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조사제도, 법률적 근거 없다"

신원조사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록 2005.04.01 10:02수정 2005.04.0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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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원씨는 초등학교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신규교사를 위한 임용연수까지 받았으나 교사로 임용되기까지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행정심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을 거친 후에야 가능했다. 신원조사 때문이었다.

1996년 발령을 기다리던 차씨에게 해당 교육청은 차씨의 신원조사 결과를 이유로 임용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경찰청에서 보낸 신원조사회보서에는 차씨의 사상관계에 대해 ‘용의점 발견치 못함’, 성질소행 ‘온순 단정한 편임’, 상벌관계 ‘발견치 못함’이라고 하여 특이사항은 없었으나 기타 의견란에 차씨의 남편이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징역 12년 형을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교육청은 남편의 전력을 이유로 “차씨가 간첩(남편)을 수시로 면회할 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한 심증적 동의의 자세를 추정해 볼 때 애국을 가르쳐야 할 교육자로서 역할 기대가 불가하다”며 임용을 거부한 것이다.

차씨는 남편의 전력을 이유로 한 임용 불가 조치가 연좌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교육청은 “신원특이자의 임용에 대해서는 임용권자의 재량권이 인정 된다”며 그 근거로 ‘보안업무규정’을 내세웠다.

규정에 따르면 국가 보안을 위해 공무원임용예정자에 대해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는 신원조사를 실시하고, 신원조사 결과 국가안전보장상 유해로운 정보가 있다면 관계기관의 장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게 돼 있다. 통보를 받은 관계기관의 장은 필요한 보안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교육청은 남편의 복역이라는 차씨의 신원특이사항에 임용불가라는 재량권을 행사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대법원은 차씨가 남편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약화되었다거나 남편의 행위에 동조 혹은 방조했다는 증거자료가 없는 한 임용결격사유가 없기 때문에 임용거부처분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결, 차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위 사례는 신원조사 청문회에서 발표된 사례다. 국가인권위는 신원조사제도의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월 18일 청문회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월 14일 국회의장, 국가정보원장, 행정자치부장관에게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와 청문회 때 발표된 내용을 바탕으로 현행 신원조사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신원조사, 법률적 근거 없어

신원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신원조사 제도 개선방안 마련 청문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송준종 변호사(참여연대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는 “신원조사는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포함하여 포괄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법률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안업무규정 등 대통령령에 근거하고 있어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위헌성을 제기했다.


기본권 제한에 관해 우리 헌법(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서면진술을 통해 신원조사업무가 국가정보원법에 규정된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에 관한 보안업무’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판례 또한 신원조사를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라는 국가정보원의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정희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신원조사는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에 관한 보안업무’에 ‘기밀문서 작성을 위한 정보의 수집’은 포함되지 않으며, 국내보안 정보의 수집 작성 또한 ‘대공, 대테러 등 특정 목적에 한정’된 것이므로 국가정보원법을 신원조사의 법률적 근거라고 볼 수 없다”며 위 주장을 일축했다.

또한 대법원 판례와 관련 송 변호사는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 원칙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법률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식과 정도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여, 누구라도 제한되는 기본권이 무엇이고 어떤 수단에 의해 어느 정도 제한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며 “법률전문가의 해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정도로 간접적이고 막연하게 규정하는 것은 법률에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 충성심, 무엇으로 입증하나!

법치국가에서는 누구나 법률의 취지와 그 효과를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법령의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 만약 법규범의 내용이 불명확하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법규의 적용 대상자가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명확성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보안업무규정(이하 규정) 및 보안업무규정시행규칙(이하 시행규칙)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신원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정보 중 어떠한 것을 수집해야 할까? 일반인들은 개인의 정보 중 어떠한 것을 근거로 삼을 것인지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법규범의 내용이 불명확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규정과 시행규칙은 신원조사 항목에 ▲본인 및 배후사상관계 ▲접촉인물 ▲정당, 사회단체 관계 ▲종교관계 ▲가족관계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배후사상관계, 접촉인물, 종교관계 등은 충성심과 성실성 등을 조사할 수 있는 항목으로 예측하기도 쉽지 않고, 과연 위 항목으로 충성심 등을 판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배후는 어디까지이고, 접촉인물은 어느 정도의 범위로 해야 할 것인지, 그 내용이 매우 넓고 모호하여 조사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송 변호사는 위 항목들이 사생활의 자유 및 사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배후 인물의 사상까지 조사대상으로 한 것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연좌제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밝혔다.

