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허무는 '선진통상국가'의 명암

취약부문 피폐화·양극화 심화 우려... 선진국 모색 전기 될까

등록 2005.04.07 15:59수정 2005.04.0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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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업무보고를 듣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업무보고를 듣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정부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 '선진통상국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선진국 도약을 위한 개방형 경제인 이 모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양극화 가속과 자본의 국외 유출, 다국적 투기자본의 횡행 등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방 속도 조절과 사회 안전망 확보 등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중한 전략적 접근 없이 성급하게 개방일정을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위기요인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두개로 쪼개질 수 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경제 개방에 따른 양극화로 인해 우리 사회가 두개로 쪼개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홍콩의 경우 서구화된 빌딩이 들어차 있고 영어를 쓰는 사회가 있는데 반해 한 블록만 건너면 빈민층이 사는 곳이 나온다"며 "우리가 추진하려고 하는 선진통상국가 전략에 따르면 경쟁력없는 분야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후속조치가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또 "이번 안은 전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들자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하려면 기존에 지정된 경제자유구역을 운영해보고 부작용이라든지 그 결과를 분석하고 연구해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서두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도 경제개방 전략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개방에 따른 위기요인에 대한 우려를 내놓았다.


유 본부장은 "우리 경제의 수출입 규모가 세계 12위이고 외환보유고도 4위인 상황에서 개방은 불가피한 전략"이라며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 구조를 볼 때 제조업을 포함해 서비스업 등 모든 부분을 개방해 세계경제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개방속도 조절과 사회안전망 확보가 관건


그러나 유 본부장은 "단기적으로는 산업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 우리 경제에 충격이 올 수 있다"며 "실업문제, 사회적 갈등 등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개방 속도 조절과 사회안전망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방전략이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남미의 경우 개방전략으로 인해 자본의 국외 유출이 일어나고 자국 경제는 다국적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면서 실패했다"며 "때문에 외국 자본이 들어오게하고 국내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경제, 정치 전반의 인프라 구축이 먼저 해결돼야하는데 지금은 준비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업분야 '전략적 스케줄론' 대두

특히 피해의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과 노동 분야에서는 걱정과 부담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물론 개방에 따른 도약의 기회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국익에 도움이 되는 개방으로 재편 전략을 짜자는 주장이 강했다.

먼저 농업분야의 경우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전략적인 접근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서진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어차피 개방이 될 것이라면 농업 부분에 득이 되는 전략을 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신중한 접근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의 요청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농업전반을 따져봤을 때 핵심 품목에 해당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개방을 하면서도, 당장 경쟁력이 확보된 품목은 과감하게 경쟁해 보자는 것이다. 일종의 '전략적 스케줄론'을 강조한 것이다. '급소 공격'은 방어하면서 개방을 추진한다면 농업부문과 비농업 부분의 상생이 가능하다고 서 박사는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스케줄이 마련되지 않은 급작스런 개방일정이 추진된다면 어려움은 불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노동부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방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원칙적인 반대는 정부나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원칙없는 개방이 지니는 한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정부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는 이미 철저히 개방돼 있는 상태"라고 규정하면서 "개방반대라는 원칙적인 반대목소리는 전혀 대안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분야, '글로벌 스탠더드의 공평한 적용' 이뤄져야

문제는 개방에 따른 글로벌 스탠더드의 공평한 적용이다. 허 대표는 정부가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미 개방된 상태에서 유독 노동자에게만 반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자본엔 글로벌 스탠더드를 노동에 한국적 스탠더드를 적용하며 차별적 잣대를 갖다대는 정부의 태도가 개방반대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 대표는 "이미 개방이 된 상태에서 어떻게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소득을 보장하며, 필요한 과세를 할 것인가가 남은 과제"라고 했다. 개방에 따른 유연성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임금과 보상, 해외자본에 대한 적절한 과세 등이 뒤따라야 선진통상국가 추진의 명분이 확보된다는 의미다.

개방 통해 국가의 질적 업그레이드 모색
정부의 '선진통상국가 모델'은 무엇인가

정부가 발표한 '선진통상국가' 모델은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영국, 일본, 미국, 싱가포르 등 7개 국가를 벤치마킹해 만들어 냈다. 이 모델은 한마디로 국민국가경제의 외벽을 허물고 개방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일 제4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선진통상국가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노동·금융·경쟁 등 각 부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춘다 ▲적극적 해외투자와 외국인투자유치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킹을 구축한다 ▲강한 서비스산업과 부품·소재산업을 보유하고 IT 등 미래성장산업에 집중투자 한다 ▲개방친화적 인프라가 형성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가지 주된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가기로 결론을 냈다. 국내 제도와 관행의 국제표준화(재경부), 글로벌 네트워킹의 촉진(산자부), 개방친화적인 사회인프라 구축(농림부)이 그것이다. 개방을 통해 한국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꾀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관행의 국제표준화를 위해 정부는 금융·경쟁·노동·외환 부문에 있어 글로벌 기준을 보다 더 분명히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금융 부문에 있어 규제완화, 경재부문의 카르텔 억제, 노동부문의 유연성 제고, 외환부문의 유출억제 완화 등이 핵심 정책이다.

글로벌 네트워킹의 촉진면에 있어서도 정부는 국경의 벽 허물기를 기조의 중심에 놓고 있다. 국적기업의 다국적 기업화를 측면 지원하고 국내기업과 해외진출기업간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 부품·소재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편입을 지원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를 통해 최소한 2010년까지 중소기업 100개를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 반면, 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개방친화적인 사회인프라 구축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농업부문에 대한 배려도 담겨있다. 물론 배려의 가운데에는 사회적 안정망(Social safety)이 자리잡고 있다. 실업수당, 의료보험, 교육비 지원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개방에 따른 피해계층을 정부가 직접 보호하겠다는 방침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방이 몰고 올 부작용과 피해를 미리 전제하고 뒤에서 '서포트'하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처럼 개방형 경제를 차세대 국가발전모델로 선정한 배경에는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아젠다가 불분명하게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선진국 도약을 위한 한계를 직접 목도하면서 새 도약모델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남미국가처럼 도중하차하는 전철을 밟을 지도 모른다는 다급함이 개방을 서두르게 한 이유가 됐다.

정부의 말을 빌리자면 "성장잠재력의 위축, 선진국형 경제문제의 등장, 이해갈등의 확산 등 선진화 과정의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에 선진통상국가 구축을 서두르게 된 이유라는 것. 뿐만 아니라 대외개방과 대내개혁이 밀접히 연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가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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