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가 ‘백성들의 머슴’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96) 안흥면 김종수 면장과의 대화

등록 2005.04.01 01:02수정 2005.04.0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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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은 사람이 만든다


흔히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사람의 앞날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말이다. 정말 2~3년 전만 해도 내가 안흥에서 살 줄 몰랐다. 생면부지의 그곳이 나와 인연이 있었는지 그 새 일년을 살았다.

“어디나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어디나 정붙이기 나름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일찍이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이상향을 말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원래 ‘이상향’은 없고, 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이 ‘이상향’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안흥 장터마을
안흥 장터마을박도
이창진 전 안흥면장은 안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안흥(安興)’은 산수가 빼어나고, 지명 그대로 편안하고 흥겨운 고장이다. 그래서 안흥은‘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이다.

울창한 삼림 속에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고장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알맞다는 해발 500여 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먹을거리도 매우 풍성하여, 안흥찐빵을 비롯한 더덕, 한우 등이 유명하다.

예로부터 안흥은 평창, 대화와 더불어 이름난 장터로,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중간 기착지였다. 안흥 장터 마을은 서울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수많은 길손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들고 가는 길목이었다.


그 무렵 이곳 안흥 장터 밥집들은 하루에 쌀 한 가마 이상 밥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급격히 쇠락해버린 자그마한 고장이지만, 아직도 인심이 좋고 맛깔스런 음식은 그때의 명맥을 잇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최근에는 ‘안흥찐방’이 국민의 찐방으로 사랑받아서 우리 고장이 다시 지난날의 영화를 되찾고 있는 듯하여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안흥의 자연환경은 백두대간의 줄기인 매화산, 백덕산, 푯대봉 등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였고, 주천강과 상안천이 흐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네 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아직도 깊은 산 계곡에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놀고, 금강초롱꽃 원추리가 방긋이 미소 짓는 천연 동식물의 보고이다.



족적을 남기고 싶다

안흥은 지난날 한창 번창할 무렵에는 인구가 일만 안팎이었다는데, 지금은 삼천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면소재지다. 안흥면은 행정상 16개 리(里)로 나눠져 있는 산촌(散村)으로 인구 밀도가 무척 낮다.

안흥의 중심지 장터마을은 ‘관말’ ‘관촌’ ‘역촌’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도 인구 수백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은 고장에 필자가 일년을 쏘다니자 웬만한 고장 사람은 낯이 익게 되었다.

김종수 안흥면장
김종수 안흥면장박도
지난 장날 복지회관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다가 김종수(52) 새 면장과 마주쳤다. 굳이 면장실로 안내하기에 차 한 잔 나누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김 면장은 올 1월 1일에 부임했다. 필자가 이곳에 내려온 뒤 느낀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그 새 많이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지난날의 권위의식과 ‘관(官)’이란 특유의 딱딱함이 사라졌음을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차차로 정착되는 바람직한 변화였다.

지난날 그 높던 관의 문턱을 완전히 낮춰서 다리 하나를 놓는데도 주민공청회를 거쳐서 의견을 수렴한 뒤 시행하고 있었다. 또 면사무소 2층은 주민자치센터로 일과시간 뒤에는 문화의 광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면민들의 체력단련실, 컴퓨터실, 독서실 겸 주민사랑방, 공연실 겸 회의실이 마련돼 있고, 매일 저녁 7시부터는 사물놀이, 서예, 에어로빅, 태권도 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자칫 문화의 사각지대인 농촌사람들에게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

김 면장은 지난날 면장은 중앙의 지시를 하달하는 역할만 잘하면 되었지만, 지금의 면장은 주민의 대변자로 소득 창출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일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면장은 안흥찐방을 더욱 전국적으로 알리는 일과 고랭지농업으로 고소득 창출에 힘쓰는 일(파프리카 단지 조성)과 우리 밀을 재배하여 우리 밀 찐빵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나는 김 면장에게 면장은 일선의 행정 책임자로 가장 중요한 자리라는 걸 새삼 강조하면서, 과거 일선 목민관들의 탐관(貪官)과 오리(汚吏) 때문에 결국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했다. 그러면서 부디 면민을 위한 좋은 면장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안흥면사무소
안흥면사무소박도
김 면장은 “초임 면장으로 족적을 남기고 전재 고개를 넘어 본청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답하면서, 도시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고장을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현재는 법으로는 군수까지는 직선제이지만, 아무튼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일선 행정기관의 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의 큰 발전이다. 앞으로 말만이 아닌, 실제로 공직자가 ‘백성들의 머슴’이 되는 세상이 되도록, 주권자들이 모두 깨어 있어야 우리 나라 풀뿌리 민주주의는 마침내 토착화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쪽수 : 295 쪽 (일부 컬러)
- 책값 : 9,500원

덧붙이는 글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쪽수 : 295 쪽 (일부 컬러)
- 책값 :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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