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경주 남산서 마라톤대회 논란

시민단체, 문화유산 훼손 우려...주최측 "훼손 문제 없다"

등록 2005.04.04 17:52수정 2005.04.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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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에 골프연습장이 불법으로 설치되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 남산'에서 지난해에 이어 대규모 산악 마라톤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제2회 경주남산 산길마라톤대회 코스도
제2회 경주남산 산길마라톤대회 코스도
불국사, 직지사, 동화사, 은해사, 고운사는 한국불교마라톤협의회 주관으로 오는 5월 29일 제2회 경주남산 산길마라톤대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지난 1일부터 5월 13일까지 마라톤대회 신청자를 접수받고 있다.


경주 남산은 불국사·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2000년 12월 ‘경주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등재된 경주 남산에는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노천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다.

경주남산연구소, 경주남산지킴이, 경주환경운동연합, 전교조경주지회 등 10여개 지역시민단체들은 경주남산시민연대를 결성, 지난 1일부터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남산에서 산길마라톤 개최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주남산시민연대는 “남산산길 마라톤 대회 등 각종 훈련을 철회하여 심각하게 상처입은 산림생태계를 보호하고 역사문화유적 답사와 순례의 장소가 되길 바란다”며 “경주 남산에 무분별한 등산로를 폐쇄하고 답사 순례길을 정비하여 동식물의 서식과 생장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월 4일 현재, 남산연구소에서 네티즌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참여자 중 78%가 반대입장을 표명한 반면 찬성은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회 주최측 입장은 다르다. 마라톤 코스가 '남산 순환도로'를 이용하고 있고 수익금은 장애인 휠체어를 제공하는 공익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것.


경주남산산길마라톤대회 사무국 조아무개씨는 “마라톤대회를 반대하는 지역시민단체는 10여 곳인데 반대할 명분도 없으면서 반대를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남산 순환도로로만 마라톤을 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시민단체에서는 행사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마라톤코스에는 개설된 도로는 없고 등산로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제1회 경주남산 산길마라톤대회에서도 2천여 행사 참가자들의 절반 가량만이 애초 행사 주최측이 제시했던 코스로 이동했을 뿐이고 나머지 절반은 문화유산이 산재한 여러 좁은 산길을 통제도 없이 이동, 문화유산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


경주시 사적공원관리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경주남산 '순환도로'는 사실상 폐쇄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통 '순환도로'라고 불리는 곳은 '시(市)도'로 사용되어 왔으나 2002년경 담당부서인 경주시 건설과 도로계에서 용도 폐지를 했다.

건설과 도로계 한 관계자는 "통일전 옆으로 내려오면 포석정까지 어어지는 길이 있지만 비포장도로로 임도 형식과 같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연대는 “대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남산 주변을 이용해 개최해도 되는데 굳이 세계유산을 관통해 진행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현재 남산은 방문자수가 급증해 출입 제한 등 보존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인데 마라톤을 하면 무분별하게 들어가 문화유산, 자연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경주시측에 세계문화유산에서 마라톤대회가 개최되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묻자, 경주시 문화재과 최아무개씨는 “조만간 결재를 받아 경주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은 “세계유산을 보존관리해야 할 지자체에서 행사를 유치해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서 “물론 외부행사도 중요하지만 남산을 자연 속 유적으로 온전히 남겨놓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1회 마라톤대회 때도 시민단체들은 반대운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경주시장과 면담이 이뤄졌는데 당시 시장은 1회 대회만 경주 남산에서 개최하고 올해부터는 장소를 옮기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미 행사 참가자들 모집이 완료된 시점이어서 불가피한 상황임을 감안한 것. 그러나 올해도 세계유산인 남산에서 마라톤 대회가 추진되고 있어 시민단체의 반발이 크다.

그러나 경주시청 기획공보과 박아무개씨는 경주시장의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해 “자기네들(시민단체)이 주장하는 것이고 시장한테 확인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 “(경주남산산길마라톤대회 사무국으로부터) 대회 허가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마라톤대회 주최측 한명록 집행위원장은 "경주시에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고 허가 받을 사항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 집행위원장은 세무서장으로 마라톤대회를 유치하면서 시장 등 관계기관장 회의에서 보고하고 동의하에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주시청 문화재과 시설계 최모씨는 "문화재에서 행사를 할 경우 문화재과를 경유해 문화재청에 허가신청을 해야 한다"면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만 있었지 공식적으로 (신청) 들어온 것은 없다"고 전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오는 15일 열리는 문화재위원회에서 남산산길마라톤대회 개최 문제를 공식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사적과 박아무개씨는 “문화재위원회 개최 직후인 지난 3월 남산산길마라톤대회를 개최하는 불교단체에서 직접 의견을 묻는 문의가 왔다”면서 “오는 15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청의 입장을 최종 정리, 회신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천 박물관' 경주 남산은 어떤 곳?
경주남산 산길마라톤대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경주남산산길마라톤대회 사무국(http://www.buddhamarathon.com)은 홈페이지를 통해 신라 천년고도 경주 남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문화재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경주 남산에는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40여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 미륵골·탑골·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 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나정은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가 깃든 곳이며,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 곳이다. 동남산에는 한국적 아름다움과 자비가 가득한 보리사 석불좌상, 9m 높이의 사면 바위에 탑과 불상 등을 새긴 불무사 부처바위, 바위에 아치형 감실을 파고 앉은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남산에는 미륵골(보리사) 석불좌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칠불암 마애석불을 비롯한 12개의 보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을 비롯한 12개의 사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입골석불, 약수골 마애입상을 비롯한 9개의 지방 유형문화재, 1개의 중요 민속자료가 있다.

유적뿐만 아니라 남산은 자연경관도 뛰어나다.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며, 등산객의 발길만큼이나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 남산을 일등으로 꼽는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남산을 비롯한 경주는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뛰어나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진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됨으로써 일본의 교토, 나라와 같이 남산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한 기자는 문화유산연대 사무처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성한 기자는 문화유산연대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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