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에서 겨울나는 어미소. 이제 그도 밭이랑을 갈며 농부들과 봄의 세상을 만끽할 것이다.박상건
그가 시집왔던 시기에는 뭍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 속에서만 그릴 정도로 교류가 드물었다. 뭍으로 나가는 배편이 막히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었다. 교육자였던 필자의 부친도 이곳 청산도 분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 25년 전의 일이다. 외딴 섬 청산도는 목포를 거쳐 완도로 가던 배가 일주일에 한 차례 거쳐 가던 섬이었다. 그 시절엔 이 항로에서 고래떼를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47년 마도로스가 전해준 외딴 섬 사람들의 애환
| | |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 | | | 해상국립공원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1981년 12월 23일 전남지역 바다와 섬을 중심으로 지정된 전라도 지역의 국립공원을 일컫는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부터 거문도, 나로도, 완도, 보길도, 진도, 도초도, 비금도, 흑산도, 홍도 등 160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크게 8개 지구로 나뉘는데, 흑산·홍도, 비금·도초도, 만재도, 조도, 소안·청산도, 거문·백도, 나로도, 금오도 지구 등이다.
청산도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의 하나다. 청산도는 오랜 해식으로 기암괴석이 발달한 해안지형과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난대성 식물이 무성한 경관을 이루고 손꼽히는 어장으로 대표적인 다도해이다. 신라시대에는 장보고가, 고려시대에는 신안과 함께 송나라, 원나라와 해상무역을 하던 중심 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이순신이 진을 설치하고 왜적을 격파했던 요충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 | | | |
47년째 배로 이 외딴섬 주위를 운행 중이라는 이정남 철부선 선장은 “당시에는 기상특보나 기상예보도 없었고 낡은 목선을 타고 그저 바다에 운명을 맡긴 채로 운항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새벽에 완도항을 출발해 오로지 감으로 파도를 헤쳐 모도, 소안도, 청산도, 넙도 등 외딴 섬들을 모두 거치고 나면 11시간 만인 밤에 목포에 당도했다”며 “하루에 목선 한척이 육지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탓에 모든 섬을 다 거쳐야 했고 섬사람들은 가능한 많은 보따리를 들고 승선해 정원의 2배가 넘는 200명 정도가 타면 배 하중에 무리가 따라 목숨을 건 항해를 해야 했다”고 전했다.
지금은 완도항에서 45분 만에 닿는 뱃길 20km 해상에 떠 있는 섬 청산도. 세월과 함께 주민들의 생활도 많이 변했다. 썰물이면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아 팔 수 있으며 밀물 때는 밭과 논일을 하며 농사와 바다 농사를 겸한다. 그 덕에 힘들었던 시대를 잊을 수 있어 다행이란다. 밭에서 만난 70세의 아낙은 낙천주의적 성격 탓인지 미소가 아름다워 보였다. 쓰디쓴 세월은 서편제 가락으로 녹이고 부서지는 파도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어쨌든 푸른 보리밭에서 만난 봄 햇살은 봄바람과 함께 아낙의 주름살 위로 스쳐 지나갔다. 보리밭길에는 곰부레라는 들꽃이 밭두렁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겨울을 뚫고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곰부레 들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고 병아리를 키우면서 설사를 할 경우 이를 삶아서 먹이면 멎는다고 했다.
푸른 보리밭에서 섬 아낙이 들려준 섬 생활
갑자기 김을 매는 아낙의 위로 꿩 한 마리가 파~다~닥 나래를 털며 날아갔다. 그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청산도 앞바다는 한 폭의 수채화였다. 청산도 관문 도청항 등대 주위로 어선들이 똑딱이고 있었다. 어선을 따라 갈매기 떼들도 동행했다. 등대 주위로는 각종 양식장임을 일러주는 색색의 부표와 깃발이 나부꼈다. 이 방파제 등대는 청산도 사람들의 삶의 등불이다.
특히 1960년대에는 어업전진기지로서, 그리고 70년대에는 고등어와 삼치 파시가 열리던 황금어장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 물량에 비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철따라 멸치, 갈치어장이 형성되고, 바다를 이용한 공동양식장에선 소라, 전복,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한다. 그런 어부들이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오는 곳, 거센 비바람이 불면 정박의 닻을 내리던 삶의 기항지이다.
지금도 항구에는 위판장 건물이 있고 이들 어선에서 바로 구입해 파는 활어 횟집과 어부들과 나그네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다방이 바다 쪽으로 창을 내고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다방에 들어서자 잠옷 차림의 아가씨가 나와 나그네 일행을 맞을 정도로 오고 가는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이 도드라져 청산도 사람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어느 다방을 가나 동양화 몇 점과 풍란 몇 그루, 수석 몇 점을 기본 장식품으로 내 놓고 있을 정도로 남도인의 예술적인 정서도 읽을 수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섬과 바다의 풍경
항구에서 언덕배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읍리에 고인돌이 있다. 청동기 시대 유물로 60년대 중반 이곳에서 석검이 발견되기도 했다. 바닷가 쪽으로 조금 더 나가면 당리인데 음력 정월 초사흘에는 마을의 안녕과 만선의 꿈을 비는 풍어제를 올리는 마을이다. 다시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신흥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신흥해변은 도청리 선착장 반대편에 있다.
맑고 푸른 청산도 바닷물 색깔을 가장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바닷물이 바로 넘쳐 오를 것만 같다. 낮은 도로가 바다에 딱 붙어 길과 출렁이는 파도가 살결을 맞대고 있다. 파도가 나그네 옷깃을 잡아끈다. 그만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백사장 또한 부드러운 모래로 2Km를 이어 달린다. 밀물 때는 갯바위에서 모래무지, 도다리, 우럭, 농어, 감성돔 등을 낚을 수 있고, 썰물에는 여러 조개와 바지락 등을 캘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변에는 해송이 방풍림을 이룬다.
청산도 들판은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꼬불꼬불 들길이 유난히 많다. 그 언덕 아래는 돌담길을 따라 울긋불긋 이국적인 마을 지붕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어선다. 그런 풍경을 하고 있는 섬모롱이 한 굽이를 넘어가다 보니 갯 돌밭 해변인 진산해수욕장이다. 청산도의 해안선에 산재해 있는 7개소의 갯 돌밭 중 가장 고운 갯돌이 있는 곳이다. 폐교가 된 분교 운동장은 수련회, 단체야영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변 서쪽 계곡은 해안선과 잘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