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파먹고 살다

등록 2005.04.12 18:37수정 2005.04.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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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학번인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우리나라 문학계에는 80년대를 비판적으로 기술하는 운동권 출신의 작가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련도 무너진 지 조금 되었을 때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 ‘민주화 운동’의 성과물을 성급히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던 때다.


그 작가들 중에는 나이가 들어 잔치가 끝났다는 이도 있었고, 시장 어물전 좌판 위에 배가 갈려 올라온 고등어에 빗대어 80년대 청춘의 열정이 이제는 아프고 애처롭다던 작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생이 되어 한참 사회과학에 열중이던 내게는 그런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고 할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고나 할까… 나는 그런 류의 문학작품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고 대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을 ‘좌판 고등어 장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신화’라고만 전해들은 80년대 학번의 투쟁에 경외심을 갖고 있었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들이 경험한 변화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던 때문일 게다.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없이 수많은 현장에 투신한 사람들 중에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지키는 이들이나 한국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이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 쓴맛을 보게 하는 그런 문학이 아마도 당시의 내게는 떫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기성세대와 동화되어 가는 80년대 선배들을 비난했던 나도 벌써 서른이 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의 의지를 그대로 관철하기는커녕 운동이라는 삶을 포기하고,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으며 짧은 직장생활도 경험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여러 ‘타협’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적당히 세태에 찌든 그런 삶을 살았다면 그리 사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 하다.

나의 학창 시절, 아니 우리의 학창 시절을 세미나와 토론, 집회와 여러 실천으로 보냈던 그 ‘우리’라는 존재는 이젠 과거의 것일 뿐이다. 당시 그렇게 열심이었던 선후배들도 제각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오늘의 삶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무게에 짓눌려 버거워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당시에 원활히 교류되었던 고민의 소통은 점점이 끊어졌고, ‘시대정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느덧 가족과 자신의 생활에 대한 갈등으로 천천히 바뀌었던 것 같다. 뭐, 어쩔 수 있으랴….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바로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들은 무정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렇게 ‘평범’한 사람으로 부지불식간에 변해버린 것 같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삶이 바로 그러한 꾸준하고도 ‘평범한 삶’일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 어떤 위인의 삶보다 힘들고 어려우며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는다.


학생 때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대학시절에 실천했던 그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적지않게 보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끝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못내 손을 들고 말았던 것을, 학교로 우리들을 찾아오지 않게 되고 갑자기 변화한 그들의 생각과 모습에 낯설어하던 일들을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개인에게 그런 큰 무게로 다가오는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386세대의 변화를 바라보며 보다 준비된 사회진출이 나와 우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있었을 뿐. 그러나 그런 준비된 사회진출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미래 앞에 ‘우리’는 항상 ‘개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면서도 그것을 포기하는 그런 아이러니라 할까.

21세기가 된 지금, 내 모교에는 그렇게 ‘활동’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후배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첨예하게 자리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학생운동뿐만이 아닌 전체 운동의 패퇴를 이루어 놓았으니 뭐 색다른 일도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의 속도를 항상 인지하고 있지 않고, 어느 순간 그것을 체감하게 되고, 변화한 대학이나 이 한국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시간은 흘러가니까.

나 자신 역시 그리 떳떳한 사람이 아니다. 짧은 직장생활 동안에 수없이 타협했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것만 빼놓고 거의 안 해본 일이 없는 듯하다. 회사라는 막강한 조직이 강요하기도 했지만, 그 회사에 충실히 복무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별다른 망설임없이 수행했던 것을 옛날의 내 자신이 바라보았다면 날세운 비판을 줄줄이 쏟아내었을 것이다.

10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예전 선후배들의 소식을 가끔 접하게 된다.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평범함의 어려움과 소중함은 아마 나보다도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아무 하는 일 없는 나는 그들보다 노력도 부족하고 세상의 무게도 잘 알지 못하는 벌거숭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자신이 선택하고 열정과 시간을 들여 걸어갔던 그 시기를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현실이 다른 만큼, 가끔 어울려서 나누는 대화도 제각각이지만 과거를 후회하고 자신의 과거부터 서슴없이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하는 그들이지만 그 과거로부터의 인연으로 아직도 서로 ‘지인(知人)’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와 관계는 매번 서로 만나게 될 때에만 의미가 있을 뿐,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는 어떤 선배는 예전 우리 동지들의 현재의 관계를 ‘과거를 파먹고 살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자기 삶에 토대가 되지 못하고, 부차적이거나 소용없는 경험이 되어버린 자기 인생의 일부분을 술자리의 안주로나 의미가 있을 뿐, 다른 방법으로 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독설이긴 하지만 거짓도 과장도 없는 듯 하다.

이달로 해서 나의 백수인생은 만 1년을 넘어섰다. 적응하지 못했던 회사를 떠나 내 고민을 정리하겠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시작한 백수생활이다. 후회는 없으나 아직 그 고민의 끝이 요원하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나의 삶에서 이 1년은 그리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일 게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이 아니오, 다음 발을 내딛을 자리를 찾는 시간이다. 그만큼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나는 내 책장의 여러 책들을 보면서 한 권, 한 권이 내게 주었던 충격과 신선함, 세상에 대한 진중한 시각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주었던 충만함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 충만함을 다시 실현하는 그날, 내게도 과거는 파먹고 사는 무엇이 아닌 내가 발 딛고 지나온 소중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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