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향기가 찾아든 불국사김비아
삼십대에 들어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를 떠밀었던 많은 것들이 이젠 다소 시들해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층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연이다. 인연은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때로는 커다란 숙제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우연한 기회에 국토사랑방 회원님들과 인연이 닿아서 오랜만에 답사 여행을 떠났다. 도시 계획 쪽의 일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옛집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경주 일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예년 같으면 벚꽃이 다 피었을 텐데 아직 꽃 소식이 요원한 3월 마지막 주말, 그래서인지 대구에서 경주까지 가는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았다. 다들 서울서 오시는 분들이라 나는 경주에서 일행과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빠져나가며, 근 한달만의 나들이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3월 내내 나는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버리고 털어버리는 것은 내 특기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 아니 사실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 그래서 꼭 움켜쥐고 있는 것들….
그것들을 고스란히 확인하고는 어찌나 난감하던지. 꽤 많이 걸어온 줄 알았더니만, 훌훌 떠나온 줄 알았더니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구나 싶어서 조금 절망적인 심정이 되기도 했다. 마음 하나 바꾸면 될 것을 그 마음 하나가 천근이라도 되는 듯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앞으로 가야 하는데 자꾸만 뒤돌아보고 있었다.
화창하고 포근한 봄날, 길을 나서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움직이면 에너지도 함께 따라오는 법이니까. 이 물리적인 속도만큼 마음도 힘차게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 차는 어느새 경주에 닿았고 낯익은 기와집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황남동 쌈밥집에서 일행 분들과 합류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점심을 든 후 우리는 교동에 있는 최씨고택으로 향했다. 경주 최씨의 종가인 최씨고택은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전형으로 1700년대에 세워진 집이었다. 12대 무려 300년 동안 부를 누려 최부자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