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촘스키를 읽으며

번역가 송은경 선생님께

등록 2005.04.12 20:41수정 2005.04.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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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synchronity)을 느끼는 삶은 행복합니다. 종교에서는 이것을 섭리라고 말할 것인데, 저의 에너지의 장(field) 속에서 함께 흐르는 의식의 물질성을 이렇게 확인하는 것이 제 삶의 큰 기쁨입니다.

남편이 며칠 전에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사다 주었어요. 20대에 그 책을 읽었을 때는 아무 감동이 없었는데, 다시 서점에서 훑어보니 읽을 만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주 기쁘게 받고 보니 역자는 송은경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더군요. ‘러셀 자서전’이나 ‘게으름에 대한 찬양’속에서 읽었던 문장들을 간간이 발견하면서 번역의 맛을 새삼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오후엔 일을 보러 시내에 나갔다가 서점에 들렀는데, 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이었어요. 촘스키였어요. 그 옆에 송은경이 있더군요.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반가웠게요. 선생님하고 이젠 촘스키로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촘스키를 읽지 않으려고 부러 외면한 것이 5년은 족히 될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명색은 국문과 출신인데, 촘스키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창시자 소쉬르 버금가게 귀에 못이 박혔었는데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 라는 평가 이외 들어본 적이 없는 대학 생활이었다는 것이, 제 출신 대학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그 당시의 한국 지성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었는지 이후 두고두고 놀라운 일이었지요.

남편의 미국유학 시절 저는 촘스키를 통해 세계관이 또 한 차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청년기를 지나면서 온갖 사회과학 서적들을 통해 인간소외에 접근하면서 가진 충격이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에서였다면, 미국에서 촘스키를 통해 알게 된 미국의 대외정책과 정치의 실상에서는 현실적인 인간의 삶이 공포 그 자체라는 것으로 엄습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마침 레이건과 대처의 신우익이 신군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의 기치를 내걸었고, 미국중심의 ‘신 세계질서’ (New World Order) 라는 말이 횡행하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미국 정치의 부패함은 그만두고라도, 어떻게 언론과 지식인들이 제 3세계의 독재자들을 지원해왔던 미국의 대외정책을 조장하고 패권을 강화해주었는가 하는 구체적이고 방대한 촘스키의 자료들은 저에게 있던 민주주의와 언론과 지식과 지성에 대한 환상을 깡그리 없애버렸기도 합니다.

흔적이 없고 조그마한 인간인 제가 세상에 가졌던 숨이 막힐듯하던 공포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상 어디에 나(우리) 하나 평화롭게 발붙일 곳이 없구나 하는 암담함은 어쩌면 존재론적 공포였을 것입니다. 덕분에 그리스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죄악 된 세상’이라는 그리스도의 이해가 그대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죽어도 좋아’ 하는 믿음이 생겼을 것이고요.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 저의 신앙으로 성장해갔을 것입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니 한편 겁은 없어졌던 것 같아요. 믿거나 의지할 만한 곳이 결코 못 되는 이 세상을 제가 무서워할 것이 없었지요. 귀국한 뒤, 그래서 시민운동을 했고 의회에 들어가 몸이 부서지도록 싸우고 일을 했겠지요. 일에 지쳐가면서도 저를 지탱했던 두 가지 사고는 두 석학의 말로부터 정리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니콜라스 모즐리가 ‘희망의 괴물들’의 처음에서 말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역경을 오히려 반갑게 여길 만큼 괴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었고, 또 하나는 1995년 한겨레신문과의 대담(그 당시에 ‘석학과 대담’ 이라는 시리즈물이 있었을 거예요)에 실린 촘스키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끝은 파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데 시민운동만이 자본주의 사회의 종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전 없음에 절망해가던 제가 인간적으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괴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제가 인간적으로 도무지 절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나의 세 아이들을 두고 제가 절망하고 쓰러질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나 그 뒤로 언젠가 부터는 촘스키 책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운이 딸려서요. 촘스키를 읽으며 얻게 되는 분노와 자극들을 감당할 힘이 없다는 것을 갈수록 느꼈어요. 그것과 함께 움직일 힘이 없더라고요. 힘은커녕 인간의 이기성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처럼 고달프더라고요.

그 모든 고달픔 들이 결국은 모든 일들을 그만 두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시종 한쪽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인생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더라고요. 한국 안의 의식 있고 개혁적이라는 지식인들의 그 거칠고 단선적인 따짐 들이 싫고, 운동가들의 투쟁에, 저들의 투쟁정신이 얼마나 진실 되다 느낌을 가끔씩 떠올립니다. 죽을 때까지 민중을 규합하고 무모하다 싶게 게릴라전을 벌였던 체 게바라의 정신세계에 대해 인간적으로 궁금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제도와 정치와 사람들을 비판하고 매도하는 그 어떤 말들도 저에게 분기와 에너지를 주기는커녕 제 영혼이 그 거친 기운 앞에서 스러져가는 무기력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서가에 꽂혀있는 ‘507년, 정복은 계속 된다’(촘스키의 저작)를 하루에 한 번씩은 일별하면서도 빼들지 않은 것이 그러니까 5년이 됩니다. 작년, 촘스키의 또 다른 저서인 ‘불량국가’(깡패국가라는 말이 부시정권 이후 공공연한 대명사가 되었지만 제 기억에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그 닉네임을 미국에 부쳐준 사람은 촘스키입니다. 이 책 역시 미국이 말하는 모든 불량국가들의 속성이 바로 미국에 더 거대하게 들어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를 아마존에서 발견했을 때, 지독히 선정적인 제목이 사람에게 미치는 힘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체험했지만 저는 또 다시 외면했습니다.

