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천 순대골목 순대국집은 모두 원조집?

2만원으로 떠나는 천안 당일여행(3)-아우내장터와 병천순대

등록 2005.04.05 12:07수정 2005.04.0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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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안행 전철 개통으로 성업중인 병천 순대골목

천안행 전철 개통으로 성업중인 병천 순대골목 ⓒ 김정은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혼자라는 건/ 최영미


담배연기 자욱한 시장 통 선술집, 취기 어린 걸걸한 목소리와 쌓여만 가는 술병과 그 앞에 놓인 뽀얀 국물의 순댓국. 내게 있어서 맛있는 순댓국집의 이미지는 언제나 이랬다. 시끌시끌한 시장 통에 있는 허름한 선술집 분위기의 순댓국집말이다.

그런 곳에서 혼자 먹는 순댓국의 맛은 아슬아슬한 스릴감과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뜨겁고 진한 국물의 목넘김이 주는 절묘하고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복잡한 시장통에다가 홀 전체에 순댓국 특유의 누린내가 심하게 배어 있지만 막상 들어가는 순댓국 물은 담백하고 구수할 때 그 놀라움은 배가 되곤 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먹는 순댓국의 맛은 아무래도 허름한 곳에서 느끼는 진한 국물보다는 단정한 분위기의 깔끔한 맛과 푸짐함이 어울린다. 그런 면에서 충남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천안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400번대 병천행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는 병천 아우내 장터 순대골목에는 가족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수많은 순댓국집들이 빼곡하게 늘어서있다.


순댓국, 어느 곳을 들어가도 모두 맛있지유!

a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는 충남집과 청화집,  두집 모두 아우내 장터에서 순대국집을 처음 연 집이다.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는 충남집과 청화집, 두집 모두 아우내 장터에서 순대국집을 처음 연 집이다. ⓒ 김정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 세분도 병천 순대가 유명하다는 소리에 서울에서 전철타고 순댓국 맛을 보시고자 오셨다고 한다. 이 정도이니 천안행 전철 개통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이 병천 순대골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순댓국집 쳐놓고 다양한 방송국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출연했음을 알리는 간판 하나 달리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TV방송프로그램에 이만큼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많은 건지, 아니면 철철 따라 방송국의 취재차가 각 집마다 사이좋게 순번차려 드나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한마디로 이 순대골목 내 순댓국집들은 모두 방송에 출연할 만큼 유명한 집(?)들이다. 이런 곳에서 동네주민에게 원조집이 어디냐, 어디가 제일 맛있는 곳이냐고 질문하는 것조차 어리석고 곤란한 질문일 밖에.

그래도 흔히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나온 곳이라는 자자한 명성과는 차이가 나는 맛과 불친절에 골탕을 먹었던 경험이 많았던 터라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도 맛있는 집을 물어보면 동네주민들은 언제나 꼭 비슷한 현답으로 대답하곤 한다.

"어느 곳을 들어가도 모두 맛있지유. 순댓국 맛이 거기가 거기 아닌감유?"

유관순의 아우내 장, 순대의 병천장

3·1 만세의 횃불이 활활 타올랐던 역사적 현장 아우내 장터, 1919년 3월 1일, 때마침 아우내 장날이라 각지에서 모인 3000여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현병대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꽃다운 나이로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고국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갑남을녀들의 간절한 소원이 하나 되어 독립만세로 타올랐던 곳이다.

지금도 아우내 장은 전통대로 1일, 6일마다 열리고 있지만 아쉽게도 3·1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아우내라는 정겨운 한글 단어보다 병천 순대의 원조라는 한자어 병천장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와 순대, 3·1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이곳에서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는 순댓국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인근 주민들의 말을 빌리면 병천 인근에 돈육을 취급하는 햄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주민들이 잡채대신 야채와 선지가 많이 들어가는 순대를 만들어 먹다가 45년 전 아우내 장날에 몰려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충남집과 청화집이 처음 순댓국집을 열면서부터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우내 장날에만 순댓국집 문을 열었으나 순댓국 맛에 감탄한 장터 손님들의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유명해져 15년 전부터 상시 개점체제로 바뀌었다고.

초창기 아우내 장터 순댓국

a 병천 순대골목집이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안주순대, 한접시에 6000원이다.

병천 순대골목집이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안주순대, 한접시에 6000원이다. ⓒ 김정은

그러고 보니 94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즈음 천안에 출장을 가는 사람들이 꼭 들린다는 필수코스가 바로 천안 호두과자 집과 아우내 장터의 순댓국집이었다. 당시만 해도 아우내 장터 순댓국집으로만 알려졌던 이곳의 순댓국이 양도 많고 가격도 3000원 정도로 저렴하다면서 순댓국의 맛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솔직히 순댓국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잊어버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곳이 병천 순대라는 고유명사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5~6년 전까지만 해도 10여 곳에 불과했던 순댓국집이 급격히 늘어나 순대골목이 형성된 것이다.

지금 이곳의 순댓국과 순대가격은 어느 집을 들어가나 한 결 같이 순댓국 4000원, 안주 순대 6000원이다. 10년 전쯤 3000원이었으니 가격이 그다지 오르지 않은 편으로, 아직까지도 양만큼은 한 그릇 가지고 둘이 먹어도 될 만큼 푸짐하고 저렴하다. 오죽하면 순댓국 속에 들어가 있는 다양한 잡고기들로 이루어진 건더기가 국물보다 많을 정도여서 양 적은 사람은 우선 너무나 푸짐한 양에 질려버릴 정도일까?

4000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뽀얀 국물 맛을 보기 위해 수저를 들었다. 입안을 맴돌던 기름기 없는 담백한 국물 맛이 사라지자 구수한 뒤끝이 머릿속을 맴돈다. 들깨가루와 양념을 넣었다면 느끼기 힘든 특유의 국물 맛이다.

돼지 소창에 여러 야채와 당면과 피가 들어간 순대 자체는 솔직히 찰지고 쫀득한 맛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내 스스로 오랫동안 길거리의 당면순대에 길들여진 탓일까? 그렇지만 순대 말고도 순댓국에 들어간 이름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잡고기들은 순댓국 애호가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순 우리말 아우내의 운명은?

결국 나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배부른 상태에서 순댓국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한 채 순댓국집을 나와 독립기념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있다. 배도 부르고 다음 방문지도 정해진 지금 만족감고 편안함을 느껴야 할 텐데도 유관순 열사의 고장 아우내가 정겨운 한글이름 아우내를 버리고 병천이라는 한자어로 불리게 된 현실에 대해 왠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감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인근에 있는 유관순 열사 유적지를 방문하여 유관순의 아우내를 기억하기보다는 4000원짜리 병천 순댓국 한 그릇에 만족해 하며 제 갈 길을 서둘러 가려할 뿐이다. 순수 우리말 아우내와 한자어 병천이 다른 의미가 아닌 이상 병천 순대도 아우내 순대로 불리어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자어 병천에 밀려 점점 사라지는 순수 우리말 아우내와 유관순의 추억들.

고양이 수염처럼 따사로운 봄 햇살은 아쉬움을 묻고 자꾸만 내 얼굴을 야금야금 간질거리며 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을 가는 버스 안 나는 결국 졸음에 못 이겨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유관순도 아우내도 병천도 고양이 털처럼 부드러운 봄의 향기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장희

덧붙이는 글 | 2만원으로 떠나는 주말 당일여행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2만원으로 떠나는 주말 당일여행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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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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