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성'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현장] 제3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가다

등록 2005.04.04 18:17수정 2005.04.0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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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 3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 홈페이지. www.420.or.kr/fest

제 3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 홈페이지. www.420.or.kr/fest ⓒ 강이종행

"난 무성(無性)이고 싶지 않아요. 나도 여성으로 살고 싶어요."

한 여성 중증장애인이 더듬더듬 눈물로 호소한다. 그는 성폭행을 당한 뒤 '자궁적출수술'을 강요당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한 주변의 분위기가 강했던 것이다. 이는 장애인 인권 영화 '난 그냥 여성이고 싶다'(감독 김정희, 짐재우, 박성준)의 한 장면이다.

"중증여성장애인은 3중 차별 요소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비장애인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그것도 중증 장애인으로 지내야만 해요. 또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등 2중, 3중으로 차별을 받고 살아요."

한 장애인단체 간사는 이 같이 말한 뒤 "결국 자궁적출수술은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7분 짜리 짧은 다큐멘터리지만 이 영화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는 기본적인 성(性)이 중증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무시되고 이들이 가진 고유한 성을 도려내는 우리 사회를 호소력 있게 비판한다.

4~5일 이틀간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 열려

이 영화는 4일과 5일 이틀간 열리는 제3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www.420.or.kr/fest)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제는 서울 광화문 미디어센터(구 동아일보 사옥) 5층 미디액트에서 열리고 있다.


a '울타리 넓히기'의 주인공 버들씨.

'울타리 넓히기'의 주인공 버들씨. ⓒ 인권영화제 홈페이지

장애인문화공간과 다큐인 공동주최로 개최된 이번 영화제에는 외국작품 2편을 비롯 15편의 극, 다큐 영화가 소개된다. 이번 영화제에는 '난 그냥 여성이고 싶다'와 같이 여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장애인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출품됐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지체·시각·정신지체 등 각 장애유형별로 19명의 여성장애인들이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길은 가면 뒤에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나, 영상 속의 나를 보며 자아를 찾아가는 '난나', 다운증후군 버들씨의 짝사랑을 다룬 '울타리 넓히기' 등이 주목을 받았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감독 이수경)는 '엄마 장애인'들의 고군분투를 여과 없이 그려내고 있다. 여성장애인은 여성과 장애라는 중첩된 차별 속에 이 땅에서 가장 소수자로 살고 있다. 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무게는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영화를 제작한 여성장애인연합 심성은씨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임신한 장애여성들의 출산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병원이 단 한 군데도 없다"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재활원은 장애인을 위한 전문시설인데도 이곳에는 '산부인과' 조차 없다"고 고발했다.

특히 임신한 장애인들이 산부인과를 찾아가면 우선 부담스러워하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고 한다. 심씨는 "산부인과를 가면 당연히 사고로 임신을 했는줄 알고 낙태를 하겠거니 생각한다"며 "임신한 장애인을 위한 의료지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난나'(감독 송은일, 김의자, 지경)는 거울 속에 비친 내게 고백하는 송은일씨를 화면에 담았다.

"(스스로) 벗은 모습을 볼 때, 특히 말을 할 때 장애(인)티가 나요. 그럴 때 모자를 쓰면 가려져요. 그래서 저는 모자를 즐겨요. 모자를 쓰면 남들이 덜 쳐다보는 것 같거든요."

송씨의 독백은 계속된다. "어쩔 수 없이 이 모습이 내 모습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요."

이 영화는 원래 소방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송씨의 하루 일과를 '하루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비장애인 동료직원의 반대로 시나리오가 바뀌었다. 이는 송씨가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힘들었던 장면이라고 한다.

'울타리 넓히기'(감독 황선희)는 다운증후군 버들씨의 아름다운 짝사랑을 엄마 황선희씨가 앵글에 담았다.

"엄마 나 영찬오빠 좋아해요. 그런데 희원이랑만 사랑해요. 나만 빼고요. 엄마 도와주세요."

22세인 버들씨는 아직까지 소녀티를 벗지 못했다. 특히 학교에서 만난 영찬 오빠를 짝사랑하면서 속앓이 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그에게 고백하지만 오빠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딸의 아픈 사랑을 앵글에 담은 황씨는 "예전에는 아이의 '울타리'가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됐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10여년을 옥죄던 우울증을 이겨낸 뒤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소중하게 보였다"고 고백했다.

a 4일 영화 상영뒤 가진 제작진과의 대화 시간.

4일 영화 상영뒤 가진 제작진과의 대화 시간. ⓒ 강이종행

"장애인 여성의 어려움 영화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이날 영화제를 찾은 특수교사 이선희씨는 "현장에서 장애인 여성들의 고민들을 접할 때 안타까웠는데 이번 영화들을 통해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안양고 시민사회단체 탐구 동아리 'NGOE'의 남지현양은 "우리 학교에는 장애인 배려 시설이 전혀 없다"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장애인 인권문제를 간접 경험하고 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영화제에는 '진보적 장애영상활동가 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일 시작한 이번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은 5일 현장촬영과 편집까지 영상활동가로서의 기본자질을 익히게 된다.

덧붙이는 글 | * 제 3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

일시 : 2005년 4월 3일 - 5일
장소 : 미디어센터(구 동화일보 사옥) 5층 미디액트
주최 : 장애인문화공간, 다큐인
주관 :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후원 : 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문의 : www.420.or.kr/fest 또는 02-929-9890

덧붙이는 글 * 제 3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

일시 : 2005년 4월 3일 - 5일
장소 : 미디어센터(구 동화일보 사옥) 5층 미디액트
주최 : 장애인문화공간, 다큐인
주관 :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후원 : 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문의 : www.420.or.kr/fest 또는 02-929-9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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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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