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사람이 좋아 자연이 좋아 이 길을 달리겠다는 최장식씨.박상건
이런 오지를 배달하다보니 사고도 많았다. 96년 신작로 공사 중이던 트럭에 받혀 골짜기로 데굴데굴 굴러 큰 사고를 당했던 것. 이 사고로 그이는 무릎수술을 받았고 쇠파이프를 다리에 박았다. 그래서 지금껏 한 쪽 다리를 절고 있고 다리를 구부리지 못한다. 그 후 얼마가 지나서 그이는 다시 사고를 당했다. 이번에는 꽁꽁 얼어붙은 산길에서 오토바이가 쭈르르 미끄러져 발목을 다친 것이다.
지금도 배달 후에는 집에서 매일 뜸을 떠서 침을 맞는다고 했다. 수술을 하라는 주위의 권고도 있었지만 지리산 서북부 지역은 아무나 배달할 수 없는 험난한 지역이다. 그래서 자신으로 인해 업무의 공백이 생길 경우 다른 동료들이 고생할 것을 염려해 이도 그만 포기하고 만 것이다.
사고는 꼬불꼬불한 길가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데없이 개가 달려들어 허벅지를 물어뜯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 자연이 좋아서 평생 한 길을 달리고 있다는 그이.
“교통이 많이 불편해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봐요. 공기 맑고 물 맑은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심성이 곱지요. 정들면 다 이웃이라고 하잖아요?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얼굴들을 보면 하루 피곤함이 싸악 가거든요.”
동료 집배원과 마을 사람들이 출판기념회 열어 줘
대선이다 총선이다 해서 선거철이 끝나면 다시 농협장 선거가 닥쳐 유난히 선거 관련 우편물이 많고 그 우편물이 오지 집배원들의 짐받이의 하중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철이 좀 지나는가 싶으면 이제는 우편물의 거의를 광고물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란다. 연필심에 침 발라 꾹꾹 눌러쓰던 그런 편지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못내 안타깝다는 최장식씨.
그래도 매일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마주치는 지리산의 풀이며 나무들이 버거운 삶을 위안해주곤 한단다.
“저 작은 풀꽃 하나를 보아도 남이 알아주든 말든 세상에 제 몸을 맡기고 당당히 자기 세상을 꽃피어 가잖습니까? 청솔가지 꺾어 아궁이 물 불 지피며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저 또한 조급함을 털며 사는 풀 한포기 심정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편지를 기다릴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에 빠져 살던 그이는 이 지역에 사는 한 시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시인이 건네준 <지리산 문학> 동인지 한권을 받아들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94년 <문예한국>으로 정식 등단했고 지금은 이 문학동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시에 푹 빠져 들면서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논두렁에서 먼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상을 떠올리다가 그만 달리던 오토바이와 함께 논두렁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렇게 시상에 빠져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편지를 다른 집에 배달하기도 했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그이. 그렇게 시를 따라 다니는 길 집배원에게 첫 시집이 태어났다. ‘나의 물음표’라는 시집이었다. 우체국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경사났다면서 출판 기념회를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