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식 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야"

[어른을 위해 다시 쓰는 전래동화②] 말 안 듣는 청개구리

등록 2005.04.16 00:08수정 2005.04.1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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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갓날 갓적에 엄마 개구리와 아들 개구리가 살았습니다. 말하자면 아빠가 없는 결손가정이었지요.

"저 녀석이 어디 가서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아야 될 텐데…."


일찍이 남편을 여읜 엄마 개구리는 아들 청개구리를 남 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희망과는 달리 아들 청개구리는 정말이지 세상에 둘도 없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엄마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기 일쑤였지요. 엄마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아들은 "난 서쪽으로 갈래"하고 말대꾸를 하며 재까닥 서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왜 동쪽으로 가야하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무조건 엄마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다 들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성에 반기를 든 것이지요. 아들 청개구리는 이미 동쪽으로는 달마라는 사람이 갔다는 것을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청개구리는 개성 없이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며 산다는 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또 "오늘은 서쪽으로 가거라"하면 아들 청개구리는 "싫어요, 엄마, 난 동쪽으로 갈 거예요"라고 세차게 도리질치면서 동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학원들이 즐비한 서쪽으로 간다는 것은 질식할 것 같은 공부의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엄마가 "오늘은 산에 가서 놀아라" 하시면 "싫어요, 나더러 산에 가서 놀라고 하시는 것은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라고 투덜거리면서 강가로 놀러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청개구리는 그렇게 언제나 엄마 말과는 늘 반대로만 행동했습니다. 엄마는 수없이 경을 읽었지만 아들 청개구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의 삶이나 생각은 거의 습성이나 타성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청개구리는 이미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삶은 여전히 구태의연할 뿐이라고 깨닫고 있었지요. 엄마는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했지만 청개구리는 도리어 엄마의 밋밋한 삶이 걱정이었습니다. 청개구리에게 엄마는 반면교사인 셈입니다.


제 성질을 못 이겨 낑낑대던 엄마 청개구리는 그만 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아들을 자기 통제하에 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엄마 개구리를 절망케 한 것이지요. 엄마 개구리의 병이 시나브로 깊어 갔습니다.

성재휴 畵, <배암 나오라> 종이에 담채 66x127cm 1969
성재휴 畵, <배암 나오라> 종이에 담채 66x127cm 1969
마침내 엄마 개구리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의 맘을 되돌리기 위한 최후의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유언을 하기로 한 것 입니다. 말이 좋아서 유언이지 그건 일종의 압박이었습니다.

"얘야, 엄마가 죽으면 언덕에 묻지 말고 저 강가에 묻어다오" 이렇게 말하면 아들 개구리가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이렇게 나올 줄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무심한 아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게 엄마의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엄마 개구리는 복장이 터져 거의 미칠 뻔 했습니다.

"이 녀석이 정말 내 속으로 난 놈 맞아?"

으이그, 이 녀석아!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참말로 회초리가 운다, 회초리가 울어. 마침내 걷잡을 수 없는 心火가 엄마 개구리의 온몸에 퍼지고...숨을 거두기 전 엄마 개구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유언을 청개구리에게 확인시키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얘야, 날 언덕에 묻지 말고 저 강가에 묻어다오."

엄마 개구리는 아마도 속판으로는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들 청개구리를 불신한 나머지 강가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지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청개구리는 엄마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엄마 주검 앞에서 눈물로 뉘우치고 또 뉘우쳤습니다.

"엄마 잘못했어요. 이젠 머리에 염색도 안하고 무스도 안 바를게요. 하지만 엄마도 내가 또 말을 안 들을 거라는 편견이나 예단은 버렸어야 했어요!"

청개구리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엄마를 강가에 묻어드렸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강이 마구 넘쳐 흘렀습니다. 아들 개구리는 엄마 무덤이 걱정되었습니다. 홍수에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가면 어떡하나?

"비야 비야 오지 마라.우리 엄마 무덤이 떠내려간단다."

세월이 흘러서 아들 청개구리도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무덤을 더 이상 강가에 둘 수 없어 양지바른 언덕으로 이장한 아들 청개구리는 회상에 잠겼습니다.

내가 어린 날에 왜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들었을까. 내 생긴대로 산다는 것, 내 개성대로 산다는 것이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했던 것일까. 청개구리는 획일화되고 규격화되고 통제화된 이런 사회에서 리버럴리스트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서산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삶이란 얼마나 외경스러운 것인가. 장엄한 노을이 청개구리의 마음을 가만히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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