안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전문대학 영상학과에 진학한다. 지난 해 핵폐기장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청소년 영화제가 열렸는데, 그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본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장차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찍어 세상에 알리는 미디어 운동가가 되고 싶단다. 그러나 그는 매우 특별한 경우다. 같은 반 친구들은 거의 다 이미 경기도나 충청북도 반도체 생산 현장에 가 있다.


지난 해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비정규직으로 입사했고, 졸업하면 정규직이 된다. 그 친구들은 크고 뜻있는 꿈을 가진 주희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안정된 직업을 중시했으므로 주희가 그런 걸 해서 어떻게 먹고 살까 걱정도 많이 했단다. 주희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여기다 말하면 뭐가 좀 달라지나요? 제 친구들처럼 실업계 학교 나와 취업하는 아이들은 노동법을 하나도 모르고 가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그런 거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동법을 하나도 모른 채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난 친구들은 벌써 연락이 끊겼다. 안 그러려고 해도 워낙 멀리 떨어져 사니 그렇게 된다. 사무직은 명절 때라도 고향에 오지만, 생산직은 명절에도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2~3년 만에 한 번밖에 못 오고 그때 서로 어긋나면 그만이다. 졸업만 하면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서, 선후배도 동창도 찾아볼 수 없다.

김보라(17) 양은 올해 3학년이 되므로 이번 겨울방학에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해 봤지만, 고민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방학 내내 집에서 텔레비전만 본 셈이다.

친구를 만난다 해도 부안읍 버스터미널 주변을 걸어 다니다가, 분식집에서 밥 먹고 하나밖에 없는 24시간 편의점 '미니 스톱'에 들어가 한두 가지 물건을 산다. 그리고 또 걸어 다닌다. 부안에서는 할 일이 걸어 다니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이 놀려면 전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돈이 든다. 차비도 차비려니와 까딱 차를 놓치면 찜질방이나 PC방에서 자야 한다. 부안의 대표적인 관광지 격포에 가려면 차비가 왕복 6000원이나 들어 쉽게 못 간다. 물론 아이들은 바다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놀이기구를 타러 그곳에 가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부안예술회관 안에 '청소년의 집'이 있다는데, 걸어가기에는 멀고 굳이 차까지 타고 갈 만큼 끌리지도 않아 간 적이 없다. 어느 방송사 드라마 촬영장 덕분에 생긴 '영상 테마 공원'도 소문만 들었지 대중교통편이 닿지 않아서 못 가봤다.

보라는 이제까지 전주에는 딱 세 번 가봤고, 영화관은 이번 겨울방학에 <인크레더블>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러 한 번 가봤다. 집에 있는 비디오도 어렸을 때 고장나 마지막으로 본 게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다.

할 수 있는 건 걸어 다니는 것뿐

속아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을 '모시고' 취재진은 피자집으로 달렸다. 박수필(18)군은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 행정복지학과에 진학한다. 같은 반 동기들 중에 절반은 전문대, 나머지는 종합대학에 들어가는데, 부안에는 대학이 없으므로 전주·익산·광주로 다들 유학을 가는 셈이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한 명도 없고, 국립대학 합격자는 그가 유일하다. 어디에 갖다 놓아도 공부 잘할 것 같은 그는 부안에서 자랐다는 사실에 불만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입을 모아서 아니라고 반박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다 도시로 빠져나가요. 남아 있는 우리들이 오히려 이상해지고, 나만 왜 못 나가고 남았을까 하는 불행한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도시로 간 아이들이 부러워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부안군 인구는 1969년 15만9721명에서 2003년 6만8066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는데, 이것도 주민등록상으로만 그렇고 실제 인구는 5만 명 수준이라고 한다.

a 부안의 문화시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척도는, 부안에 영화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갈 만한 곳은 노래방 정도다.

부안의 문화시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척도는, 부안에 영화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갈 만한 곳은 노래방 정도다. ⓒ 인권위 김윤섭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층의 감소가 두드러진다. 농촌에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둥, 10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둥 유년층의 감소를 걱정하는 소리가 드높지만, 더 심각하게 감소하는 건 청소년층이다.

최근 5년 단위로 1994년-1999년-2003년의 부안군 인구를 비교해 보면, 유년층조차 대략 700~800명씩 줄어드는데 청소년층만 수천 명씩 푹푹 준다. 10~14세 인구는 7605명-4185명-3524명으로, 15~19세는 9884명-6251명-4445명으로 줄었다.

2002년 부안군의 10~19세 인구는 12.4%밖에 되지 않았다. 부안군의 인구구조는 노년층이 많은 역삼각형도 아니고, 가운데가 깎여 들어간 망치형이라고나 할까. 취재진이 만난 청소년들은 열에 하나도 안 되는 농촌인구 중 몹시 귀한 인물들이다.

얼마 전 농촌경제연구소는 이런 추세라면 10년 안에 전국에 20~30대 농민이 2000명밖에 남지 않으리라는 '충격적'인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진짜 충격은 따로 있다. 10년 후에 바로 그 20~30대가 될 농촌 청소년들, 취재진이 만난 6명 중에 앞으로 고향에 살겠다는 학생은 단 한 명, 지난해 대안학교인 '변산공동체학교'를 졸업한 김시전(19)군밖에 없었다. 그것도 일단 떠났다가 35세 이후에 돌아오겠다는 이야기다.

장차 뭐가 될지 모르겠다는 김보라양조차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부안에서는 살지 않겠다는 것. 부안에서 자란 데 불만이 없는 박수필군도 부안에서 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무리가 농촌 청소년의 실정을 정확히 반영한다면, 10년 후에 농촌에 살 젊은이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

"왜냐고요? 여기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어른들도 농사짓든지 조그만 장사를 하든지, 이것저것 하다 말든지, 제대로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우리더러 학교만 마치면 얼른 떠나라고 해요. 여기 대학이 생긴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아요. 이런 데서 대학 나와 봤자 뭘 해요? 젊은 사람들을 나가라, 나가라 하는 데에요."

