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찾아 다니며 그려낸 문학지도

김훈, 박래부가 쓴 문학기행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1, 2권

등록 2005.04.02 14:49수정 2005.04.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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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처음 책으로 묶였다가 97년 <김훈· 박래부 기자의 문학기행>(한국문원)으로 나왔던 글들이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도서출판 따뜻한손)이란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

20년 동안 문학의 현장을 답사하고 작품을 비평한 글들을 모은 이 책은 박경리의 <토지>부터 전경린의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 이르기까지 50개의 시와 소설에 대한 기행이 수록되어 있다.


1997년에 나온 책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당시에는 다루지 않았던 벽초 홍명희, 시인 김지하와 박노해를 추가시키고 작품을 새롭게 수록하고, 조정래의 경우엔 소개작이 <불놀이>에서 <태백산맥>으로 바뀐 고침판이다.

박경리의 '토지', 정지용의 '고향', 김동리의 '무녀도',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 황순원의 '일월', 황석영의 '장길산' 등 한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작품들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사진과 함께 작품해설을 곁들여 놓았다.

a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책 표지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책 표지 ⓒ 안병기

책의 제목이 된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는 본래 이오덕 선생의 책 <일하는 아이들>에 실린 '비료지기'란 글인데 여기에다 민중가요 작곡가 한동헌이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아버지하고
동장네 집에 가서
비료를 지고 오는데
하도 무거워서
눈물이 나왔다.
오다가 쉬는데
아이들이
창교 비료 지고 간다
한다.
내가 제비 보고
제비야,
비료 져다 우리 집에
갖다 다오, 하니
아무 말 안 한다.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나는 슬픈 생각이 났다.

(안동 대곡분교 3년 정창교 / 1970년 6월 13일)



왜 이 동시의 한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빌어다 썼는진 알 수 없지만 무슨 무슨 문학기행이라는 제목보다는 훨씬 서정적으로 다가오긴 한다.

김훈과 박래부가 시작한 '문학기행'은 우리 나라 신문에 문학기행이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문학작품이 탄생한 현장을 찾아가서 작가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줌으로써 문학작품 읽는 재미를 한껏 고양시켜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공동저자인 김훈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헛것들을 걷어내고 삶의 맨살을 찾아낸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고 거기에 자신의 맨발을 들이댄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으며, 맨발이 맨살을 밟는 직감의 내용과 의미를 언어로 전한다는 것은 때때로 거의 불가능했는데, 나하고 박래부는 그 불가능한 길을 향해 앉은뱅이 무릎걸음으로 겨우겨우 기어 나갔다."

사실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사유의 궤적을 따라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문장가인 김훈과 박래부 기자가 함께 써나간 글들은 대단히 섬세하고 유려하다. <토지> 기행의 한 대목이 들여다 보자.

"그 자리에 서 본다. 들판이 훤히 보이고 그 너머로 섬진강이 휘어져 돌아가고 있다. 바람이 스치자 대숲은 <토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듯 신비스러운 소리로 응답한다."

그런가 하면 김승옥의 '무진기행' 편에서는 "음대 출신 여교사가 부르는 그 뽕짝 노래들은,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비천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서로 안심하는 삶의 모습을 깨우쳐주었다"는 소설가의 육성을 직접 전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도 결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의 한 대목을 보자.

"정지용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돌연하고 가장 경쾌한 자세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그 파행의 코스를 질주해나간 경비병이었다."

정지용의 시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쓴 문장으로 보이는 이 대목은 글쓰기에 있어서 지나치게 멋을 부리다 보면 애매모호함이라는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러나 크게 흠잡을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부분을 뒤늦게깨우치는 기쁨이 크다 할 수 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을 읽어 가다보면 마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읽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명작의 무대를 찾아가는 나그네가 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돌아다녀도 무방하지만 사람이야 어디 그런가. 제비한테 일상을 살아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일렁이는 충동을 적당히 삭여가며 책을 읽을 일이다.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

김훈.박래부 지음,
따뜻한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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