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면 인생을 배울 수 있어요!

식목일, 열한 명의 아이들과 산에 오르다

등록 2005.04.05 22:51수정 2005.04.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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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봉화선에서-멀리 백운산이 보인다

봉화선에서-멀리 백운산이 보인다 ⓒ 안준철

산에 다녀오자마자 한숨 잤네요. 잠에서 깨어나자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어요. 잠이 덜 깬 상태라 그런지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들이 현실인지 꿈이었는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어요. 그만큼 여러분과 함께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가 봐요.

사실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산에 가고 싶은 것이 오랜 소원이었어요. 무슨 소원씩이나?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정말이에요. 그 소원을 오늘에야 이루었으니 정신이 오락가락할 만하네요. 아무튼 선생님의 소원을 풀어준 11명의 친구들, 고맙습니다. 다음번엔 고마운 친구들이 더 많았으면 하고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여러분과 함께 산에 가고 싶었을까요? 그것을 소원이라고 말할 만큼 마음이 간절했을까요? 아마도 요즘 여러분들이 산과 자연을 너무 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루만이라도 딱딱한 교실에서 벗어나 맑고 확 트인 대 자연 속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좁아져버린 여러분의 세계를 넓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그런 이유들과 함께 여러분이 평생지기로 사귀어볼만한 좋은 친구를 하나 소개해주고 싶었어요. 물론 그 멋진 친구의 이름은 ‘산’이지요.

a 봉화산 정상에서

봉화산 정상에서 ⓒ 안준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네요. 언젠가 수업시간에 고통(pain)이란 단어를 설명했던 적이 있었지요. 진정한 행복은 고통이 따른다는 그런 얘기를 산모의 극심한 통증을 예로 들어 말해주었지요. 물론 그 고통 뒤에 얻은 소중한 생명에 대한 얘기도 함께. 늘 즐겁기만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도 해주었지요.

힘들지만 열심히 공부한 뒤에 얻게 되는 보람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겠네요. 인생이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여러분이 다녀온 산이 딱 그래요. 그러니까 산에 가면 인생을 배울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 주는 큰 스승이 바로 산이지요.

처음에 산에 가자고 하니까 다들 싫다고 했어요. 어떤 친구는 아빠한테 속아서 산에 갔다가 죽을 고생만 했다고 하면서 괜히 선생님한테 눈을 부릅뜨기도 했지요. 알고 보니 처음 오른 산으로는 꽤 높은 산이었어요. 그곳은 우리가 가을 무렵에 가게 될 산인데 그렇다고 미리 겁먹지는 마세요. 오늘처럼 비교적 오르기 쉬운 산을 여러 차례 부지런히 오르다보면 어렵지 않게 정상까지 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무엇이든지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a 산에 핀 꽃

산에 핀 꽃 ⓒ 안준철

올해 우리 반 급훈이 ‘우리는 아름답다’지요. 좀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하나의 실천적 선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좀 어려운 말인가요?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가진 미스코리아도 아름답지만, 누구보다도 ‘나’의 아름다움을 선언하자는 것이었어요. 35명의 ‘나’가 모여 ‘우리’되는 거고요.


이 세상에 생명 만큼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도 보았을 거예요. 갓난아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것이 바로 생명의 아름다움이에요.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지요. 그래서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지요.

a 산을 내려오는 아이들

산을 내려오는 아이들 ⓒ 안준철

사람은 누구나 다 아름다움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이제 그 아름다움을 더욱 가꾸고 발전시키면 돼요. 금잔에 쓰레기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러분의 고귀한 생명의 그릇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삶을 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을 도서관에 끌고 가다시피 해서 책을 권해주고 산에 가자고 졸라댄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지요.

산을 내려오면서 산에 핀 꽃들을 보았지요. 여러분은 그냥 지나치고 말던데 선생님은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바라보았어요. 특히 산이나 들에 핀 꽃들은 허리를 숙이고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드러내지요. 그런 점은 사람도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수업시간마다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을 맞추는 것인지도 몰라요. 참, 여러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요?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오늘 산을 내려와 골목에선가 잠깐 쉬면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러분을 보았지요. 잠깐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조금 늦게 내려온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와 함께 산을 오르신 고현정 부담임 선생님께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저 아이들이 꽃이네요. 이 세상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오늘 반성문을 써야할 친구들이 있어요. 산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쓰레기가 놓여 있었지요. 그곳에 버린 쓰레기들은 모두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린 것인데 딱 하나가 그냥 검은 비닐에 담아 버린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여러분 중 누군가가 산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버린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잘 몰라서 한 일이었으니까 큰 잘못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지요.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여러분이 버린 쓰레기를 다시 가져가려는데 누군가 그냥 놓고 가자고 말했지요. 검은 비닐에 담아 버린 사람도 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어요. 선생님도 눈 딱 감고 그럴까 했어요. 왜냐하면 그 쓰레기를 집까지 가져가 집에 있는 규격 봉투에 담아 버릴 것을 생각하니 조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a 후프돌리기 우승자의 여유 있는 모습

후프돌리기 우승자의 여유 있는 모습 ⓒ 안준철

다행히도 선생님은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어요. 그러고 나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만약 그때 조금 귀찮다는 생각에 그곳에 쓰레기를 두고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앞으로 여러분에게 바른 시민의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을까요?

어떤 지식은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나 의미가 없는 것들이 있어요. 자연보호나 환경보호와 관련된 지식들도 그런 지식에 속하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도 사람들이 배운 대로 실천하지 않아서 엄청난 재앙을 눈앞에 두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반성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지요. 오늘 전국적으로 산불이 크게 나고 우리가 오른 봉화산에서도 산불이 났는데(그 바람에 처음으로 119에 전화를 했지요) 그것도 작은 실천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요. 답장은 산에 다녀온 소감을 곁들여서 보내주세요. 어떤 경험을 하고 글을 써보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참 중요해요. 귀찮다는 생각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보세요. 지금 선생님처럼… 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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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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