이정희 변호사는 헌법 제20조 제2항이 “종교와 정치는 분리 된다”고 규정한 만큼 종교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종교에 대한 조사는 그 자체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라도 조사할 수 있어

규정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신원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면서 그 대상을 ‘1. 공무원 임용 예정자 2.비밀취급인가 예정자 3. 해외여행을 하고자 하는 자 4. 국가중요시설, 장비 및 자재 등의 관리자와 기타 각급기관의 장이 국가보안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5. 공공단체의 직원과 임원의 임명에 있어서 정부의 승인이나 동의를 요하는 법인의 임원 및 직원 6. 기타 법령이 정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어 시행규칙은 국가정보원장이 행하는 신원조사의 대상을 ‘1. 중앙관서의 4급 이상의 공무원 및 동등한 공무원 임용 예정자 2. 도지사, 부지사 및 서울특별시, 직할시 시장 및 부시장 3. 판사 4. 검사 5. 각급대학교 총장, 학장 및 교수와 부교수 6. 국영 및 정부관리기업체의 중역급 이상의 임원 7. 각급기관의 장이 요청하는 자 및 국가정보원장이 필요로 하는 자’로 정하고 있다.

헌법은 상위법규가 특정사항을 하위법규에 위임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즉 막연히 위임하는 백지위임은 위법이다.

규정은 국가보안을 목적으로 신원조사를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기타 법령이 정하는 자’ 또한 국가보안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로 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행규칙은 신원조사 대상에 ‘판사, 각급대학교 총장·학장 및 교수·부교수, 국공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의 교원’까지 포함하고 있어 국가보안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조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규정에 위임된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또한, 시행규칙은 ‘각급기관장의 요청과 국가정보원장이 필요로 하는 자’에 대해 신원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어, 각급기관의 자의적 요청과 국가정보원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신원조사대상자를 무한정 확대할 수 있다. 이는 백지재위임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이 변호사는 특히 신원조사 대상과 관련하여 해외여행을 하는 자와 입국하는 교포는 일시적 행위를 하는 사람일 뿐이므로, 이들을 다른 공직예정자들과 같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성실성, 신뢰성을 조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은 신원조사에서 제외하여 출입국관리나 테러 예방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은 정보주체가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고 정정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를 부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원조사 대상자는 신원조사를 통해 수집된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거나 설혹 잘못된 정보가 있더라도 정정을 요구할 수 없다. 위 법 제3조 제2항이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 분석을 목적으로 수집 또는 제공·요청되는 개인정보의 보호에 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조사결과 수집된 개인정보는 차정원씨의 사례와 같이 공직에의 취임이나 취업 그리고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발급에 있어 중요한 결정요소가 된다. 그런데도 신원조사 대상자는 자신의 정보에 대하여 열람 및 잘못된 부분의 수정을 요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소명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신원조사 취득 정보 열람권도 보장 안 돼

청문회에서 이정희 변호사는 외국의 신원조사제도를 소개하였다. 미국, 영국은 모든 공직 임용 예정자에 대해 신원조사를 실시하며 이들이 공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하여 성장과정이나 공직수행과정의 문제점 등을 조사한다.

반면 독일은 신원조사 대상을, 비밀을 취급할 사람으로 한정하여 외국 정보기관과의 접촉 여부 등 비밀누설 가능성을 주로 조사한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신원조사 대상에 따라 하위공직자나 3급 비밀 취급자는 기본적인 내용의 단순 신원조사를, 고위공직자나 1급 비밀 취급자는 매우 세밀한 신원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열람권과 진술권을 보장하며, 독일의 경우 신원조사 대상자뿐 아니라 관련자로 조사받은 사람에게도 그 내용을 통보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현행 신원조사 제도가 갖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월 14일 국회의장 및 국가정보원장에게 신원조사의 법률적 근거를 명확히 하되 신원조사 목적에 합당하게 조사대상자와 신원조사 항목을 조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신원조사를 통해 취득된 정보에 대해 열람권 및 정정청구권이 보장되도록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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