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암 원경안병기
풀들의 푸르름이 들판을 적시고, 들판의 푸르름이 마음을 적시는 봄이다. 나는 여경암으로 가기 위해 무수동 마을로 접어들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 근심 없는 마을이 있으랴마는 제 스스로 근심이 없다는 걸 일부러 들쑤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 들머리에서 마주치는 쑥이며, 냉이 같은 봄나물 등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논두렁 밭두렁 할 것 없이 나물 캐는 아주머니들의 손길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어느 시인은 이런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낸다면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까봐 차마 못 따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시인이란 존재는 지나치게 수심이 많은 사람이다.
산길을 올라간다. 멀리서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다. 뭉게구름은 일단 산기슭에 제 몸을 부린 다음 서서히 자신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먼저 하늘에다 제 존재를 확장시키고 그 다음 사람의 마음에까지 확산시킨다.
나도 한때 저 뭉게구름에 미쳐서, 저 뭉게구름이 자극하는 역마살에 들떠서 떠돈 적이 있다. 봄날 산길은 유쾌하다. 공연히 생강나무 노란 꽃 한 송이에도 막 파릇파릇해진 인동초 한 잎에도 말을 걸고 싶어진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는 산길
오랜만에 나 자신에게도 말을 건다.
"넌 그 나이에도 아직 봄날이 슬프니?"
"응. 봄날엔 모든 것이 아득해 보이거든. 그래서 슬퍼."
"아득하다는 것이 뭐지?"
"음. 아득하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지. 가령 네가 아득하게 느껴지면 난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거지. 누가 아무리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도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거든."
"좀 어렵네. 그럼 아득하다는 것은 거리의 문제인가?"
"아니지. 그건 거리의 가깝고 먼 것이 아니야. 정말 사랑하게 되면 바짝 곁에 있어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법이거든."
"그렇구나. 네가 산을 자주 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아."
나이가 들수록 아득할 정도로 그리운 것이 드물어진다. 일상은 살갗이 두껍다. 그 어떤 아득함, 절실한 그리움이 꼬집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산에 오르다 보면 어느새 시시했던 일상마저 아득해지고 그리워진다. 여경암에 가까워졌나 보다.
절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인 여경암은 본디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이 선친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었으나 나중에는 그의 후손들과 후학의 교육장소로 활용되어 왔다.
여경암의 뒤편에는 산신각이 있고 그 앞으로는 서당 건물로 사용되었던 거업재가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경암, 거업재, 산신당을 하나로 묶어서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주자(朱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사마온(司馬溫)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자손과 제자들을 가르치려고 건물을 짓고 여경사(餘慶寺)라 이름 붙였는데 여경암이란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