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세 번 정도 간 적이 있다. 대개 여행사를 통해 중국을 여행하면 가이드가 따라붙게 된다. 이 가이드는 조선족인 경우가 많다. 조선족은 조선말도 하고 중국말도 하니, 한국인 방문객의 안내인으로 제격인 셈이다.
두 번째 중국에 갔을 때, 중경에서 지역 가이드가 따라 붙었다. 그런데 이 조선족 출신의 여자 가이드가 사용하는 말이 더 귀에 익숙했다. 아니, 생소하면서도 친숙했다. 다름 아닌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는 조선말이었다.
어떻게 조선족 출신이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할까?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조선족은 북한 출신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북한 말법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족의 말이 북한말과 비슷하다고만 생각해 왔다.
19세기 중엽, 대기근과 폭정을 피해 경상, 전라, 충청, 강원 등지의 유민들이 살길을 찾아 나라밖으로 떠났다. 주로 중국 둥베이[東北] 일대의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지로 나갔다. 나라밖에 가도 자신들의 문화적 습성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고 말이라는 것도 쉽게 변할 수가 없다. 이들은 출신지역의 말을 계속 사용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소설 <토지>에서 간도로 살길을 찾아간 서희와 길상, 용이 일행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지방 토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흔히 생각해보면 알지만 사람들은 옮겨 가서도 지역 사람들끼리 한마을을 이루면서 살았고 지역 토착어는 대개 그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 여자 안내인의 집안은 경상도에서 간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경상도 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말에 경상도 사투리가 잔뜩 배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 웃으며 설명하니 한결 친숙한 모습이었다.
동북 3성의 조선족 출신들이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취업을 빈번하게 하면서 그들은 아련한 민족을 넘어 남한 사회 구성원의 일부분이 되었다. 새 사회 구성원을 반영하는 것은 단연 미디어이고 특히 방송이다. 이러한 드라마, 영화 등을 보자면 공통점이 있다. 극 중 인물로 조선족 출신 처녀나 옌볜 아줌마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방송된 KBS 인기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도 등장했고, 좋은 평가를 받은 SBS <핑구어리>라는 드라마는 아예 조선족 처녀를 중심에 두었다.
드라마 <그대를 알고부터에서>에서는 최진실씨가 조선족 처녀 역할을 하기도 했고, 배두나씨는 연극 무대에서 조선족 처녀 역할을 했다. 조금 있으면 문근영씨가 옌볜 처녀로 등장하는 <댄서의 순정>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다.
이에 연변 처녀들을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상품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일종의 “순수한 여성의 상품화”라는 것이다. 조선족 청년이나 아저씨보다는 아가씨들이 단연 독점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하는 말은 ‘옌볜말’이라고 불린다. 일전에 개그맨 정선희씨가 명세빈씨에게 ‘옌볜말’을 가르치는 교사로 낙점되었다는 사실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옌볜말’이라는 것이 대개 북한말을 흉내내는 선에 머문다. 이는 편협한 인식을 갖게 하고 우리와는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게 한다.
조선족의 말에는 전라도 사투리, 충청도, 혹은 강원,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은 결국 한반도의 토착어가 섞여 있고,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방송, 미디어 혹은 대중문화 속의 ‘옌볜말’은 철저하게 이를 배제하는 것이다.
더구나 ‘옌볜말’이 북한말을 흉내낸다고 했을 때, 평양 중심의 말을 비슷하게 낼뿐이지 황해도, 함경도, 자강도 등지의 말은 외면한다. 북한의 지역 토착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드라마, 영화를 제대로 보기 힘든 것과 같다.
이렇게 지적하면 제작진들은 극중 말의 대표성이 사라진다고 대응한다. 예를 들어 경상도 억양이 들어있으면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편의주의가 문화적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 전라도 억양이 든 ‘옌볜말’이 정확하고 사실적일 수 있다.
문화적 토대의 공유는 추상의 민족개념보다 일상 미시생활, 예를 들어 토착어 등에서 이뤄질 수 있다. 연변 말 안에는 무엇인가가 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민족 문화의 숨결이 토착어 속에 담겨,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 지 짚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KBS 아름다운 통일 기획마당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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