저는 이미 미국에 대해 알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구구절절 그들의 사악성을 통해 이 세상을 다시 본다는 것이 버겁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었어요.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를 덥석 집었어요.
송 선생님의 역자 후기는 아주 낯익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글의 일부분들을 다시 읽고 있는 느낌이 컸어요. 제가 캐나다에서 살면서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미국, 그리고 이전보다 더 크게 다가온 세계의 무력에 의한 질서와 평화의 문제에 제 정신이 도무지 잠잠할 수가 없어 계속 써내려 왔던 캐나다 이야기, 중국 이야기, 미국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마침 미국 땅 옆에서,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부시에 대한 위기감과 극도의 긴장을 안고 있는 캐나다 사람들과 함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았고, 선거 직후 미국의 유치 무쌍한 관문 통제와 국제깡패 처신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 중동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꽃과 밤에는 조명으로 휘황찬란한 캐나다, 커피숍에 24시간 사람이 득실거리며 다운타운의 도심에 행인이 끊이지 않는 토론토에 살면서 대낮에도 거의 행인을 볼 수 없는 미국의 황폐화되는 도시들을 보았습니다.

‘촘스키는 기존의 모든 틀을 버리고 정의와 휴머니즘의 틀 속에서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촘스키 본인도 인정하고 있듯,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이성을 잃지 않는 한 진실은 언제나 진실이다.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다. 정의의 논리를 따를 때 도달해야 하는 결론-무력 대신 이성이, 억압 대신 자유가, 지배 대신 합의가, 선전 대신 진실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인류 대다수의 정신적 필요가 충족되는 세상-이 우리의 이상조차도 될 수 없다면 인류에게는 정말 아무 희망도 남지 않을 것이다. 동물적 생존 논리로 무장하고 파멸을 향해 치닫는 세상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는 선생님의 말씀은 또 제가 캐나다를 떠나는 날 저를 공항까지 배웅하던 제 동생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동생은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입니다. 아무리 사소하다 해도 물리적 지적 권위와 억압이 인간의 양심과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해내는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아이는 캐나다에서 이 민족, 저 민족을 겪으면서 민족의 역량 국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하루하루를 전투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경험은 ‘힘의 논리’를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이 만드는 듯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고결한 영혼이 고국을 떠나 세계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조국을 보고 자신을 보면서 얻은 것이 결국 힘의 논리라면 저는 사랑하는 제 동생을 위해 어떤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어온 세상이지. 인류공영이나 호혜평등, 합리주의와 민주주의의 정신은 약자의 외침 같이 들리는 이 세계 아니니. 무력을 쥔 국가들에게 그런 정신이 불필요하고 오로지 자국의 이익과 자신들의 권력만이 전부일 때, 어느 약소국이 그들을 훈계하며 그들의 정복의지에 저항할 수 있겠어.

강대국에 의한 전쟁과 침략의 위협과 불안이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되었는데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약육강식의 논리로만 이해한다면 약자인 우리는 죽어줘야 한다는 말이겠니. 인류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힘의 논리의 줄타기 덕분이 아니라, 정의의 산물임을 우리는 자꾸 일깨워야 해.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무지개의 이상을 접고, ‘힘이 정의다’ 하는 것을 실존적으로 깨닫는 것이 마치 세상에 대한 큰 비밀을 안 것 같이 만들긴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지.

단순히 힘을 길러야 한다거나, 힘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말은 하지 말자. 힘 있는 나라 미국의 전쟁 만행과 횡포를 보면서 우리의 존재와 세계관이 혼란스러워지거든, 그리고 이스라엘의 호전성과 민족주의가 부러워지거든 촘스키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화씨 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 같은 사람의 역할이 어떻게 가볍게 치부될 수가 있겠니. 러셀은 2차 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다시 핵으로 재무장을 할 때 힘의 논리에 결코 체념하지 않았어. 그 사람은 그 당시 이미 아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임에도 온 세계의 과학자들을 모아 핵개발 방지 선언을 만들었지.

인류는 정말 언젠가는 공멸할지 몰라. 인간성을 볼 때, 무절제한 인간의 욕구가 정신과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인간 자체의 파괴와 함께 인류가 공멸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야. 우리나라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지. 이런 결과를 앞에 두고 우리가 취해야할 정신은 무엇이겠니. 결과가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야.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서 전쟁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힘의 논리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지.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잃지 않아야 되는 것, 그것은 정신이야.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스스로 지녀야 하는 것, 그것은 휴머니즘이외는 없다.

그래, 칼 포퍼도 있었네. ‘성공에 대한 윤리관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지. 인간은 언젠가는 어느 방법으로든 죽게 되어 있어. 그래서 결코 죽음이 실패는 아닌 것이고 살아남음이 결코 승리도 아닌 것이야.”


‘동시성을 느끼는 삶은 은총이다.’ 제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들, 책들이 언제나 특별하고도 고유한 운행 속에서 제 삶에 의미있게 정차해오는 것처럼 충만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촘스키를 저로 하여금 다시 집게 한 것은 송은경이라는 존재인 듯하지만, 지난 모든 시간들이 그 책을 집어드는데 연결되어 있음을 제가 부인하지 못하겠어요. 그 몇 일전, 남편이 사들고 온 러셀 책이 송 선생님이 번역한 것이라면 제가 어제 촘스키를 그냥 스쳤을지 모르고요. 러셀 대신 촘스키를 번역했던 선생님의 시간이 저에게 갖는 의미를 제가 잘 챙겼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철학적 사상적 기초만으로도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느껴지는 사람이 그럼에도 힘든 번역 작업을 통해 좋은 책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의 작업에 대한 저의 이해와 감사가 선생님의 일과 시간에 좋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4. 8. 이후 전북지역 인터넷 대안 신문 '참소리'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4. 8. 이후 전북지역 인터넷 대안 신문 '참소리'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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