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새마을운동' 시절로 돌아갑니다

4월 5일 동창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

등록 2005.03.31 19:27수정 2005.04.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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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겨울동안 산골마을에 처박혀 있던 나는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동네 두 군데를 지나 능선 하나를 넘어서는데 무슨 경계선이라도 통과했다는 듯이 가방 속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불통 지역에서 살아온 지 벌써 5년째인데, 그래서 휴대전화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 잊어버릴 만하면 울리고는 했었다.


느닷없이 웬 전화지? 라고 생각하며 받았는데, 정말 생뚱맞게도 어떤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종득이냐?"
대뜸 오래된 친구라도 되는 듯이 물어온 이 낯선 남자가 누구란 말인가. 내 머릿속은 탄력 받은 팽이처럼 막 돌았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나야 인마, 박천수!"

물론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전라북도 익산군(시) 용동면에 있는 흥왕초등학교에서 6년 동안 내내 같은 반이었던, 그러고도 한 동네에 살았던 친구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정말 낯선 것이었다. 무려 32년만에 듣는 목소리였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a '아름다운 학교' 선정비

'아름다운 학교' 선정비 ⓒ 양대윤


"종득아, 우리 동창 번개 모임 있는데 안 나올래?"


상투적인 인사말을 주고받다가 더 할 말이 없어서 그만 끊고 싶었는데, 천수가 말했다.

"어디서 만나는데?"
"사당동에서 일곱 시에."


나는 오랜만에 서울로 나들이를 가는 길이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고자 무작정 나섰던 것이다. 그러니 내 오늘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는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갈 수 있으면 갈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알았어, 꼭 갈게"였다.

a 초등학교 졸업 사진

초등학교 졸업 사진

주름살 깊이 파인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이 바로 내가 코 흘릴 적 친구들이란다. 그럼 나도 저렇게 늙었단 말인가. 실감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서 악수를 하는데, 대부분 기억 장치에 입력되어 있는 이름들이었다. 너무 오래 묵은 이름이어서 다소 어색했지만 분명한 그 친구들이었다.

아무튼 친구들과의 만남은 정말 반가웠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그때 그 얼굴의 흔적들을 찾아가며 우리는 유쾌한 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소설집 출판 문제로 만나려던 후배를 사무실에서 3시간이나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온 것도 내 머릿속에서는 하얗게 지워진 채로였다.

a 동창들

동창들 ⓒ 양대윤

우리들은 모두 1961년생들이다. 정말로 보릿고개를 코 흘리며 넘어 다녔던 우리들이었다. 그때 그 기억들을 우리 친구들은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양은 도시락을 석탄 난로 위에 올려놓았다가 점심시간 때마다 비빔밥을 먹었다는 친구의 말에 모두다 고개를 끄덕거렸고, 초겨울이면 솔방울을 따러 학교 앞산으로 줄맞춰 걸어가서 한 가마니씩 등에 메고 돌아왔던 것을 기억한 친구도 있었다.

길가로 코스모스를 심으러 다녔던 기억을 끄집어 낸 사람은 여자 친구 중에 한 사람이었고, 그때 여자 친구 호미를 빼앗아 논에 던졌다는 친구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새마을 운동의 한 축이었던 퇴비 증산 운동 때문에 매일 풀을 베어서 아침마다 그걸 끌고 학교 다녔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친구는 뜻 모를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그러더니 말을 꺼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61년생들의 인생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같이 간다고 말이다.

사일구 때 잉태되어서 오일육 쿠데타 때 태어났고, 그 주인공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우리는 새마을 운동 정신으로 공부하고 살아왔잖아. 그러고는 십이육이 일어났고, 우리는 그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오 공화국을 경험하게 되는 거지. 데모에 참여를 했건 안 했건, 우리의 대학 생활은 곧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증거물인 최루탄과 늘 함께 했잖아. 그러더니 삼십 대가 되어서야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문민정부 아래서……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다.

그 친구의 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그만큼의 침묵을 요구했다.

우리들의 만남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1961년생 소띠, 그러니까 흥왕초등학교 32회 졸업생들은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a 학교 전경

학교 전경 ⓒ 양대윤

그러더니 오늘 엽서가 한 장 내가 사는 산골마을까지 날아왔다. 흥왕초등학교 32회 동창 모임에 관한 초청장이었다. 4월 5일 우리들의 흔적이 있는 모교 운동장에서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재현해보자는 것이 동창회의 취지였다. 50m 릴레이도 하고, 기마전도 하고, 박 터뜨리고 하자는 것이었다.

코흘리개 아이에서 이제는 사십대 중반인 우리들에게 그 시절의 그 모습은 바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노년을 준비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일 것이다. 우리들의 그 때 그 모습 찾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지만, 그 때 그 시정부터 출발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왜 깜박 잊고 살아왔을까. 그 소중한 친구들을 32년만에야 만날 수 있는 것은 나만의 아픔은 아닐 터이다.

벌써부터 4월 5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초등학교 교정에는 내 온전한 과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때 그 교정에서 다시 한 번 그때의 순수함을 느껴보고 싶은 중년의 마음이리라. 그래서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지금 코 흘릴 적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찾고 있는 것이리라.

친구들아 어서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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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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