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가 엇갈리는 배당금액 표지판.나영준
점심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에서 그는 반주부터 시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전날인 토요일에 20여만원 이상을 잃었는데 만회가 안 된다는 게다. 작은 '구멍가게'를 경영한다는 그의 벌이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경마나 경륜이 레저 스포츠라는데, 직접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묻자 비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레저? 웃기지도 않아서. 레저는 무슨. 저게 다 국가에서 하는 하우스(노름방)지. 마사회가 바지사장이고 카드회사가 꽁지(노름 뒷돈을 대는 이)라니까. 호구(돈을 잃는 사람)는 나 같은 놈들이지. 하긴 알면서 하는 놈들도 ××이지만."
그는 독설을 담배연기에 섞어 내뱉었다. 오후에도 계속 할 것인가를 묻자 대뜸 경기도 부천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답한다. '종목'을 바꾼다는 것이다.
부천 경륜(競輪) 실외발권소. 부천 역사와 연결 된 건물에 자리한 경륜발권소는 경마발권소 보다는 다소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그 곳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역시 40~50대의 중장년층 남성이었다.
"경륜이 경마보다 안전하기는 하지. 대끼리(유력 우승 후보)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편이거든. 거기에 비해 경마는 알 수가 없어요. 사람이 아닌 말이라 꼭 들어올 놈이 갑자기 미친 척을 하니까. 암만 공부해봐야 도로 아미타불이야."
| | | '병주고 약주는' UCan 센터? | | | [인터뷰] 도박 중독 치료 및 재활지원소 정호승 소장 | | | |
| | | ⓒ나영준 | "유캔센터는 경마뿐 아니라 다른 많은 도박 중독자들의 재활과 치료를 맡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외의 도박 관련 연구도 함께 하고 있고요."
98년 개원해 현재 분당, 용산, 과천에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중독치료센터다. 과천 경마공원의 담벼락에도 유캔센터를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정호송 소장은 마사회 부설 기관이기 때문에 '병 주고 약 주고' 한다는 식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비록 그렇긴 해도 중독자들을 위해 치료는 물론 재활, 직업훈련, 직업 알선까지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본인뿐 아니라 그 직계가족의 정신과 치료까지 부담하고 이 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들은 입원까지도 전부 무료로 진행 됩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1일 평균 4~5명 선. 이들 대부분은 타인의 권유로 이 곳을 찾는다. 작년의 경우 1157명이 이곳을 찾았고, 올해는 1~3월까지 작년보다 2.5배 늘어난 수가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치료효과에 대해 묻자, 아무래도 정신과적인 치료이기 때문에 단 칼에 무 자르듯 ‘완치됐다’고 말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고 한다. 다만 추후에 다시 하게 되더라도 이전과 같이 '목숨 걸고' 하기 보다는 레포츠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정 소장은 치료를 받는 이들도 "끊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받아들여 줄 것을 주문했다.
분당 센터 Tel: 080-815-1190, 031-622-5999
용산 센터 Tel: 080-342-0200, 02-3781-3535
과천 센터 Tel: 02-509-2011 / 나영준 | | | | |
경륜은 사람이 직접 페달을 밟으니 큰 변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선지 배당율이 경마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임씨도 이번에는 비교적 결과를 맞추는 편이었지만 환급받은 금액은 건 돈의 1.2배 에서 2배를 넘지 않았다. 자신이 건 우승후보가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과 그럼에도 높은 배당이 터져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동전의 양면일 뿐이었다.
자전거 바큇살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많은 고성과 환희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풍경은 경마장과 다르지 않았다. 혹시나 남들이 버린 경주권에 결승 번호가 적혀 있지는 않은지 일일이 바닥에 떨어진 번호를 맞추어 보는 이들의 모습까지도.
임씨는 그 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경마장과 경륜장을 드나들며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모두들 말밥(경마장에 간다는 은어)을 준 지 10년 이상 됐다는 중년 남성들이다.
"이기 다 조작인기라. 아까 그 ×× 갑자기 페달 안 밟는 거 봤지?"
"맞어. 경마는 어떻고. 결승선 앞두고 잘 달리던 놈에게 갑자기 채찍질을 안 한 다니까. 신문에 난 것만 해도 어디 한 두 번이야?"
그들은 모두 확실한 심증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냐고 하자 한발씩 물러난다.
"그걸 말해야 아나? 딱 보면 알지."
지난 2001년 민주당 박용호 의원이 낸 정책 자료에 따르면 서울마케팅리서치사가 성인남녀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경마에 관한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경마를 도박으로 인식하고, 동시에 조사대상의 91%가 '승부조작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하는 등 마사회에 대한 비(非)호감도가 9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 됐다. 막연한 의심이긴 했지만 그들이 '특별한' 일부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