"왜냐고요? 여기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중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살던 곳에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남들은 진작 떠난 고향을 뒤늦게 떠나기까지, 중·고등학교 6년은 공백기나 유예기간이다.

그동안 놀 곳도, 갈 데도 없다. 시간은 축축 늘어지고, 아이들은 읍내 터미널 부근을 걷고 또 걷는다. 워낙 숫자가 적으므로 학교나 마을의 다른 아이들끼리도 다 아는데, 그 아이들도 역시 하릴없이 걷기 일쑤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어디를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읍내 사람들이 다 안다. 아이들은 숨고 싶고, 제발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 조그만 '매창공원'이나 빈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도시 아이들이 모처럼 내려와 논의 벼를 보고 "어머나, 새싹이 돋네!"하며 감탄하거나 "허수아비를 어떻게 만드니?" 하고 물으면 확 짜증이 난다.

"할머니댁에서 매일 고구마 구워 먹어 봐요. 죽고 싶지. 우리들은 버림받았어요. 어른들은 계모임이나 술집에 가고, 어린애들은 놀이방과 학원에 가죠. 우리들은 어디에 가죠? 보도블록과 가로등은 왜 그렇게 뜯어고치는지. 그런 거 보면 다 때려부수고 싶어요. 지역 발전? 다 헛짓이에요."

a 고교생 강수진 양이 가수 '동방신기'와 'TONY'의 팬클럽 카드를 보이고 있다.

고교생 강수진 양이 가수 '동방신기'와 'TONY'의 팬클럽 카드를 보이고 있다. ⓒ 인권위 김윤섭

올해 부안여고를 졸업하고, 친척의 사업을 도우러 경기도 일산 신도시로 간다는 강수진(18) 양은, 새만금이나 핵폐기장이 어떻게 되든 부안은 발전할 리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을 확신하고 있다.

설사 부안에 뭐가 생긴다고 해도, 여기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외지 사람들, 즉 서울 사람들이 덕을 볼 것이다. 원래부터 전라북도는 소외당해 왔고, 부안은 특히 그랬으니까.

박수필군은 분석적으로 덧붙인다.

"정부가 정확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잖아요? 일자리가 창출된다 해도 일시적일 거에요."

올해 부안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민경숙(17) 양은 더욱 암울하게 전망한다.

"부안이 발전해서 인구가 는다고 해도, 한번 떠난 부안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고향을 이미 겪어 봤으니까요.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한지. 우리보다 앞서 도시로 나간 언니, 오빠들은 명절 때도 고향에 와서 며칠 못 견뎌요. 심심하니까요. 40대나 되면 모를까.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젊은 사람들은 한 명도 없어요. 지금까지야 부모님 때문에 가끔이라도 오지만, 그분들 돌아가시고 나면 올 일이 없을 걸요? 성묘하러나 오겠죠. 서울 사람들이 놀러오든지."

20대가 된 김시전군은 간혹 만나 술이라도 같이 마실 또래 친구가 단 두 명뿐인데, 그나마 한 명은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만 부안에 온다. 변산공동체 학교 졸업생 중 아직 부안에 남아있는 동창도 본인을 포함해 두 명뿐이다. 개교할 때 11명이었던 공동체 학교 학생 수도 지금은 두 명으로 줄었다.

물론 취재에 응한 여섯 명의 청소년들이 한결같이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은 고향을 사랑한다. 그러나 김시전군을 빼놓고는, 혹시 고향에 돌아오더라도 50세 이후의 일로 생각하고 있다.

노래방에서 나왔을 때는 날은 이미 어둡고 비가 내렸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날이 졸업식이고, 그 다음날이면 강수진양은 떠난다. 홍주희양은 일주일 뒤에, 박수필군은 3월 초에 떠나고 김시전군은 9월에 군대에 간다.

a 부안고등학교의 졸업식 풍경.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난다.

부안고등학교의 졸업식 풍경.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난다. ⓒ 인권위 김윤섭

그렇게 떠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언제 볼지 기약이 없다. 어차피 떠나야하므로 아이들은 무덤덤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나머지 두 명, 김보라양과 민경숙양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고향에 온다 해도 방문이지 귀향은 아닐 것이다. 흔히 도시인들이 뿌리가 없다는데 농촌에서 자란 청소년들이야말로 성장기를 통째로 잘라 내고 떠돌아야 한다.

그 아이들은 참 외롭다. 수치로 보면 전라북도의 소득은 경북, 충남, 전남과 엇비슷하게 하위를 차지한다. 고향이 소외되었다는 아이들의 주장은 근거가 있기도 하지만, 농촌 청소년이라면 다들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생명평화모임의 김영표 사무국장은 새만금이며 핵폐기장 문제의 배경에는 농촌의 절망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갯벌을 파묻는 게 잘못이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렇게라도 보상이랄까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농촌을 전부 관광지나 도시인의 쉼터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일부 지역이고 나머지는 여전히 소외된다. 위험 시설을 전부 농촌에 몰아 버리면, 사람은 다 도시에서만 살란 말인가?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있다는 희망을 되살리는 것, 농촌을 살리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인터뷰하면서 아이들이 사투리를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필자는 돌아오는 길에야 깨달았다. 아이들이 취재진을 피했던 이유는 거리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도시에 나가 만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거리감을 느껴야 한다니, 그 아이들은 참 외롭다. 공유할 사람이 너무나 적어서 잊혀 버릴 그들의 청소년기는 아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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